
보고서 내용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주장을 담아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스톡옵션으로 대표되는 미국식 경영기법은 단기 실적을 중시한 나머지 분식회계라는 부작용을 낳았고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 그렇다. 최근 엔론 글로벌크로싱 아델피아 월드컴 등으로 이어진 분식회계 파문에서 미국식 경영의 이런 취약성이 드러났다는 것.
그러나 재계에서는 삼성이 이 보고서를 통해 강조하고 싶은 얘기는 다른 곳에 있다고 본다. “한국 경제의 운용 틀은 미국과 다를 수밖에 없으며 금융 서비스 등 3차산업 중심인 미국과 제조업이 주력인 한국이 동일한 기업 시스템을 추구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주장이 바로 그러한 대목. 읽기에 따라서는 김대중 정부의 재벌개혁이 출발부터 잘못됐고, 그렇기 때문에 새 정부는 김대중 정부처럼 재벌개혁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제왕적’ 재벌 총수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과거의 한국식 경영으로 돌아가자는 얘기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 자체가 “한마디로 난센스”라는 반응도 있다. 외국계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미국 회계부정 스캔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우리보다 회계감독 시스템이 강한 미국에서도 회계부정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회계감독 시스템을 지금보다 훨씬 강화해야 한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우리의 경우 분식회계를 견제할 수 있는 집단소송제 도입 법안도 아직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상황이다. 김대중 정부의 재벌개혁이 재벌 눈치만 보다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런 점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