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비전 프로를 직접 착용한 기자. [지호영 기자]
16㎡ 남짓한 회의실에서 기자가 고개를 숙여 몸을 피했다. 주라기공원에 간 건 아니다. 애플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 ‘공룡과의 만남’ 애플리케이션(앱)을 사용한 것이다. 비전 프로 화면 속에서 거대한 중생대 공룡이 기자를 향해 천천히 다가온다. 단단한 비늘과 생생한 피부 질감이 눈앞에서 느껴질 즈음 기자는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덮칠 듯한 순간, 멀리서 들려오는 거친 울음소리. 또 다른 공룡이 등장해 공격하려던 공룡을 쫓아낸다. 비전 프로를 벗으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평소 집중력이 1시간을 넘기기 힘든 기자도 비전 프로에서 체감한 시간은 다르게 흘렀다.
비전 프로는 애플이 선보인 ‘공간 컴퓨터’다. 디지털 화면이 3차원 공간에 떠오르고 현실과 가상이 하나로 이어진다. 기존 VR(가상현실) 기기가 현실을 차단했다면, 비전 프로는 현실을 배경 삼아 가상 이미지를 겹친다. 회의실에서 기기를 착용하면 회의실에 아이패드 화면이 둥둥 떠다니는 식이다. ‘아이언맨’이나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법한 공간 컴퓨팅을 2024년 12월 23일부터 26일까지 직접 경험해봤다.
허공을 스크린 삼는 비전 프로
비전 프로를 사용하면 일상 공간에 컴퓨터 화면을 띄울 수 있다 [애플 제공]
가장 놀라운 점은 눈동자와 손가락 움직임만으로 앱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눈동자를 굴려서 어떤 앱을 실행할지 정하고, 엄지와 검지로 앱을 꼬집으면 된다. 움직임이 작아도 정확하게 인식할 만큼 정밀도가 높았다.
비전 프로의 백미는 뛰어난 몰입감이다. 특히 ‘환경’ 기능이 돋보인다. 이를 클릭하면 보라보라섬, 요세미티, 달 등 장소 풍경이 떠오른다. 기자는 보라보라섬을 선택했다. 그 순간 눈앞에 아이보리색 모래사장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졌다. 귀에선 파도 소리가 잔잔하게 들렸다. 화면 속 바다도 실제처럼 일렁였다. 120~140도에 달하는 넓은 화면 덕분에 마치 그곳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장 실감 나는 기능은 별자리 구경이었다. ‘Sky Guide’ 앱을 활용하면 도시, 산, 바다 어디서든 별자리를 감상할 수 있다. 도시를 클릭하자 일본 야경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밤하늘과 함께 별자리 그림이 눈앞에 떠올랐다. 별자리를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과 설명이 함께 제공됐다. 손으로 별자리를 집고 끌어당기니 관련 정보가 팝업창으로 나타났다.
500만 원 내도 할 게임이 없다
혁신 기술임에도 넘어야 할 과제는 있다. 가장 큰 장벽은 가격이다. 기본 모델(256GB)이 499만 원, 고급 모델(1TB)이 559만 원으로 책정됐다. 일반 소비자가 게임 등을 단순히 즐길 목적으로 구매하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사용 가능한 앱도 제한적이다. 2024년 12월 26일 기준으로 넷플릭스나 카카오톡 같은 대중적인 앱도 실행하기 어렵다. 디즈니플러스 외에는 비전 프로에 최적화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도 없는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애플이 직접 개발한 오리지널 앱을 주로 사용해야 한다.
물리적 사용감도 완벽하지 않다. 기기 무게 대부분이 머리 앞쪽에 쏠려 장시간 사용 시 피로감이 느껴진다. 특히 고개를 돌릴 때마다 묵직한 무게가 체감된다. 1시간 착용하면 광대가 눌려 볼이 빨개지기도 했다. 또 전원 연결에 필요한 배터리 팩의 무게는 약 350g이다. 비전 프로 본체와 합하면 매일 약 1㎏의 기기를 휴대해야 하는 셈이다. 시력 교정이 필요한 사용자는 비전 프로 전용 렌즈까지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이 렌즈 가격은 약 30만~40만 원으로, 초기 비용 부담을 가중한다.
이런 이유로 비전 프로는 출시 초기 기대치를 밑도는 판매 실적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미국 내 비전 프로 판매량은 2024년 1분기와 2분기를 합해 17만 대로 추산된다. 기대 판매량 30만~40만 대를 밑돌았다.
전문가들은 이런 단점을 극복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승환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간 컴퓨팅은 컴퓨터와 사용자가 연결되는 방식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며 “키보드나 마우스를 꼭 사용하지 않아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공간을 모두 컴퓨터 환경으로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2024년은 공간 컴퓨팅을 구현하는 운영체계와 기기가 본격적으로 출시된 기간”이었다며 “2025년부터는 해당 운영체계를 기반으로 앱과 서비스가 다양하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윤채원 기자입니다. 눈 크게 뜨고 발로 뛰면서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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