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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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비 급등에 청약 취소·재건축 공사 지연… 수도권 공급 부족 우려↑

최근 4년간 건설공사비지수 30% 상승, 건자재·토지·인건비 모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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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4-08-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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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에 갑자기 공사 현장에 ‘공사 중지 예고’ 현수막이 붙은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상당수 조합원은 그 정도로 시공사와 갈등이 깊은지 몰랐던 터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결과적으로 갈등이 잘 해결돼 9월 분양을 앞두고 있으니 다행이다.”

    8월 21일 서울 강남구 ‘청담르엘’(옛 청담삼익아파트) 공사 현장 인근에서 만난 이 아파트 재건축조합원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청담르엘은 재건축조합과 시공사 롯데건설 간 갈등으로 공사 중단 위기에 처했다가 최근 갈등이 봉합됐다.

    서울 주요 재건축·재개발 다시 시동

    이날 오전 9시 30분 비가 잦아든 현장은 레미콘 트럭이 바삐 드나드는 등 공사가 한창이었다. 일부 동(棟) 저층 외벽에는 이미 외장재가 부착되는 등 공사가 상당 부분 진척된 모습이었다. 재건축이 완료되면 청담르엘은 최고 35층 높이의 9개 동 1261채 신축 단지로 변모한다. “이 일대에선 보기 드문 대단지인 데다, 서울지하철 7호선 청담역과 한강이 모두 가깝고 경기고 등 학군도 좋아 미래가치가 기대된다”는 게 인근 부동산공인중개사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주된 갈등 원인은 공사비였다. 조합과 시공사는 2017년 8월 총공사비 3726억 원에 도급계약을 맺었다. 건설시장을 강타한 공사비 상승에 양측은 지난해 5월 총공사비를 6313억 원으로 58% 증액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같은 해 10월 새로 출범한 조합 집행부가 기존 집행부의 공사비 책정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당초 예정된 분양이 차일피일 미뤄지며 공사비 수급이 어려워지자 롯데건설은 공사 현장에 “당사는 2021년 12월 착공 후 약 4855억 원을 투입하고 있으나, 조합은 도급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어 부득이 공사를 중단할 예정”이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향후 90일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9월 1일부로 공사를 중단하겠다”는 ‘예고’였기에 실제 현장이 멈춰서진 않았다고 한다. 갈등이 표면화되자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서울시도 양측을 중재하고 나서 양측은 사업 정상화에 합의했다.

    사업성 악화에 수도권 사전청약 취소 잇달아

    공사비 갈등으로 중단 위기에 처했던 서울 주요 재건축·재개발 단지가 속속 재시동을 걸고 있다. 청담르엘뿐 아니라 송파구 잠실 래미안아이파크(옛 잠실진주아파트), 은평구 대조1구역 재개발 등 건설 현장에서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봉합됐다. 최근 서울 집값이 들썩이고 특히 신축 아파트 몸값이 오르면서 공사비 증액에 숨통이 트인 것이다. 강남권 한 재건축조합원은 “둔촌주공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공사비 갈등이 장기화되면 결과적으로 분담금이 높아지는 등 조합원만 피해를 본다”며 “정비사업은 역시 빠른 속도가 생명인 만큼 부동산시장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좋아졌을 때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설시장 훈풍은 서울 주요 지역에 국한된 모습이다. 올해 들어서만 사전청약이 취소된 민간아파트 건설 현장은 6곳에 달한다. 인천 가정2지구 B2블록, 영종 A41블록 한신더휴, 경기 파주 운정3지구 주상복합용지 3·4블록, 화성 동탄2 주상복합용지 C-28블록, 경남 밀양 부북지구 제일풍경채 S-1블록 등이다. 해당 사업 중단으로 무위에 그친 주택 공급 물량만 약 2100채에 달한다. 서울이라도 사업성이 담보되지 않은 외곽 재건축·재개발 단지는 여전히 리스크가 높다는 분석이 많다. 이에 대한 도시정비업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공사비 증액에 따른 재건축·재개발 현장 갈등이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도시정비업계에선 ‘이번에는 어느 재건축·재개발 단지가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으로 멈춰 설 것 같다’는 식의 풍문이 계속 떠돌고 있다. 시공사는 이윤이 남아야 공사를 할 수 있는데 기존에 책정된 공사비로는 잘해야 본전이다. 하지만 완공 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지역의 조합 입장에선 무턱대고 공사비를 올려줄 수도 없다. 이런 곳은 조합원의 분담금 납부 능력도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조합 안에서도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부동산시장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곤 하지만 서울 핵심 지역 위주다. 재건축·재개발도 지역별 양극화가 심해 ‘옥석 가리기’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부동산시장을 엄습한 공사비 상승은 얼마나 심각한 것일까. 일각에선 물가 상승 원인으로 지목된 코로나19 팬데믹이 일상화돼 더는 돌발 변수가 아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 또한 잦아들었음에도 여전히 공사비가 꺾이지 않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다만 아파트 공사 원가와 항목별 비중을 정확히 확인하기는 어렵다. 기본적으로 영업 기밀에 속하는 데다, 업체와 건설 현장에 따라 비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일부 건자재 품목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런 흐름이 당장 공사비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건설사가 건자재를 언제 확보했는지에 따라 가격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토지비용도 감정평가를 받은 시점이 관건이다. 인건비의 경우 주52시간 근무제 도입과 최저임금 대폭 인상 전에 산정됐다면 전면 수정이 불가능할 것이다.”

    공사비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통계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건설공사비지수’다.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건자재, 인건비 등 자원의 물가 변동을 추정한 통계 지수다. 건설공사비지수는 6월 130.02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2.05% 올랐다(그래프 참조). 2020년 연 평균치를 100으로 봤을 때 건설공사비지수는 2021년 6월 111.33에서 2022년 6월 124.92, 2023년 6월 127.42로 계속 상승하고 있다. 공사비는 택지비와 함께 아파트 분양가를 구성한다. 택지비는 말 그대로 땅값이고, 공사비에는 건자재비와 인건비, 금융비용 등이 포함된다. 건설업계에선 최근 아파트 3.3㎡당 공사비를 600만 원대로 추산한다. 입지에 따라 제각각인 땅값과 건설사 몫 이윤을 더한 서울 아파트 3.3㎡당 평균 분양가는 6월 사상 처음으로 4000만 원을 돌파했다(주택도시보증공사 통계 기준).

    서울 아파트 평당 분양가 4000만 원 돌파

    공사비 상승 부작용은 부동산시장 전반에 악영향을 끼친다. 아파트 착공 지연과 분양 취소는 결과적으로 주택 공급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수도권 주택 착공 물량은 12만1000채로 2005~2022년 평균치(21만6000채)에 크게 못 미쳤다. 수도권 아파트 착공 물량은 10만2000채로 2005~2022년 평균치(15만6000채) 대비 65.7%에 불과했다. 이 같은 추세로 주택 착공 물량이 계속 줄어들 경우 2026년쯤에는 주택 공급이 수요보다 부족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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