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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직장인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은행 직원임에도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에 대해 잘 모른다는 고백이다. 금융회사 직원도 잘 모르는 디폴트옵션에 대해 알아보자.
7월 12일부터 시행된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은 우리말로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다. 퇴직연금 가입자가 별도로 적립금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가입자가 사전에 지정한 방법으로 금융사가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것을 말한다. 퇴직연금은 확정급여(DB)형, 확정기여(DC)형, 개인형(IRP) 등 총 3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이 중 가입자가 직접 운용 지시를 할 수 있는 DC형과 IRP형이 디폴트옵션 대상이다.
기형적 형태로 탄생한 한국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DB(Defined Benefit)형은 퇴직급여 산출 공식에 따라 퇴직 전 3개월 평균 임금에 근속연수를 곱해 결정되며, 기업(사용자)이 적립금을 관리하기 때문에 가입자가 따로 운용에 관여할 수 없다. 반면 DC(Defined Contribution)형은 기업(사용자) 부담금이 확정돼 있어 매년 연금 임금총액의 12분의 1 이상을 근로자의 퇴직연금 계좌에 입금해준다. 따라서 근로자가 직접 운용할 수 있으며 근로자의 노력에 따라 퇴직연금 수익률이 올라가기도 한다. 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는 근로자가 직접 계좌를 개설한 후 본인의 노후 준비를 위해 납부하고 운용하는 계좌다.정부가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이유는 현재 300조 원 넘는 퇴직연금 수익률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2.4% 수준으로, 연금 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 호주, 영국의 7~9%대에 비해 매우 낮다(표 참조). 그 이유는 퇴직연금의 약 90%가 원리금 보장 상품으로 운용되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호주, 영국의 퇴직연금은 디폴트옵션을 통해 자동으로 국내외 주식과 채권, 대체투자 자산에 분산투자된다. 주식 등 장기 성과가 높은 자산을 보유하고, 그 변동성이나 위험을 채권이나 대체투자 자산으로 보완해 안정성을 함께 가져가는 것이다.
정부는 연금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국민의 퇴직연금 수익률을 개선하고자 디폴트옵션 도입을 추진했다. 2019년 11월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도입 계획을 발표하고, 2021년 12월 9일 관련법(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률안은 공포일로부터 6개월 경과 후 시행되지만, 정부는 현장의 혼란을 감안해 시행 시기를 조정했다. 그리고 최근 금융회사들은 7월 12일 디폴트옵션 시행을 앞두고 퇴직연금 계좌 보유 고객들에게 문자메시지와 e메일 등을 통해 디폴트옵션 가입을 안내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다수 국민이 디폴트옵션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몇 가지 질문을 통해 핵심 내용을 알아보자.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은 “꼭 가입해야 하는가”다. 결론부터 말하면, 답은 “디폴트옵션 상품에 가입 안 해도 됩니다”이다. 사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특정 선택을 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가입돼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한국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디폴트옵션을 지정해야 하는 기형적인 형태다. 즉 근로자인 가입자가 디폴트옵션으로 나온 상품 중 하나를 직접 선택해야 하는데, 이는 바꿔 말하면 가입자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 상품에도 가입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디폴트옵션 취지와 맞지 않는 이런 형태의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를 한국은행 보고서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주요 내용 및 기대효과’는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디폴트옵션 상품을 여타 국가(사용자(회사)가 지정)와 달리 개별 가입자가 지정하게 한 것은 손실 책임 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취지”라고 말이다. 사용자(회사)나 퇴직연금 사업자(금융회사) 입장에서는 퇴직연금에서 손실이 발생할 경우 가입자(근로자)의 손실 책임에 대한 불만 제기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금융과 투자 관련 지식이 부족한 근로자에게 모든 결정을 맡기는 이런 형태라면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다. 결국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가 어렵다.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언제 어떻게 개선될지 알 수 없다
해당 금융기관에 ‘자산배분 전문가가 있는가’
두 번째 질문은 “안 하면 어떤 손해가 있는가”다. 디폴트옵션을 안 하면 근로자 본인의 퇴직연금 수익률이 제로(0)가 될 뿐이다. 과거에는 따로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은 경우 예금상품에 자동으로 예치됐다. 그런데 이제는 자동재예치가 없어진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으로 인해 2023년 7월 12일 이후에는 예금상품 자동재예치 제도가 종료되기에 고객님께 사전 안내드립니다.” 이것은 IRP 계좌를 가입한 금융회사에서 보내온 안내 메일 내용의 일부다. 예금상품에라도 가입해야 예금상품 수준의 금리 수익을 얻는데, 이조차 안 되는 것이다. 최소한 물가상승률만큼이라도 수익을 내려면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세 번째 질문은 “어떤 상품을 선택해야 하는가”다. 아무것도 안 하면 수익이 전혀 안 나니 손해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뭐라도 해야 한다. 금융회사의 디폴트옵션 내용을 분석해보면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으로 각 성향에 따라 2개씩 총 6개 디폴트옵션을 제시한다. 디폴트옵션을 정하면 금융회사가 사전에 정해놓은 상품에 가입한다. 예를 들어 ◯◯은행의 저위험 포트폴리오의 경우 TDF(Target Date Fund: 은퇴 준비 자금 마련 등 특정 목표의 시점을 가진 펀드) 2개에 10%, 20%를 할당하고 나머지 70%는 정기예금에 배분한다. 중위험 포트폴리오는 TIF(Target Income Fund: 현금흐름에 중점을 둔 펀드)와 자산배분형 펀드 등 총 3개 펀드에 20~50%씩 나눠 투자한다. 고위험 포트폴리오는 TDF 3개 펀드에 나눠 넣는다.
문제는 해당 금융회사에 “포트폴리오 전문가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편입한 펀드들의 성격과 특징을 제대로 분석했는지 의문스러운 경우가 많다. 아직은 시행 초기라 더 지켜봐야겠지만 완전히 믿고 맡기기는 어려워 보인다.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직접 투자상품을 선정해 자산배분 방식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정부나 기업, 금융회사가 제대로 관리해주지 않으니 근로자 스스로 직접 관리할 필요가 있다. 퇴직연금은 남의 돈이 아니다. 자신의 돈이니 당연히 신경 써서 관리해야 한다. 금액이 적다고 무시하거나 연금을 받는 시점이 먼 미래 일이니 당장 급하지 않다고 신경 쓰지 않으면 이내 후회한다. 회사에서 돈을 벌기 위해 업무 관련 공부를 하듯이, 퇴직연금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금융 공부가 필요하다.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투자해 노후자금의 수익성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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