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방식으로 예술가를 선발해 상금 1억 원을 주는 케이블채널 스토리온 프로그램 ‘아트스타 코리아’의 한 장면.
서바이벌 형식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 없는 시대, 이제 예술마저 서바이벌 틀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2009년 첫 방송한 케이블채널 Mnet ‘슈퍼스타K’를 시작으로 유행처럼 번진 TV 속 서바이벌 프로그램 열풍이 6년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일종의 스테디셀러가 된 가수 선발 서바이벌은 지상파 3사를 포함해 케이블채널, 종합편성채널 등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이후 서바이벌은 노래를 뛰어넘어 다양한 영역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패션디자이너(온스타일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모델(온스타일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 요리사(올리브TV ‘마스터셰프 코리아’), 춤꾼(Mnet ‘댄싱9’), 작곡가(Mnet ‘슈퍼히트’)에 이어 최근에는 케이블채널 스토리온에서 예술가마저 서바이벌로 선발하기 시작했다. 3월 30일 ‘국내 최초 아트 서바이벌’이라는 야심찬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방송을 시작한 ‘ART STAR KOREA(아트스타 코리아)’가 그것이다.
도전자 15명이 최종 우승을 향해 달려가는 여정에서 설치미술, 회화, 조각, 소조, 비디오아트, 팝아트 등 전 방위 예술을 대중 앞에 선보인다.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처럼 우승자 단 한 명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어마어마하다. 상금 1억 원, 국내 유수 갤러리에서의 개인전 기회, 해외 연수 등이 제작진이 내세운 혜택. 게다가 3개월이 넘는 기간에 TV를 통해 자기 얼굴과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도 얻는다.
이 프로그램 제작을 맡은 CJ E·M 임우식 PD는 3월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기획의도를 공들여 설명했다. 그는 “예술에 대한 대중 관심이 뜨거워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여전히 예술을 어려워하고 그것에 대해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갖고 있다”며 “방송에서 예술을 비중 있게 다루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간 다큐멘터리 등 교양 형태로 현대 예술을 다룬 콘텐츠는 있었지만, 대중과 접점이 확실치 않았다. 예술과 대중의 접점을 찾으려는 의도에서 서바이벌 형식을 취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임 PD는 “젊은 작가는 본인의 작가관을 내보이고 싶은 욕구가 엄청나지만 기회가 많지 않다. 방송을 통해 그들에게 새로운 길과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치열한 경쟁 사회 현실 반영
이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유진상 계원예술대 교수는 “아트스타 코리아는 심사위원에게도 도전적인 프로그램”이라며 “현대미술은 굉장히 다양해 작가에 대한 평가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국내에선 미술작품 평가와 심사가 연간 100여 개 공모전에서 주로 이뤄지는데, 대부분 비공개다. 평가와 심사 내용을 대중이 궁금해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방송되는 현상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치열한 경쟁 사회라는 점을 반영한다. 현실과 흡사한 경쟁에 시청자는 쉽게 몰입한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대부분이 외국 유명 프로그램 형식을 그대로 베끼거나 사온 형태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처럼 오랜 시간 뜨거운 인기를 이어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유독 ‘아트스타 코리아’를 향한 시선은 찬성과 반대로 나뉜다. 먼저 제작진의 기획의도에 동의하는 이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동안 어려워하고 낯설어했던 현대 예술을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이들은 현대 예술이 TV 오디션에 적합하지 않은 고결한 장르라는 일부 시각은 예술계가 가진 편협한 오만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신진 아티스트가 자신을 알릴 기회를 갖게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반대 의견 역시 뜨겁다. 이 프로그램을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대중과의 접점을 굳이 서바이벌 형태에서 찾을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바가 예술의 대중화이기에 현대미술을 대중 입맛에 맞는 상업적 테두리 속에서 제한한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점점 상업화하는 미술계 풍토가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더 심화할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아트스타 코리아’ 심사위원들은 설치미술, 회화, 조각 등 현대 예술의 다양한 장르 작품을 심사해 탈락자를 선정한다.
이런 외부 시선 속에서 ‘아트스타 코리아’ 제작진은 논란을 잠재우려고 기존 서바이벌 프로그램과는 다른 스토리텔링을 택했다. 기존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달리 아티스트 간 갈등에 크게 주목하지 않으며, 심사위원의 독설도 없다. 편집도 자극적이지 않다. 참가한 아티스트를 지나치게 희화화하지 않음으로써 이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논란을 의식한 듯한 제작진 행보는 때로는 눈물겹기까지 하다.
기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는 그동안 수없이 반복된 일종의 고전적인 스토리 라인이 있다. 그것은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반드시 참가자에게 눈물을 쏙 빼게 하는 독설을 퍼붓고, 참가자는 치열한 서바이벌에서 살아남고자 서로를 시기, 질투하며 상대를 헐뜯는 형태다. 또 참가자 중에는 반드시 돌출 행동을 하는 악역 캐릭터가 존재하고, 미모의 남녀 참가자가 연애 감정을 드러낸다. 그 밖에 힘든 가정사를 이야기하며 동정심을 자극하는 캐릭터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런 스토리텔링은 경쟁 사회라는 잔혹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서바이벌 프로그램 초기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비슷한 구도를 가져가다 보니 이제는 식상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아무튼 ‘아트스타 코리아’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을 접하며 우리가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바이벌은 현실의 잔인한 경쟁을 그대로 반영한 예능 프로그램일 뿐이다. 현실과 맞닿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논의는 그 범주 밖에서 이뤄져야 한다. 더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자체를 문제 삼지 말고, 문제를 해결할 주체를 다시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