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래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220쪽/ 1만1000원
박 기자는 2004년 7월27일 보스턴 폴리트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를 회상한다. 바로 이날 존 케리 후보 출정식의 기조연설자로 나선 오바마에게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무명의 흑인 정치인 입을 통해 나오는 ‘희망’과 ‘하나 된 미국’을 향한 메시지는 전당대회에 함께한 모든 사람을 감동시켰다.
“희망,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의 희망, 불확실성에 직면했을 때의 희망, 담대한 희망입니다. 결국 그것이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이 나라의 초석입니다.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 우리 앞에 더 좋은 날들이 펼쳐질 거라는 믿음 말입니다.”
그리고 이 연설은 오늘의 오바마 시대를 여는 문이 됐다. 그는 오랜 인종차별의 역사를 가진 미국에서 흑인이었고, 심지어 흑인들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흑백 혼혈이었다. 미국 유학생이었던 케냐 출신의 아버지에게서 태어나자마자 미국 이민자 2세가 된 그의 정식 이름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 이 이름은 9·11테러 이후 많은 미국인에게 분노와 두려움의 대상인 이슬람식 이름이며, 특별히 이라크 전 대통령 후세인을 연상시킨다.
이 같은 태생적 단점은 그의 수많은 능력을 가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자신의 오랜 꿈을 성취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저자는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오바마, ‘공감’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오바마의 모습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미국에서 흑인 아이들이 갈 수 있는 길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분노’를 키우는 길이다. 차별로 인한 패배감 때문에 마약과 범죄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다른 길도 있다. 백인의 기독교를 버리고, 흑인을 존중해주는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일이다. ‘분노’를 이슬람 교리와 율법으로 묶어두는 것이다. 세 번째 길은 공부를 탁월하게 잘해서 좋은 직장을 얻고 ‘흑인 공동체’를 떠나는 길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달랐다. 청소년 시절엔 마약을 했고, 다시 방향을 바꿔 명문대에 입학했지만 위의 세 길 어느 곳으로도 가지 않았다. 그는 흑인 공동체를 떠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흑인으로서 ‘분노’를 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흑과 백, 두 세상 사이에서 줄 타는 법을 익혔다.” 그는 ‘하나 되는 미국’만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오바마의 자세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인종의 구분을 넘고 이민자에 대한 차별을 넘어, 그리고 진보와 보수의 경계를 허물어 모두의 공감을 산 것이다.
“우리를 분열시키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오늘 밤 이렇게 말해둡니다. 진보적인 미국이 따로 있고, 보수적인 미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 된 주들인 미국 the United States of America가 있을 뿐입니다. 검은 미국이 따로 있고 하얀 미국이 따로 있고 라틴계의 미국, 아시아계의 미국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나 된 주들인 미국 the United States of America가 있을 뿐입니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오바마는 미국의 변화를 꾀한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왜 변화에 저항하는지를 살피고 그것을 제거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것이 그를 리더로 이끈 큰 힘이다. 빈곤층에 대한 복지혜택을 늘리면 중산층 이상이 저항하는 현상, 흑인 등 소수 인종을 우대하는 정책을 펼치면 가난한 백인들이 반발하는 모습 등 변화를 어렵게 하는 것들에 대해 오바마는 급진적인 방법을 피하고 온건한 방법을 제시한다. 공감을 이끌며 변화를 이끄는 리더 오바마의 미국이 기대되는 점이다.
‘역전의 리더 검은 오바마’. 책은 오바마의 정치적, 인간적 인생 여정과 함께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매케인에 대한 이야기, 오바마와 매케인의 신경전, 미국 대선의 예측할 수 없는 긴 과정을 기자의 시선으로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렇다면 계속되는 비난과 분열 속에 있는 우리에게 변화와 통합의 리더는 언제쯤 나타날까? 고민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