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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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건 내 덕, 나쁜 건 아내 탓, 치마폭에 숨기 이제 그만!

  • 입력2008-03-19 13: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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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내가 살던 다세대주택의 주인 아저씨는 친절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직접화법 대신 간접화법을 즐겨 사용하는 그분은 모든 게 조심스러웠는데, 예를 들어 집 앞에 쓰레기가 함부로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경우 “다들 쓰레기 좀 잘 버려요!”가 아니라 “(굉장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 쓰레기 잘 처리하는 법을 연구해봅시다아~” 하는 식으로 지적했다.

    반면 주인 아주머니는 좀 무서웠다. 주인집이 떨어져 있긴 했지만, 일주일에 서너 번 이상 마주치는 아저씨에 비해 한 달이 지나도 거의 얼굴을 볼 수 없던 아주머니는 가끔씩 1층 게시판에 장문의 글을 올려 존재감을 확인해주곤 했다. 그 내용은 주로 “화재 위험이 있으니 보일러 위에는 절대 물건을 올리지 마시고, 물은 아껴 쓰시고…”류의 ‘소소한 잔소리’가 많았다. 그래서 나와 룸메이트는 “주인 아저씨는 좋은데 아줌마가 깐깐하다” 식으로 아주머니에 대한 뒷담화(?)를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른 새벽 게시판에 글을 써서 붙이는 아저씨를 보면서 그간 올라왔던 게시글들이 모두 아주머니가 아닌 아저씨의 ‘작품’임을 눈치채게 됐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아저씨는 자신이 올린 글을 붙이면서 문장의 마지막에 꼬박꼬박 ‘주인 아줌마 백’을 써놓았던 것일까.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대문호 톨스토이의 아내는 악처로 유명했다.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여서 공자의 아내 역시 악처였다고 한다. 굳이 그런 위인들까지 가지 않더라도 “사람 좋다”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많은 아저씨들의 배우자 중에는 남편과 ‘달리’ 쫀쫀하거나 까칠한 아내가 많다.

    물론 세세한 사정이야 다 다를 테다. 하지만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으며 ‘우아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기 대신 ‘구질구질한 일’을 해줘야 할 사람이 필요한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많은 아저씨들은 알게 모르게 그 일을 아내에게 떠맡긴다.



    그 인상 좋던 주인집 아저씨처럼 자신의 체면 유지를 위해 ‘아내를 파는’ 아저씨들을 주변에서 흔히 만난다. 아저씨들은 물건 값을 깎을 때나 타인에게 곤란한 부탁을 해야 할 때마다 아내 핑계를 대거나 아내의 치마폭 뒤로 쏙 숨는다.

    결국 자기 관리에만 공들이는 남편 탓에 아내들은 부당한 손가락질을 받기도 하고, 나아가 ‘제 앞가림 못하는’ 남편 때문에 자진해서 ‘그악스러워’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저씨들이여, 세상 모두가 당신의 아내를 ‘무식쟁이 아줌마’라고 비난할지라도 당신만은 그래선 안 된다. 그보다는, 그게 다 누구 때문인지 가슴에 손 얹고 반성부터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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