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2

2004.04.29

老화가의 불타는 예술혼

  • 입력2004-04-22 14: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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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老화가의 불타는 예술혼
    ‘미궁(迷宮)의 이부자리에서 나오면 여자는 양식을, 나는 한 잔의 곡주를 들며 허기를 달래고, 별세계에서 망각했던 삶의 현관으로 들어설 준비를 하는 것이다.’

    소설가 강석경(사진)씨가 죽음을 앞둔 노(老)화가의 예술혼을 다룬 장편소설 ‘미불(米佛)’(민음사 펴냄)을 펴냈다. 1989년 ‘가까운 골짜기’를 쓰기 전 제목도 없는 이 소설의 초고 20매를 써놓고 서랍에 넣어뒀다가 15년 만에 출산했다고 한다.

    법명이 미불인 화가 이평조는 일흔이 넘었지만 화가로서의 정열과 범인으로서의 성에 대한 탐닉을 멈추지 않은 인물. 그는 수묵화 중심의 기존 동양화를 거부하고 구도(構圖·작품의 미적 효과를 얻기 위해 예술 표현의 여러 요소를 배치하는 도면 구성)와 색채를 이용해 한국화의 새 경지를 탐색해왔지만 평단은 그의 작품 세계를 왜색 사조라고 배척해왔다.

    속(俗)을 향해 있는 그의 다른 일부는 자신의 딸 뻘인 진아에게 탐닉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비유가 인상적이다. 굶주리고 목이 마른 당나귀 앞에 귀리와 물을 각각 갖다놓자 당나귀는 그 사이에서 망설이다 굶어죽는다. 붓과 여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늙은 화가가 바로 당나귀의 처지다.

    그러나 술과 객기로 삶을 낭비했다고 여긴 그는 인도로 떠났다 성과 속, 아름다움과 추함, 완전과 불완전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귀국해 제2의 전성기를 펼친다. 일흔이 넘어서야 그의 세계는 비로소 인정받지만 그는 ‘위대한 예술가의 참다운 운명은 일의 운명’이라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처럼 오히려 더 그림에 대한 정열을 불태운다. 암 진단을 받고 고통 속에 삶의 마지막을 보내며 여자로 인해 모멸감을 받게 되지만 노화가는 그런 고통도 스스로 껴안는다.



    “자신의 불완전을 극기하듯 상처에서 진주를 키우는 예술가. 어떤 삶의 고난도 진정한 예술혼을 꺾을 수는 없다. 이것이 나의 믿음이다.”

    이화여대 미대 조소과를 나와 1974년 등단한 작가는 30년 가까운 작품활동 기간을 예술과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보냈다.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에서 ‘나’를 탐구하고, 우리 삶을 억압하는 완고한 인습과 제도 속에서 우리 사회의 모순을 파헤치기도 했다. 85년 펴낸 소설집 ‘숲속의 방’ 이후 장편소설 ‘가까운 골짜기’ ‘세상의 별은 다 라사에 뜬다’ ‘내 안의 깊은 계단’에 이르는 작품들이 모두 그렇다. 산문집 ‘인도기행’과 ‘능으로 가는 길’ ‘일하는 예술가들’도 예술과 삶의 본질을 찾아나섰던 그의 또 다른 기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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