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정작 놀라운 사실은 ‘김대중 대통령도 영어의 중요성을 느껴,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영어를 공부한다’는 말로 끝맺은 이 기사를 읽고 적잖은 영국인들이 ‘한국에도 고유 언어가 있는가?’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영국인들에게 한국은 그만큼 멀고도 낯선 나라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지난 2월1일부터 16일까지 런던 웨스트엔드의 아폴로 해머스미스 극장에서 공연된 뮤지컬 ‘명성황후’가 혹평을 들은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나 다름없었다. 한국 근세사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영국인들에게 이 뮤지컬이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들은 ‘죽어라 땀 흘리며 뛴 끝에 0대 0으로 끝난 무기력한 축구경기’(파이낸셜 타임스)처럼 비칠 수밖에 없었다.
화려한 전통의상 입 모아 칭찬

‘명성황후’를 제작한 에이콤은 영국 관객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모든 대사를 영어로 처리했지만 이 시도 역시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부정적 평가를 얻는 데 그쳤다. 모든 영국 언론이 입을 모아 칭찬한 것은 600벌에 달하는 화려한 전통의상과 주역을 맡은 이태원의 열연뿐이었다.
영국은 과거 인도와 아프리카에서 거대한 식민지를 지배했던 국가다. 대영제국의 과거에 대해 향수를 가지고 있는 영국 관객들의 눈에 강대국의 지배를 떨치고 일어서려는 식민지 국가의 몸부림이 어떻게 곱게 비칠 수 있었을까. 명성황후의 머리 장식을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이 달린 케이크’로, 그리고 고종이 쓴 관을 ‘TV 안테나가 달린 투우사 모자’로 묘사한 인디펜던트의 평에는 분명 이같이 편파적인 시각이 담겨 있었다. 더구나 이 신문은 공연에서 가장 멋진 부분으로 의상을 들면서 어처구니없게도 ‘무지개색 기모노는 한국의 눈부신 전통을 보여주었다’고 평하고 있다.

에이콤측은 런던 공연의 결과에 대해 “지난 97, 98년의 미국 공연에 비해 금전적 손해는 대단치 않다”고 밝혔다. 두 번에 걸친 미국 공연이 각각 12억, 56억 원의 경비를 들여 26억원의 적자를 낸 데 비해, 이번 런던 공연의 적자 폭은 3억원 선에 그쳤다는 것. 유료 관객도 1만5000명 선으로 적은 편은 아니었다. 에이콤은 “줄거리가 역사적 사실에 치우쳐 있고 대사와 등장인물이 많은 점 등 이번 런던 공연에서 지적된 점들은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이 부분을 수정해 지속적으로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리겠다”고 밝혔다.

한국공연예술매니지먼트 협회의 강창일 부회장은 이 점에 대해 고개를 흔든다. “‘명성황후’가 스펙터클한 면에서 미국의 뮤지컬들에 뒤지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성이 이처럼 강조된 작품, 무대에서 황후가 살해되는 심각한 작품을 세계인들이 보고 싶어할까요? 뉴욕 브로드웨이나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을 보는 대다수는 관광객입니다. 이들이 이해하기 힘든 뮤지컬보다는 감동적인 사랑이야기나 흥겨운 쇼를 보고 싶어할 것은 자명합니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점은 ‘명성황후’의 런던 진출 방식이다. 에이콤은 미국 공연과 마찬가지로 런던의 극장을 자체적으로 빌린 후, 매표 수익으로 경비를 충당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번 런던 공연의 총 제작비는 17억원 선. 이중 문화관광부가 2억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공연 전문가들은 시간이 들더라도 제대로 된 방식으로 현지에 진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제대로 된 방식이란 해외의 아트 마켓이나 페스티벌, 아니면 중소 도시의 순회공연 등을 통해 현지의 매니지먼트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방법을 뜻한다.
“영국이나 미국의 뮤지컬들도 웨스트엔드나 브로드웨이에 진출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실험을 거쳐 작품을 다듬습니다. 무작정 중심지의 극장을 빌려 공연한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 작품의 수준을 인정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제조업에서는 진입 장벽이 높은 국가의 경우 현지 생산이나 합작투자 방식 등으로 타협합니다. 공연도 마찬가지죠. 꼭 해외진출을 원한다면, 다국적 예술인들의 합작 등을 통해 보편성을 획득한 작품을 창작해야 할 것입니다.”(메타컨설팅 김주호 이사)
에이콤은 런던 진출에 대해 “본고장의 제대로 된 무대에서 평가받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명성황후’에 대한 영국 언론의 평은 부정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대폭적인 수정을 거치든, 아니면 아예 새로운 대안을 개발하든 간에 이제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할 때가 왔다. 해외 공연 횟수만으로 그 작품에 대해 권위를 부여하는 시대는 분명 지났다. 이번의 실패를 내일의 성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역사의 다리를 넘어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더 타임스’의 평을 냉정하게 곱씹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