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대군을 모신 서울 서초구 방배동 청권사. [안영배 제공]
고대 한국에서는 고려의 풍수가들이 특히 이런 지운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들은 땅을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여겨 땅기운이 뜰 때와 질 때를 구분했다. 심지어 발복한 땅기운이 좀 더 오래 가도록 땅심을 아껴 쓰기도 했다. 고려가 국력이 집중되는 수도를 세 군데(개성, 평양, 서울)로 나눠 삼경제(三京制)를 운영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런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은 우리나라에서 유독 강조된 풍수이기도 했다.
사실 현대사회에서도 땅의 기운이 흥하거나 쇠퇴해지는 현상이 늘 벌어지고 있다.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논밭으로만 사용되던 서울의 값싼 강남땅이 지운이 변함에 따라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비싼 땅으로 변신해 있다. 정부의 대규모 택지개발 사업으로 허허벌판이던 수도권 일대가 인공적인 신도시로 탈바꿈하는 모습은 지금도 목격되는 현상이다.
지운에 따라 뜨고 지는 산업
2019년 서리풀공원을 관통하는 서리풀터널이 개통되면서 서초구의 지운이 활성화됐다. [뉴스1]
흥미로운 점은 현공풍수에서는 올해 2024년부터 지운이 바뀌어 2043년까지 9운의 세상이 펼쳐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2004~2023년까지 지난 20년간 8운의 세상을 보냈으며, 올해부터는 전혀 다른 9운의 기운이 20년간 발동된다는 논리다. 이렇게 새 기운이 발동하면 이에 해당하는 방위권 내의 지기가 감응함으로써 발복을 일으키게 된다. 결국 현공풍수론은 땅의 지기가 시간에 따른 방위의 변화에 반응해 왕성해지거나 쇠약해진다는 게 핵심적인 내용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8운에서는 동북방(주역 팔괘로는 간방·艮方)으로 지운이 집중된다. 즉, 동북방에 지운을 받쳐주는 산이 있고 맞은편인 서남방으로는 지운을 가둬주는 역할을 하는 물이 흐르는 지역이 부상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생산기지인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일대가 이러한 지형적 요건을 갖춰 8운의 지운을 톡톡히 누렸다. 서울에서는 동북쪽으로 남산이 있고 서남쪽으로 한강이 흐르는 용산역 일대가 8운의 영향을 많이 받아 크게 발전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편으로 8운은 주역 간괘(艮卦)가 상징하는 코드인 산(山)처럼, 부동산개발 붐이 일어나는 운이기도 하다. 지난 20년간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부동산개발로 건물들이 산처럼 우뚝우뚝 솟아나는 세상을 보내왔다는 뜻이다.
9운은 어떠할까. 정남방에 기운이 집중되는 9운에서는 남쪽으로 산 혹은 높은 지대가 있고, 북쪽으로 물 혹은 저지대 지형이 형성된 곳이 발전한다고 본다. 서울권에서는 이러한 요건을 갖춘 곳이 한강 남쪽 지역이다. 특히 남쪽으로 관악산과 우면산 등을 배후로 두고 북쪽으로 한강이 동서 방향으로 흐르는 강남 지역이 대표적으로 9운의 혜택을 받게 된다.
9운은 주역 팔괘로는 이괘(離卦)에 해당하며 이름 그대로 불을 상징한다. 이에 따라 8운에서 활발했던 부동산 붐은 9운이 진행될수록 그 열기가 꺼져갈 수밖에 없고 대신 이괘가 상징하는 불처럼 전기, 전자, 반도체, 항공, 우주, 종교, 명상, 가상공간과 가상화폐 등이 주목받는 세상이 펼쳐진다. 역으로 이러한 업종이 밀집된 지역이 명당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빼어난 명당터 서리풀공원 일대
금계가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형상을 하고 있는 서초구 명당도. [안영배 제공 ]
서리풀공원 지역은 전통 풍수적 시각으로 보아도 빼어난 명당터다. 이른바 금계가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금계포란형은 자손 번창과 풍요의 기운이 집중된 터로 해석된다. 닭 형상의 명당지에서는 닭의 날갯죽지 안쪽, 가슴 부위, 닭 볏 등에 해당하는 곳을 주목한다. 이런 곳에 기운(에너지)이 집중되는 혈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이자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1396~1486)의 묘(서울 서초구 방배동 190-1)다. 지하철 2호선 방배역 4번 출구 쪽 청권사(淸權祠)라는 사당이 있는 곳이다. ‘청권’은 중국 주나라 태왕의 맏아들 태백과 둘째 아들 우중 대신 셋째 아들 계력(주문왕)이 왕위를 이어받은 데서 나온 말이다. 태백과 우중은 태왕의 뜻을 알아채고 왕위를 스스로 사양한 뒤 은신했는데, 이를 두고 후일 공자가 태백을 지덕(至德), 우중을 청권(淸權)이라고 칭송하였던 것이다.
태종의 셋째 아들인 세종대왕은 왕위에 오른 뒤 태백과 우중의 고사를 떠올리며 “나의 큰형님 양녕대군(1394~1462)은 곧 지덕이요, 둘째 형님 효령대군은 곧 청권이다”라고 했다. 이로 인해 지금도 왕족인 전주 이씨 양녕대군 파는 종친회 이름을 지덕사, 효령대군 파는 청권사라고 하고 있다. 효령대군의 위패를 모신 청권사는 현재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효령대군은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살아서인지 90세 장수를 누렸다. 묘하게도 효령대군의 유해가 모셔진 1486년 역시 주기상 9운(1484~1503)의 시기에 해당한다. 9운이 발복하는 시기에 9운이 집중되는 곳으로 묘를 조성함으로써 발복의 효과를 톡톡히 누린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금계포란형의 명당 혈에 효령대군의 유해를 모신 이후, 그 후손인 효령대군 파는 전주 이씨 중에서도 가장 번창했다. 우리나라 전체 문중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50만이 넘는 후손을 배출한 이곳은 자손 발복의 명혈(明穴) 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청권사 외에도 서초의 금계포란형 명당지에서는 부자들이 많이 배출된다. 이 일대에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방배동 월드빌리지)을 비롯해 실속 있는 알짜배기 기업 오너,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살고 있다는 게 부동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서초구 일대가 9운 시대를 맞아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