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유도로켓 ‘비궁’ 발사 모습. [방위사업청 제공]
美 해군 참모총장, ‘비궁’ 보려 한국 해군 함정 올라
리사 프란체티 미 해군 참모총장(왼쪽)이 7월 11일(현지 시간) 한국 해군 천자봉함을 방문했다. [한국 해군 제공]
비궁을 대상으로 한 FCT는 미국 방산업체 텍스트론이 만든 무인수상정(CUSV)과 연계해 이뤄졌다. FCT에서 비궁 발사용 센서 및 발사기가 설치된 CUSV가 실전 상황을 가정해 비궁 실탄을 발사했다. 초계 중인 무인정찰기가 획득한 표적정보를 위성통신망을 거쳐 수신한 CUSV에서 쏜 비궁 6발이 모두 표적에 명중했다. 헬기를 타고 천자봉함으로 날아와 평가를 직접 참관한 미 해군 참모총장과 고위 간부들은 성공적인 평가 결과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총검부터 핵무기까지 거의 모든 무기를 자체 개발하고 생산하는 미국이 갑자기 한국산 무기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에 이미 비궁과 비슷한 무기체계가 존재하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궁금증이 커진다.
비궁이 등장한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 10월 예멘 아덴항에서 발생한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 콜(USS Cole, DDG-67) 폭탄테러 사건이 있다. 미 해군 이지스함은 ‘이지스(Aegis·신의 방패)’라는 이름 그대로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전투함이다. 하지만 당시 아덴항에 있던 미 해군 구축함은 그렇지 못했다. 연료 보급을 위해 아덴항에 입항한 콜은 소형 보트에 폭발물을 가득 채우고 자폭 돌격을 감행한 알카에다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당시 테러로 콜 좌현에 큰 구멍이 생겼고 승조원 17명이 즉사하고 39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 이후 미 해군은 모든 전투함 좌·우현에 기관포를 설치하는 동시에 소형 보트 자폭 돌격에 대비한 근접 전투 능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비궁 최대 장점 다목표 동시교전 능력
7월 12일(현지 시간) 미국 하와이 인근 바다에서 비궁을 탑재한 미국 무인수상정(CUSV)이 한국 해군 상륙함인 천자봉함을 빠져나가고 있다. [국방홍보원 제공]
이런 상황에서 미 해군의 눈에 들어온 것이 70㎜ ‘히드라 70’ 로켓이었다. 1발에 7000달러(약 970만 원) 정도로 가격이 저렴한 데다, 간단한 유도장치를 부착하면 헬파이어 미사일과 비슷한 사거리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유형의 유도로켓 개발은 미 육군에서 APKWS라는 명칭으로, 미 해군에선 LOGIR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됐다. 그중 미 해군은 개발 예산 절감을 위해 비슷한 무기를 물색하던 한국과 공동개발을 추진했다. 한국은 북한이 대량 배치한 공방급 공기부양정에 대한 대응책을 찾던 터였다. 이런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공동개발이 추진된 것이다. 그러나 해군이 예산 부족으로 개발사업을 중도 포기하는 바람에 미국은 육군 주도로 개발된 APKWS를 도입했다. 하지만 한국은 국방과학연구소와 LIG넥스원이 LOGIR이라는 사업명을 그대로 유지해 개발을 계속했다. 그 결과 2015년 첫 실사격 실험을 성공시키며 ‘비궁(匕弓·Poniard)’ 유도로켓을 완성해냈다.
비궁은 한국 해병대의 서북 도서 방어 임무를 위해 배치됐다. 유사시 북한 공기부양정의 상륙을 막는 해안포로 쓰이던 M47 전차 주포를 비궁으로 대체한 것이다. 해병대에 배치된 비궁은 5t 트럭에 20연장 발사기 2개를 붙인 40연장 시스템이다. 발사 차량에 설치된 조준 장비로 10㎞ 밖 표적을 식별하면 순차적으로 비궁이 발사된다. 로켓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관성유도시스템을 통해 표적 주변까지 날아간 후 열영상(IIR) 시커로 목표물의 적외선 영상을 확인해 최종 돌입한다. IIR 유도방식은 조준장치로 미리 입력한 표적의 적외선 형상과 로켓 센서로 스캔한 이미지를 매치시킨다. 플레어와 같은 적외선 기만책에 잘 속지 않아 명중률이 높다.
중국 견제하는 무인수상정용 무기 절실한 미국
미 해군의 무인수상정 ‘시 호크’. [미 해군 제공]
반면 미군의 현용 주력 유도로켓 APKWS에는 비궁과 같은 능력이 없다. APKWS는 레이저 유도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조준 단계부터 명중까지 누군가 표적에 레이저빔을 쏴줘야 한다. 레이저빔 조사 방식의 특성상 여러 표적이 동시에 접근하면 대응하기도 어렵다. 비궁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주제에 가격은 비궁의 1.5~2배인 4만 달러(약 5500만 원)에 달한다. 미군 입장에선 성능이 우수하고 가격경쟁력도 높은 비궁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이번 FCT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비궁을 발사한 플랫폼이 무인 무기체계 CUSV라는 점이다. 소형 보트인 CUSV는 모듈을 교체해 순찰·정찰·타격·대잠초계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다목적 플랫폼이다. 미 해군은 CUSV 같은 무인 플랫폼을 대량 도입해 이른바 ‘유령 함대(Ghost Fleet)’를 건설할 계획이다. 미 해군은 크기와 용도가 다양한 무인선박을 여럿 만들어 중국과의 군함 수 격차를 메우려 하고 있다. 미국이 건조하려는 무인선박 종류도 다양하다. Mk.41 미사일 수직발사기 4셀(cell)들이 40피트(12.192m) 표준규격 컨테이너를 여럿 싣는 대형무인수상정(LUSV)부터 이번에 비궁 발사 실험을 한 CUSV, 저가의 장거리 자폭·다기능 드론 ‘프라임(Prime)’ 등이다. 미 해군은 작고 가벼우면서도 막강한 위력을 가진 비궁을 이들 무인수상정의 주력 무기체계로 도입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미 해군 무인수상정은 중국 수상 함대와 맞서 싸우는 게 주된 목표다. 중국 역시 대규모 무인 함대를 준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사시 서태평양에선 미국과 중국의 무인수상정이 근접 난타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 가장 많이 도입되는 무인수상정용 무기는 원격조작방식 기관포다. 이런 기관포는 사거리와 위력 모두 부족해 무인 함대끼리 전투에서 효과적 무기가 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수십 발의 비궁 로켓을 탑재한 무인수상정이 배치되면 미 해군 무인 수상 함대는 압도적 전투 능력을 갖추게 된다.
비궁은 발사기 크기 2m 이내, 무게 400㎏(19발 표준 발사기의 로켓 만재 중량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조준 장비 성능에 비해 구성이 단출해 군함은 물론 소형 차량에 싣기도 용이하다. 일반 군함에 탑재해 소형 고속정이나 무인수상정 대응용으로 쓰기 좋고, 간단한 개조 후 무장 헬기에 실어 지상·해상 전투에 투입하기도 좋다. 무엇보다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할 때마다 수십여 척씩 쫓아오는 이란 고속정에 대응해야 하는 미국과 서방 강대국 입장에선 이만한 무기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