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욱의 술기로운 생활

전통주·수제맥주 ‘반색’, 소주 · 국산와인 ‘걱정’

주류세 기준을 가격에서 양으로 바꾸면?

  •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blog.naver.com/vegan_life

    입력2019-05-27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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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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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류시장이 시끌벅적하다. 정부가 주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현재 한국 주세법은 가격(과세표준)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從價稅). 그런데 정부가 지난해부터 술 양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從量稅) 시행을 검토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수입맥주 확산에 따른 국산맥주 소비량 감소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 확대 △지역 농산물을 사용한 고부가가치 전통주 제조산업 활성화 등이 있다. 종가세가 종량세로 바뀌면 전통주, 수제맥주 등은 세금이 현재보다 줄어들 개연성이 높다. 반대로 알코올 도수가 높은 소주는 세금이 인상돼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 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저렴한 편이라는 것이다. 주된 이유는 쌀, 보리를 자급자족하지 못한 데 있다. 1960년대 들어서도 보릿고개가 연례적으로 반복되자 정부는 미국의 잉여농산물, 밀가루 등을 본격적으로 수입했다. 1962년 벼농사와 1963년 보리농사가 흉작을 기록했는데, 미국에서도 대흉작이 발생해 미국산 농산물을 들여오기가 힘들어졌다.

    1960년대부터 ‘종가세’ 유지

    주류세의 종량세 전환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류 업종마다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사진은 국내산 와인인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왼쪽)과 수제맥주인 제주맥주. [사진 제공 · 오미나라, 박해윤 기자]

    주류세의 종량세 전환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류 업종마다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사진은 국내산 와인인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왼쪽)과 수제맥주인 제주맥주. [사진 제공 · 오미나라, 박해윤 기자]

    곡물 가격이 연일 폭등하고 국민의 불만이 쌓여가자 1965년 정부는 술에 관한 양곡관리법을 내놓았다. 쌀, 보리로 탁주나 소주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후 막걸리는 수입 밀가루로, 소주는 타피오카 등 저렴한 수입 원료로 만들거나 외국에서 주정(酒精)을 들여와 물을 넣어 만드는 희석식 소주로 제조됐다. 

    좋은 원료를 쓰지 못하게 된 국산 술은 제품이 대동소이해졌고, 가격도 획일화됐다. 그래서 술 가격에 세금을 매겨도 큰 문제가 없었다. 이에 1967년부터 종가세가 도입됐다. 주류 가격이 오를 때마다 주세 역시 상승하므로 세수 확보에도 유리했다. 

    종가세 시행으로 국내 주류업계는 원가 절감에 공을 들였다. 원가가 비싸 제품 값도 비싸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주류업계는 ‘가성비’ 위주의 제품을 만들었다. 술 포장지, 라벨에서도 ‘비용 절감’을 추구했다. 제품이 획일화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양적으로는 성장했다. 세계 증류주시장에서 양(量)을 기준으로 수출 1위 국가가 한국이다(주로 소주 수출). 지난해 맥주 수출액도 1억5000만 달러(약 1780억 원)를 돌파하는 등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수출상품이 프랑스 와인, 스코틀랜드 위스키와 달리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본에 수출되는 한국 맥주는 대부분 일본 맥주 기준(맥아 함량 10% 이상)에 못 미쳐 주로 마트 PB(자체브랜드) 상품으로 팔린다. 한국 술은 저렴하게 마시고 취하는 대상이라는 의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부가가치 문화상품으로 점점 더 발전해가는 케이팝(K-pop), 케이드라마(K-drama) 등 한류와는 딴판인 셈이다.

    종량세 전환 앞두고 업계마다 ‘온도 차’

    수입맥주의 공격적인 마케팅은 주류세의 종량세 전환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왼쪽). 종량세 전환으로 국내 소주 가격이 상승될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정부는 “주류세 개정이 주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뉴스1]

    수입맥주의 공격적인 마케팅은 주류세의 종량세 전환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왼쪽). 종량세 전환으로 국내 소주 가격이 상승될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정부는 “주류세 개정이 주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뉴스1]

    최근 술에 대한 기호가 다양해지는 추세다. 쌉싸래한 맛과 짜릿한 탄산을 시원하게 들이켜는 술이라는 의미에 그쳤던 맥주에 대해 요즘 소비자는 다양한 과실 향과 풍미를 요구한다. 편의점에서 1만 원에 4종류의 수입맥주를 고르는 요즘 20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입맥주를 골라 마시려면 전문 펍에 가야 했던 ‘아저씨’들의 이야기가 생소할 테다. 소주 역시 원료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증류식 소주시장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전통주도 트렌디한 디자인으로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고 있다. 여기에 더해 혼밥, 혼술 문화에 소확행, 가심비, 워라밸, 뉴트로, 펀슈머 등이 더해지면서 술에 대한 기호가 다양화·세분화되고 있다. 종가세로는 이러한 새로운 흐름을 따라갈 수 없음은 자명하다. 

    주세법이 종량세로 바뀌면 가격이 아닌 양에 세금이 매겨지면서 고부가가치 제품의 소비자가격은 낮아진다. 장인이 우리 농산물을 사용해 정성껏 만든 술이 보다 쉽게 소비자에게 다가설 수 있다. 우리 술의 다양한 맛과 문화가 확대될 수 있다. 한국 주류산업이 ‘저렴한 술만 만든다’는 오명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종량세 전환을 앞두고 업계마다 온도 차이를 보인다. 기존 세율이 5%로 낮았던 막걸리나 일반 소주는 가격이 오를 수 있다. 종량세 전환 논의의 촉매제가 됐던 수입맥주는 ‘4캔 1만 원’ ‘6캔 1만 원’ 같은 공격적인 마케팅이 앞으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전통주업계도 종량제 전환으로 고급 주류시장이 얼마나 확대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제민 한국와인생산자협회 회장은 “국산와인의 경쟁력이 낮은 상태에서 종량세로 전환돼 중·고가 수입와인의 가격이 인하되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3월 “주류세 과세체계 개편은 맥주, 소주 등의 가격이 오르지 않는 범위에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달라진 ‘한 잔 술’의 의미

    최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미국의 유명한 스페셜티 커피 ‘블루보틀’이 오픈하자 사람들이 몰려가 몇 시간씩 줄을 서서 커피를 사마셨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커피 한 잔, 햄버거 하나를 위해 몇 시간을 아낌없이 기다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고기를 택할 때도 동물복지를 고려한 제품이나 토종돼지, 토종닭을 찾는 소비자도 많다. 배고픔을 달래는 식사나 취하기 위한 음주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는 것이다. 

    종량세 전환은 시대 흐름에 발맞춘 것이란 게 필자의 생각이다. 물론 오랜 세월 국내 주류시장을 일궈온 업계의 의견을 반영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그간 양적 성장을 이끌어온 소주와 맥주, 그리고 주류 문화의 다양성과 사회적 가치를 이끌어온 전통주 및 지역 특산주업계의 의견을 잘 반영해 주류세 개편안이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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