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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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 콩티’ 탄생의 아버지는 수도사였다

[명욱의 술기로운 세계사] 최신 농업 기술 보유한 수도사들, 와인 만들며 부 축적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입력2024-07-21 11:2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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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 만들어지는 나라다. 프랑스의 와인 소비량은 1위지만, 생산량은 2위로 단순히 와인 양만을 중시하는 나라가 아니다. 한국에 수입된 국가별 와인 평균 가격 역시 프랑스가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을 압도한다. 특히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 와인은 최근까지도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이곳은 병당 수천만 원을 가볍게 호가하는 로마네 콩티(Romane′e-Conti)가 만들어지는 곳이자, 프랑스 정부가 지정한 특급 밭(Grand Cru·그랑 크뤼)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병당 가격이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로마네 콩티(왼쪽)와 해당 와인에 사용되는 포도를 재배하는 프랑스 부르고뉴 포도밭. [신동와인, 동아DB]

    병당 가격이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로마네 콩티(왼쪽)와 해당 와인에 사용되는 포도를 재배하는 프랑스 부르고뉴 포도밭. [신동와인, 동아DB]

    와인 생산 중심지였던 수도원

    부르고뉴가 프랑스에서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와인 산지라는 사실은 보르도와 비교해도 명확하다. 부르고뉴는 포도 재배 면적이 보르도보다 적지만 작은 크기의 ‘그랑 크뤼’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특히 한정 수량 생산과 수제라는 가치를 살려 최고가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곳에서는 와인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포도 품종도 레드 와인은 피노 누아르, 화이트 와인은 샤르도네를 중심으로 한다. 특이하게도 품종의 단순함 역시 부르고뉴 와인의 고급화를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와인 산지에서는 피노 누아르와 샤르도네를 재배해 고급 와인을 만들고 있다. [동아DB]

    프랑스 부르고뉴의 와인 산지에서는 피노 누아르와 샤르도네를 재배해 고급 와인을 만들고 있다. [동아DB]

    ‌‌부르고뉴에서는 어떻게 와인이 발전했을까. 이야기 중심에는 수도원이 있다. 과거 유럽 지역에서는 로마 황제와 교황이 각각 세속 권력과 교권을 행사했다. 로마 황제의 지배 아래 국왕, 제후, 영주 등 세 계층이 영토를 통치했고, 이 구조는 로마제국 멸망 이후에도 이어졌다. 당시 토지를 경작하는 데 가장 큰 고민거리는 농업 기술이었다. 갈리아 지역에 살던 게르만인에게는 농업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수도사 역할이 여기서 나온다. 라틴어를 읽을 수 있는 수도사들은 로마가 남긴 당대 최고 수준의 농업 기술을 익힐 수 있었고, 포교 활동을 하며 이를 전달하기도 했다. 포도 재배와 와인 제조는 다른 작물에 비해 큰 수입을 안겨줬고, 이 같은 상황이 구심점이 돼 수도원이 포도 재배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 수도원은 토지를 농민에게 임대해 임대료를 받거나, 임대한 토지에서 얻은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 부를 늘려갔다.

    하지만 수도원이 부를 쌓을수록 도적과 영주들의 표적이 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실제로 많은 수도원과 교회가 습격을 당해 와인은 물론, 다양한 귀중품을 강탈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수도원이 높은 벽으로 둘러싸이게 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결국 수도원은 군사를 지닌 영주 등에게 의지하고 그들과 결탁했다.

    세속 군주와 결탁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세속 군주가 교회 및 가톨릭 성직자의 임명권(선임권)을 갖게 되면서 성직자가 그들에게 기대게 된 것이다. 수도에 힘을 써야 하는 종교인이 권력자에게 휘둘리는 상황마저 펼쳐지는 등 성직자의 규율과 도덕은 해이해졌고, 신앙도 점차 타락하게 됐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운명 바뀌어

    자연스레 수도원의 독립성을 회복하자는 수도원 운동이 일어났다. 909년 프랑스 아키텐의 기욤 1세 공작은 클리뉘 지역에 완벽한 독립 조직으로서 수도원을 세웠다. 해당 수도원은 왕은 물론 백작, 주교 등도 간섭할 수 없다고 공언했지만 이를 위해서는 재정 자립이 필요했다. 수도사들이 찾은 해답은 포도 농사와 와인 제조였다. 그간 성찬 의식에 와인이 필요해 만들어왔는데, 판매 목적으로도 양조한 것이다.​ “기도하며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성 베네딕도회 규율 역시 이 흐름을 가속화했다. 성 베네딕도회는 529년 이탈리아 누르시아의 베네딕도가 몬테카시노에서 창건했으며, 그가 수도원 생활의 규범으로 세운 계율인 베네딕도 규칙서를 따르는 남녀 수도회 연합체를 일컫는다.

    클리뉘 수도원 개혁은 프랑스 전역은 물론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로까지 퍼졌다. 클리뉘 수도원이 위치한 곳이 바로 부르고뉴의 ‘마코네’라는 지역이다. 이 수도원이 배출한 인물로는 우르바노 2세가 유명하다. 클리뉘 수도원에서 수사로 종교 생활을 시작한 그는 후에 교황까지 올랐다. 우르바노 2세는 오늘날 로마 교황청 조직을 마련한 사람이지만, 중세 유럽의 흑역사라고 볼 수 있는 십자군전쟁을 시작한 인물이기도 하다.​​

    수도원 운동의 중심지였던 부르고뉴는 프랑스 대혁명을 기점으로 운명이 바뀌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수도원의 모든 포도밭이 일반인에게 나눠지게 된 것이다. 수도원 포도밭은 깨알같이 나뉘어 각각의 개성을 자랑하는 방식으로 전 세계 최고가 와인 산지로서 위치를 공고히 했다.​ 결과적으로 부르고뉴가 와인으로 유명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과거 농업 기술의 중심에 수도사가 있었고, 이곳에 교황을 배출할 정도의 대표 수도원이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수제의 가치 역시 잘 살린 덕분이었다. 수도원이 영주 등에 기대지 않는 독자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고, 그 중심에 와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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