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하면 팥죽이다. 서울 삼청동에 가면 ‘서울에서 두 번째로 잘하는 집’이라는 간판을 내건 팥죽집이 있다. 겸손인지 자랑인지 모르겠지만, 꽤 오래전부터 팥죽이 먹고 싶을 때면 찾는 곳이다. 예전 팥죽은 집에서 해먹는 음식이었다. 사고파는 음식이 아니었다. 사실 팥죽은 겨울철 계절음식도 아니다. 그 시작은 일종의 주술적 신앙음식이었다. 팥의 붉은색이 귀신을 내쫓는데, 특히 밤이 가장 긴 동지에 팥죽을 먹으면 나쁜 일이나 질병이 없어지며 귀신이 접근하지 못하고 사라진다고 믿었다.
지금이야 그런 의미로 먹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냥 겨울별미의 의미가 더 강하게 자리 잡았다. 동네마다 있는 죽집 덕에 팥죽은 사시사철 마음만 먹으면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다. 평소엔 생각나지 않다가 찬바람만 불면 뜨끈한 팥죽 한 그릇이 생각나는 건 전적으로 어렸을 때 어머니가 차려준 동지팥죽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어른 입맛이 되는 게 맞긴 한가 보다. 어릴 적엔 팥죽이 맛있다는 걸 잘 몰랐다. 새알도 남기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젠 적어도 맛은 안다. 그러면서 어릴 적 먹었던 그 맛에 대한 기억을 찾는다.
미각 중 일부는 기억에 의존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머니의 손맛, 그때 그 맛 같은 표현은 지극히 주관적이면서도 경험적인 기억이 맛의 기준이 된 예다. 찹쌀떡도 그렇다. 겨울밤이면 저 멀리서 들리는 찹쌀떡과 메밀묵을 외치는 소리에 대한 추억을 가진 세대라면 더더욱 겨울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다.
전통 먹을거리에 빠지지 않는 팥
송편의 팥도 그냥 들어간 게 아니다. 예전엔 이사를 가면 팥떡을 해서 이웃에게 돌렸다. 고사를 지낼 때도 팥떡을 했다. 지금도 고사를 지내는 곳에선 여전히 유효한 전통이자 문화다. 과거시험을 보러갈 때 팥밥을 먹고 갔다는 기록도 있다. 수험생에게 팥을 먹인 엄마들도 있었다. 그 밖에도 주머니에 팥을 넣고 다니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미신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만능 팥이었던 셈이다. 팥이 들어간 떡은 대개 맛있다. 우리나라 떡 중에는 팥이 들어간 게 꽤 많기도 하다. 우리는 떡뿐 아니라 빵에서도 팥을 아주 사랑한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빵을 조사하면 아마 1등은 압도적으로 단팥빵일 거다. 전 연령대가 모두 좋아하는 빵이면서 나이든 사람에겐 독보적인 지지를 받을 게 뻔하다. 물론 익숙한 빵이고 흔한 빵이라 그 가치를 가끔씩 잊어버리곤 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오래되고 늘 가까이 있어 익숙해지면 가치를 잊어버리기 쉽다.
만약 간식으로 단팥빵을 준다고 했을 때 단팥빵이란 이름 때문에 간식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스위트 레드빈 브레드를 준다고 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서울 강남의 고급 디저트 카페나 유명 빵집에 가면 영어가 잔뜩 붙은 특이한 빵 이름을 볼 수 있는데, 사실 그 상당수는 우리말로 풀이하면 익숙하게 먹던 빵들이다. 이름이 맛을 결정하지는 않아도 꽤 영향은 주나 보다.
우리는 뭐든 속이 차 있어야 맛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속 하면 달달한 팥만한 게 또 없다. 요즘 단팥빵에는 크림을 같이 넣기도 하고, 견과류나 치즈를 넣기도 한다. 다양한 속 재료로 변형되긴 해도 결국 속의 주인공이 단팥인 데는 변함없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 가장 먼저 먹었던 빵도 단팥빵이었을 거다. 지금도 좋아하고, 또 웬만한 빵집엔 다 있는 설탕이 묻은 단팥도넛도 오래된 옛날 빵이다. 충남 천안 호두과자도 속에 팥이 들었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먹었던 빵 하면 단팥을 빼놓곤 얘기할 수 없는 거다.
나는 전국의 유명한 단팥빵은 웬만큼 다 먹어봤다. 전북 군산까지 가서 이성당 단팥빵을 먹었고, 대전에선 팥이 들어간 성심당 튀김 소보로빵도 먹었다. 경북 안동 맘모스제과에선 대표 빵인 크림치즈빵과 함께 단팥빵도 챙겨 먹었다. 어느 유명 빵집에 가도 단팥빵은 꼭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빵이면서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빵이라서다.
단팥빵 전문점도 최근 많이 생겼다. 특히 두각을 드러낸 곳이 미인단팥빵, 서울연인단팥빵, 누이단팥빵이다. 단팥빵을 줄 서서 먹을 정도고, 하루에 1000개 이상씩 파는 매장도 생겼다. 개인적으론 강남의 팥고당이라는 단팥빵집을 좋아한다. 그득한 팥소와 촉촉한 빵이 일품이다. 하여간 우리 입맛에서 팥의 비중은 꽤나 크다. 특히 간식에선 단팥빵, 팥떡, 팥죽, 심지어 팥빙수까지 사계절 어느 철에도 팥을 건너뛰는 경우가 없을 정도다. 팥으로 차를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레드로즈 빈이라는 카페에서 팥차와 팥초콜릿을 판다.
겨울에 먹는 팥빙수도 별미
팥빙수는 한여름에만 많이 찾을 것 같지만 눈 오는 날에도 제격이다. 뜨끈한 걸 먹고 후식으로 팥빙수를 먹으면 그보다 좋을 수 없다. 서울 3대 팥빙수라느니, 줄 서서 먹는 팥빙수집이라느니 소문난 곳도 꽤 많다.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곳이 옥루몽, 동빙고, 밀탑이다. 여기에선 팥빙수와 팥죽을 다 판다. 그래서 겨울에도 사람들이 꽤 간다. 팥빙수 좀 먹어봤다는 이들 치고 이곳들을 안 들러본 사람이 없을 정도다.
개인적으론 서울 동부이촌동의 팥빙수집 동빙고를 좋아한다. 맛보단 이름 때문이다. 빙고는 조선시대 얼음을 관리하는 관청이었다. 대표적인 게 동빙고와 서빙고다. 이젠 얼음 관리 관청의 이름이 팥빙수집 이름이 됐다. 여긴 겨울철에도 팥빙수를 먹으려고 많이 간다. 여름에는 한참 줄 서야만 먹을 수 있지만 겨울엔 좀 더 쉽게 먹을 수 있다. 퇴근길에 들러 집에 있는 식구들을 위해 포장을 해가도 좋다. 서울 연남동 연남살롱의 팥죽과 팥빙수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꽤 소문이 났다. 얼음을 투박하게 갈아 만든 엄마손표 팥빙수도 좋다. 혹시 여름에 빙수 만드는 기계를 쓰고 넣어놨다면 한겨울밤에 한 번 꺼내도 좋겠다.
왜 이렇게 계속 팥 타령인가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팥 예찬론자는 아니다. 다만 팥이 일상과 우리 먹을거리에서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되새기고 싶었다. 바로 일상의 여유 때문이다. 때 되면 뭔가를 챙겨 먹거나 입는 것 자체가 우리 일상이 여유롭다는 증거가 아닐까. 사실 여유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대단한 걸 누리자는 게 아니다. 겨울 밤, 단팥죽도 좋고 팥빙수나 단팥빵, 찹쌀떡도 좋고, 아니면 메밀묵도 좋다.
다 같이 둘러앉아 수다를 떨며 음식을 먹는 동안 작지만 여유로운 일상의 기억을 가족 혹은 자신에게 선물해보면 어떨까. 명절과 기념일 말고도 뭔가를 챙길 날을 자꾸 더 만들자. 그게 행복이다. 일상을 호사스럽게 만드는 건 팥죽 한 그릇이나 단팥빵 하나로도 가능하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인가, 퇴근길에 먹을 걸 사들고 집으로 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괜히 내가 기분이 좋아진다.
지금이야 그런 의미로 먹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냥 겨울별미의 의미가 더 강하게 자리 잡았다. 동네마다 있는 죽집 덕에 팥죽은 사시사철 마음만 먹으면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다. 평소엔 생각나지 않다가 찬바람만 불면 뜨끈한 팥죽 한 그릇이 생각나는 건 전적으로 어렸을 때 어머니가 차려준 동지팥죽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어른 입맛이 되는 게 맞긴 한가 보다. 어릴 적엔 팥죽이 맛있다는 걸 잘 몰랐다. 새알도 남기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젠 적어도 맛은 안다. 그러면서 어릴 적 먹었던 그 맛에 대한 기억을 찾는다.
미각 중 일부는 기억에 의존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머니의 손맛, 그때 그 맛 같은 표현은 지극히 주관적이면서도 경험적인 기억이 맛의 기준이 된 예다. 찹쌀떡도 그렇다. 겨울밤이면 저 멀리서 들리는 찹쌀떡과 메밀묵을 외치는 소리에 대한 추억을 가진 세대라면 더더욱 겨울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다.
전통 먹을거리에 빠지지 않는 팥
송편의 팥도 그냥 들어간 게 아니다. 예전엔 이사를 가면 팥떡을 해서 이웃에게 돌렸다. 고사를 지낼 때도 팥떡을 했다. 지금도 고사를 지내는 곳에선 여전히 유효한 전통이자 문화다. 과거시험을 보러갈 때 팥밥을 먹고 갔다는 기록도 있다. 수험생에게 팥을 먹인 엄마들도 있었다. 그 밖에도 주머니에 팥을 넣고 다니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미신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만능 팥이었던 셈이다. 팥이 들어간 떡은 대개 맛있다. 우리나라 떡 중에는 팥이 들어간 게 꽤 많기도 하다. 우리는 떡뿐 아니라 빵에서도 팥을 아주 사랑한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빵을 조사하면 아마 1등은 압도적으로 단팥빵일 거다. 전 연령대가 모두 좋아하는 빵이면서 나이든 사람에겐 독보적인 지지를 받을 게 뻔하다. 물론 익숙한 빵이고 흔한 빵이라 그 가치를 가끔씩 잊어버리곤 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오래되고 늘 가까이 있어 익숙해지면 가치를 잊어버리기 쉽다.
만약 간식으로 단팥빵을 준다고 했을 때 단팥빵이란 이름 때문에 간식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스위트 레드빈 브레드를 준다고 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서울 강남의 고급 디저트 카페나 유명 빵집에 가면 영어가 잔뜩 붙은 특이한 빵 이름을 볼 수 있는데, 사실 그 상당수는 우리말로 풀이하면 익숙하게 먹던 빵들이다. 이름이 맛을 결정하지는 않아도 꽤 영향은 주나 보다.
우리는 뭐든 속이 차 있어야 맛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속 하면 달달한 팥만한 게 또 없다. 요즘 단팥빵에는 크림을 같이 넣기도 하고, 견과류나 치즈를 넣기도 한다. 다양한 속 재료로 변형되긴 해도 결국 속의 주인공이 단팥인 데는 변함없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 가장 먼저 먹었던 빵도 단팥빵이었을 거다. 지금도 좋아하고, 또 웬만한 빵집엔 다 있는 설탕이 묻은 단팥도넛도 오래된 옛날 빵이다. 충남 천안 호두과자도 속에 팥이 들었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먹었던 빵 하면 단팥을 빼놓곤 얘기할 수 없는 거다.
나는 전국의 유명한 단팥빵은 웬만큼 다 먹어봤다. 전북 군산까지 가서 이성당 단팥빵을 먹었고, 대전에선 팥이 들어간 성심당 튀김 소보로빵도 먹었다. 경북 안동 맘모스제과에선 대표 빵인 크림치즈빵과 함께 단팥빵도 챙겨 먹었다. 어느 유명 빵집에 가도 단팥빵은 꼭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빵이면서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빵이라서다.
단팥빵 전문점도 최근 많이 생겼다. 특히 두각을 드러낸 곳이 미인단팥빵, 서울연인단팥빵, 누이단팥빵이다. 단팥빵을 줄 서서 먹을 정도고, 하루에 1000개 이상씩 파는 매장도 생겼다. 개인적으론 강남의 팥고당이라는 단팥빵집을 좋아한다. 그득한 팥소와 촉촉한 빵이 일품이다. 하여간 우리 입맛에서 팥의 비중은 꽤나 크다. 특히 간식에선 단팥빵, 팥떡, 팥죽, 심지어 팥빙수까지 사계절 어느 철에도 팥을 건너뛰는 경우가 없을 정도다. 팥으로 차를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레드로즈 빈이라는 카페에서 팥차와 팥초콜릿을 판다.
겨울에 먹는 팥빙수도 별미
팥빙수는 한여름에만 많이 찾을 것 같지만 눈 오는 날에도 제격이다. 뜨끈한 걸 먹고 후식으로 팥빙수를 먹으면 그보다 좋을 수 없다. 서울 3대 팥빙수라느니, 줄 서서 먹는 팥빙수집이라느니 소문난 곳도 꽤 많다.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곳이 옥루몽, 동빙고, 밀탑이다. 여기에선 팥빙수와 팥죽을 다 판다. 그래서 겨울에도 사람들이 꽤 간다. 팥빙수 좀 먹어봤다는 이들 치고 이곳들을 안 들러본 사람이 없을 정도다.
개인적으론 서울 동부이촌동의 팥빙수집 동빙고를 좋아한다. 맛보단 이름 때문이다. 빙고는 조선시대 얼음을 관리하는 관청이었다. 대표적인 게 동빙고와 서빙고다. 이젠 얼음 관리 관청의 이름이 팥빙수집 이름이 됐다. 여긴 겨울철에도 팥빙수를 먹으려고 많이 간다. 여름에는 한참 줄 서야만 먹을 수 있지만 겨울엔 좀 더 쉽게 먹을 수 있다. 퇴근길에 들러 집에 있는 식구들을 위해 포장을 해가도 좋다. 서울 연남동 연남살롱의 팥죽과 팥빙수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꽤 소문이 났다. 얼음을 투박하게 갈아 만든 엄마손표 팥빙수도 좋다. 혹시 여름에 빙수 만드는 기계를 쓰고 넣어놨다면 한겨울밤에 한 번 꺼내도 좋겠다.
왜 이렇게 계속 팥 타령인가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팥 예찬론자는 아니다. 다만 팥이 일상과 우리 먹을거리에서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되새기고 싶었다. 바로 일상의 여유 때문이다. 때 되면 뭔가를 챙겨 먹거나 입는 것 자체가 우리 일상이 여유롭다는 증거가 아닐까. 사실 여유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대단한 걸 누리자는 게 아니다. 겨울 밤, 단팥죽도 좋고 팥빙수나 단팥빵, 찹쌀떡도 좋고, 아니면 메밀묵도 좋다.
다 같이 둘러앉아 수다를 떨며 음식을 먹는 동안 작지만 여유로운 일상의 기억을 가족 혹은 자신에게 선물해보면 어떨까. 명절과 기념일 말고도 뭔가를 챙길 날을 자꾸 더 만들자. 그게 행복이다. 일상을 호사스럽게 만드는 건 팥죽 한 그릇이나 단팥빵 하나로도 가능하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인가, 퇴근길에 먹을 걸 사들고 집으로 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괜히 내가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