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인권단체 회원들이 2014년 12월 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로비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마친 뒤 로비에 앉아 농성을 벌이고 있다.
법적 문제는 남성과 여성에 따라 국가에서 부여하는 권리와 의무가 다를 때 발생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병역의무의 이행이다.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지만 자신을 여성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부과되는 징집 의무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터이기 때문이다. 이에 병역법에서는 이러한 경우 정신의학적으로 성정체성 장애라는 질병명을 부여해 현역 복무 의무를 면제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면제 사유는 남용될 여지도 있다.
얼마 전 대법원은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22) 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는 자신의 생물학적 성(性)인 남성을 주관적으로 매우 불편해하면서 여성으로 변하고자 하는 지속적인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김씨는 중학생 시절부터 자신의 성정체성에 혼란을 느껴왔지만 어머니의 강요로 2011년 9월 군에 입대했다. 그러나 입대 직후 동료들과 함께 씻는 것조차 무서울 정도로 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낀 뒤 군 관계자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털어놨다. 이후 정밀 신체검사를 통해 ‘동성애로 군복무 적응이 힘들다’는 소견을 받고 귀가한 김씨는 주변의 성소수자들로부터 “여성호르몬 주사를 맞으면 군에 재입소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여성호르몬 주사 및 관련 처방을 받았다.
2014년 8월 8일 육군 30기계화보병사단 장병들이 특별인권 교육을 받고 있다.
쟁점은 병역법상 현역 복무 면제 기준인 ‘성정체성 장애’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의 문제다. 지금까지 병무청에서는 다소 소극적으로 해석해 성전환을 위해 외과적 수술을 시행 받은 자(트랜스젠더)만을 ‘성정체성 장애자’로 봤다.
그러나 진정한 성정체성 장애자 중에서도 여러 이유로 성전환 수술이 불가하거나 곤란한 경우가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성정체성 장애’의 기준을 외과적 수술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확인한 셈이다. 성전환 수술을 하지 못한 성소수자가 입대하면 군생활 중 여러 가지 곤란한 사정이 생기게 되고, 군에서도 이들을 끝내는 귀가 조치하게 된다. 문제는 귀가 조치 후 이들이 자신의 질병 상태에 대한 진단서를 제출해 병역면제 판정을 받으면 병역 기피죄로 기소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모병제를 택한 미국에서는 오히려 왜곡된 시선 없이 정상적으로 군복무를 하게 해달라고 성소수자들이 투쟁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성소수자의 병역 의무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