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은 무거움보다 어렵다. 코미디가 비극이나 진지한 드라마보다 더 어렵다는 의미다. 남을 울릴 수 있는 사람이 웃길 수 있다고 한다. 뛰어난 희극배우는 사실 그냥 뛰어난 배우다. 영화 ‘마스크’ ‘에이스 벤츄라’의 주인공 짐 캐리가 그런 예다. 우리가 보기엔 하나도 웃기지 않은 영화 ‘스트레인저 댄 픽션’이 코미디로 분류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코미디는 비극의 반대말, 즉 진지한 드라마의 반대말이자 해피엔딩 드라마를 의미한다. 지긋지긋한 삶의 고통에서 아름다운 결말을 이끌어내는 것, 그게 코미디일 것이다. “멀리서 볼 때는 희극, 가까이서 볼 때는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코미디라는 말 속엔 삶의 희로애락 중 ‘희’에 대한 성찰이 들어 있다. 삶의 구석구석을 살펴봤을 때 진짜 진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해적’은 당당히 코미디를 표방하고 나섰다. 하지만 ‘해적’이 말하는 코미디는 골든 글로브나 에미상에서 말하는 코미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코미디를 굳이 두 가지로 나누자면 상황으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시추에이션 코미디와 몸짓 또는 과장된 말로 관객을 웃기는 슬랩스틱 코미디로 나눌 수 있다. ‘해적’은 시추에이션 코미디에서 출발하지만 사실상 슬랩스틱에 거의 모든 웃음을 기대고 있다.
이런 식이다. 한 오라에 같이 손이 묶인 장사정(김남길)과 여월(손예진)이 화장실이 급해진다. 두 사람은 바다에 함께 들어가 방뇨를 한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 장사정과 여월 캐릭터가 어디에서 본 듯한 기시감을 준다는 점이다. 한동안 여름 오락물의 지존이던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속 주인공과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얼렁뚱땅, 실수투성이 두령 장사정 캐릭터는 여러모로 조니 뎁을 떠오르게 한다. 여월의 목숨을 노리는 소마(이경영) 역시 ‘캐리비안의 해적’ 속 악역과 닮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들이 쫓는 보물이 ‘국새’, 그리고 국새를 삼킨 ‘고래’라는 사실이다. 전설 속 보물의 상상력은 조선 건국 초기 사라진 국새로 실현된다. 망해버린 고려의 말단 장교 장사정이란 캐릭터나 벽란도(고려시대 최대 무역항) 등에 대한 설정은 이로 인해 가능해진다.
영화는 시종일관 관객을 웃기려 애쓴다. 문제는 이 웃음 포인트가 너무 뻔하다는 점이다. 산뜻한 충격과 예상 가능한 반전, 기대를 채우면서도 기대를 배반하는 웃음, 이 황금률을 찾는 게 ‘웃기는 영화’의 핵심인데, ‘해적’은 슬랩스틱 코미디의 향연에 멈췄다는 게 아쉽다. 앞서 말한 장르적 코미디처럼 인생의 한 국면에 듬직한 전언까지는 주지 못하더라도 웃음 끝엔 뭔가 여운이 남아야 한다. 다가오는 월요일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달래주는 KBS 2TV ‘개그콘서트’와 여름 극장가에 걸리는 코미디 영화는 달라야 하는 것 아닐까. ‘개그콘서트’ 인기 코너인 ‘렛잇비’만 해도 직장생활의 애환을 웃음으로 풀어낸다. 그런데 ‘해적’엔 아무런 관점도 의견도 해석도 없다. 노애(怒哀)에 대한 관찰 없이 희락(喜樂)만 풀어놓는 웃음은 헛헛하고 허전하다.
코미디는 비극의 반대말, 즉 진지한 드라마의 반대말이자 해피엔딩 드라마를 의미한다. 지긋지긋한 삶의 고통에서 아름다운 결말을 이끌어내는 것, 그게 코미디일 것이다. “멀리서 볼 때는 희극, 가까이서 볼 때는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코미디라는 말 속엔 삶의 희로애락 중 ‘희’에 대한 성찰이 들어 있다. 삶의 구석구석을 살펴봤을 때 진짜 진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해적’은 당당히 코미디를 표방하고 나섰다. 하지만 ‘해적’이 말하는 코미디는 골든 글로브나 에미상에서 말하는 코미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코미디를 굳이 두 가지로 나누자면 상황으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시추에이션 코미디와 몸짓 또는 과장된 말로 관객을 웃기는 슬랩스틱 코미디로 나눌 수 있다. ‘해적’은 시추에이션 코미디에서 출발하지만 사실상 슬랩스틱에 거의 모든 웃음을 기대고 있다.
이런 식이다. 한 오라에 같이 손이 묶인 장사정(김남길)과 여월(손예진)이 화장실이 급해진다. 두 사람은 바다에 함께 들어가 방뇨를 한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 장사정과 여월 캐릭터가 어디에서 본 듯한 기시감을 준다는 점이다. 한동안 여름 오락물의 지존이던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속 주인공과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얼렁뚱땅, 실수투성이 두령 장사정 캐릭터는 여러모로 조니 뎁을 떠오르게 한다. 여월의 목숨을 노리는 소마(이경영) 역시 ‘캐리비안의 해적’ 속 악역과 닮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들이 쫓는 보물이 ‘국새’, 그리고 국새를 삼킨 ‘고래’라는 사실이다. 전설 속 보물의 상상력은 조선 건국 초기 사라진 국새로 실현된다. 망해버린 고려의 말단 장교 장사정이란 캐릭터나 벽란도(고려시대 최대 무역항) 등에 대한 설정은 이로 인해 가능해진다.
영화는 시종일관 관객을 웃기려 애쓴다. 문제는 이 웃음 포인트가 너무 뻔하다는 점이다. 산뜻한 충격과 예상 가능한 반전, 기대를 채우면서도 기대를 배반하는 웃음, 이 황금률을 찾는 게 ‘웃기는 영화’의 핵심인데, ‘해적’은 슬랩스틱 코미디의 향연에 멈췄다는 게 아쉽다. 앞서 말한 장르적 코미디처럼 인생의 한 국면에 듬직한 전언까지는 주지 못하더라도 웃음 끝엔 뭔가 여운이 남아야 한다. 다가오는 월요일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달래주는 KBS 2TV ‘개그콘서트’와 여름 극장가에 걸리는 코미디 영화는 달라야 하는 것 아닐까. ‘개그콘서트’ 인기 코너인 ‘렛잇비’만 해도 직장생활의 애환을 웃음으로 풀어낸다. 그런데 ‘해적’엔 아무런 관점도 의견도 해석도 없다. 노애(怒哀)에 대한 관찰 없이 희락(喜樂)만 풀어놓는 웃음은 헛헛하고 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