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진 할로’, 그룸스, 1965년, 나무에 아크릴, 78×89×31, 워싱턴 D.C. 허시혼 미술관·조각공원 소장.
남자가 자기 가족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남자는 미모의 여자를 보면 가장 먼저 섹스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남들은 다 그래도 자신은 절대 안 그렇다고 항변하겠지만, 바지 속 물건만이 진실을 안다.
이렇듯 남자는 노소를 불문하고 시도 때도 없이 미모의 여자와 섹스하는 꿈을 꾸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꿈에 불과하다. 미모의 여자는 돈을 좋아하니 말이다. 부자일수록 미모의 여자를 선택하는 데 자유롭고, 가난한 남자는 치마만 두르면 만족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미모의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외모를 돋보이게 해줄 돈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스타는 가난한 남자에게 훌륭한 섹스 대체 상품이다. 영화, 드라마, 광고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스타를 보면서 꿈에서나마 평생토록 원했던 미모의 여자와의 섹스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를 경배하는 평범한 남자를 표현한 작품이 레드 그룸스(1837∼)의 ‘할리우드-진 할로’다. 진 할로는 1930년대 미국 할리우드의 섹스 심벌로 남자들로부터 최고의 사랑을 받은 여배우다.
은빛이 도는 금발의 진 할로가 미소 지은 채 긴 침대의자에 누워 있고, 검은색 턱시도를 입은 남자가 진 할로를 안으려고 침대 모서리에 무릎을 붙인 채 조심스럽게 앉아 있다. 진 할로가 무릎이 보이도록 들어 올린 다리는 섹시미를 강조하며,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팔은 목이 깊게 팬 드레스 위로 드러난 가슴골로 시선을 잡아끈다. 게다가 풍만한 가슴이 더 돋보이게 만듣다. 검정색 턱시도는 스타를 경배하는 남자의 심리를 나타내며, 붉어진 뺨은 미모의 여자에게 느끼는 성적 충동을 나타낸다. 진 할로를 향한 팔은 스타와의 섹스를 꿈꾸는 남자의 욕망을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은빛이 도는 금발, 붉은색 입술, 커다란 눈망울을 강조하는 짙은 눈 화장, 그리고 날씬한 다리는 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각인된 진 할로의 섹시 이미지를 나타내는 동시에 남자의 꿈을 형상화한 것이다.
스타는 저 하늘에 뜬 별처럼 멀리 있다. 가난한 남자에게 진정으로 성적 판타지를 심어주는 여자는 ‘핀업 걸’이다. 아름다운 반라의 여자가 가까운 곳에서 자신을 향해 미소 짓는다. 핀업 걸은 공장 노동자나 일용직 노동자, 군인, 트럭 운전사가 미모의 여자 사진을 사물함에 붙인 데서 유래했다. 가난한 남자는 핀업 걸을 바라보면서 오늘 밤도 꿈을 꾼다. 몸은 배우자와 함께 있고, 머리는 핀업 걸과 함께 있다.
(왼쪽)‘벨비타’, 라모스, 1965년, 캔버스에 유채, 152×178, 뉴욕 개인 소장. (오른쪽)‘베드포드 강간 사건’, 코우, 1983년, 캔버스에 유채, 뉴욕 생테티엔 갤러리 소장.
이 작품에 나타난 잘록한 허리와 탐스러운 엉덩이, 그리고 긴 다리가 매혹적인 여자의 자태는 핀업 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핀업 걸은 풍만한 가슴을 가진 관능적인 몸매의 여인이나 소녀가 대부분이다.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한 치즈 상자는 여체의 아름다운 곡선과 대조를 이루며 여자의 관능미를 강조한다. 라모스가 잘 어울리지 않는 치즈 상자와 여자를 함께 그린 이유는 사람들이 대량생산된 제품을 끊임없이 소비하면서 행복을 얻는다는 사실을 비판하기 위해서다.
가난하다고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욕망을 가지치기하면 할수록 성적 욕망이 강하게 살아남는다. 가난한 남자는 오히려 성적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게 인생의 걸림돌이다.
성욕을 억제하지 못한 가난한 남자를 그린 작품이 수 코우(1951~)의 ‘베드포드 강간 사건’이다. 이 작품은 1983년 미국 매사추세츠 뉴 베드포드 술집에서 실제로 일어난 집단 강간 사건을 다뤘다. 1988년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 ‘피고인’ 역시 이 사건을 소재로 했다.
실제 사건은 영화보다 더 참혹했다. 술집 당구대에 묶인 여자의 팔을 남자가 잡고 있고, 바지를 벗은 남자가 여자의 음부에 얼굴을 들이대고 있다. 그들 뒤의 남자는 바지를 엉덩이까지 내리고 서 있으며, 또 한 남자는 허리띠 버클을 풀고 있다. 순서를 기다리는 듯 서 있다.
술집 스탠드 의자에 앉은 남자는 담배를 피우면서 윤간하는 광경을 바라보고, 또 다른 남자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 사타구니에 손을 대고 있다. 그림 오른쪽 술병을 든 남자는 웨이터인데, 술병이 흔들리는 것은 그가 성적 충동을 느낀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 작품에서 중앙에 있는 조명 기구는 강간의 순간을 증언할 목격자 구실을 하며, 왼쪽에 유일하게 색채를 사용해 선명하게 표현한 ‘BAR’라는 글씨는 음침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동시에 여자의 고통을 암시한다.
남자의 연장은 때로는 천국을, 때로는 지옥을 경험하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