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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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유가족 고통과 슬픔을 아는가

이정향 감독의 ‘오늘’

  • 이화정 씨네 21 기자 zzaal@cine21.com

    입력2011-10-17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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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 유가족 고통과 슬픔을 아는가
    “오늘 오후 ○시, ○○에서 뺑소니 사고로 ○○살 ○모 씨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사라졌던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밤늦게 퇴근하는 여성을 골라 살해한 ○○대 남성이 오늘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위 소식처럼 저녁 9시 뉴스에 단골로 등장하는 사건이 있다. 늘 그렇듯 TV 화면엔 점퍼로 얼굴을 가린 뺑소니 운전자 혹은 연쇄살인범의 모습이 잡힌다. 그들은 말한다, 아니 변명한다. 그건 실수였다, 우발적 사고였다고. 30초 남짓, 단 몇 줄의 스트레이트 기사로 뉴스는 죽음을 보도한다. 참 건조하고 잔인하고 냉혹한 세계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치가 떨리는 것은 심층보도라며 유가족을 찾아가는 아침방송이다. “방송국에서 왔습니다!”라는 한 마디로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망연자실한 이들 앞에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댄다. 오열하는 가족에게 카메라를 켠 채 그들은 묻는다.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그 냉혹한 폭력에 맞서, 필자라도 TV 화면을 뚫고 들어가 주먹을 날리고 싶을 정도다.

    이정향 감독의 ‘오늘’은 끔찍한 범죄로 살해당한 피해자, 그 죽음 뒤에 남겨진 가족의 ‘오늘’을 그린다. 가족 혹은 연인,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라는 형벌, 유가족의 오늘은 바로 1분 1초 살을 찢는 듯한 아픔의 연속이리라. 뼈를 깎는 아픔을 안은 채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피해자의 유가족이다.



    이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면서 사건 피해자나 유가족에 대한 법적 조치가 아직도 많이 미흡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서 “영화 ‘오늘’이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가족에게 작은 위로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영화를 만든 동기를 말했다.

    영화 ‘오늘’은 고통의 시간을 버텨내는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는 ‘용서’에 관해 질문한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살해자를 용서하는 것이 과연 (종교적 의미에서) 구원 맞느냐고, 남아 있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마음 편히 살려면 용서해야 한다고 강권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이냐고.

    뺑소니 사고로 약혼자를 잃은 영화 주인공 ‘다혜’(송혜교 분) 역시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이 슬픔을 잊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최선의 길이라고 믿는 여자다. 다혜의 생일날, 약혼자(기태영 분)는 술 취한 친구(송창의 분)를 돌보려 함께 있던 그와 헤어져 길을 나선다. 돌아와 생일을 축하해주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그러고는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다.

    영화는 남자친구가 사고로 죽은 지 1년이 된 시점의 다혜에 대한 이야기다. 방송국 다큐멘터리 PD였던 그는 사고 이후 일을 그만둔다. 그러다 수녀의 부탁으로 살해자를 용서한 유가족의 모습을 기록하는 작업을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슬픔을 이기지 못한 채 비탄에 빠져 살아가는 유가족을 만나면서 그는 ‘과연 가해자를 용서한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을까’라는 의문으로 혼란에 빠진다.

    약혼자를 살해한 열일곱 살 소년. 그 소년은 약혼자를 죽이기 이전에도 자기 엄마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고, 다혜의 용서로 출소한 뒤에도 또 한 차례 살인을 저질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다혜는 반문한다. “만약 내가 그를 용서하지 않았더라면 또 다른 희생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다혜는 사건을 담당한 형사에게 묻는다. “가해자가 출소하면 피해자가 알아야 하지 않나요?” 형사는 “가해자는 피해자의 신원을 알 수 있지만, 가해자의 신분은 보장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지적한다. “대책 없는 용서가 답이 아니라, 그런 범죄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큐멘터리를 찍는 동안 다혜는 가해자를 용서하고도 그로부터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한 유가족의 비통한 심정을 마주한다. 또 ‘딸을 살해한 범인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어머니와도 대면한다. “딸을 죽인 범인의 가족이 나보다 더 불행할까?”라는 어머니의 질문 앞에 다혜 역시 말문이 막힌다. 다혜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지민(남지현 분)은 그의 사고를 뒤흔든다. 지민은 명문대에 합격한 천재지만 가족의 학대로 고통 받는 소녀다. 지민은 다혜에게 “가해자에 대한 용서는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라며 용서의 의미를 되묻는다.

    다혜는 아들을 유괴범에게 잃고 빛을 상실해가는 영화 ‘밀양’의 주인공 ‘신애’(전도연 분)와 여러모로 닮았다. 살려고, 죽지 않고 하루하루를 연명하려고 용서를 택했던 여자, 그리고 그 용서로도 끝내 구원을 얻지 못했던, 혼자 버티기엔 너무 큰 인생과 철학과 종교의 짐을 짊어진 채 사그라든 가련하면서도 나약한 한 여자 말이다.

    영화 ‘오늘’의 다혜 역시 ‘밀양’의 신애처럼 길을 잃는다. 다혜의 마지막 눈물이 흐르고 난 뒤에도 영화 ‘오늘’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 바랐던 미래, 오늘을 아픔 속에서 극복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피해자 유가족 고통과 슬픔을 아는가
    심장을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주제의 영화 ‘오늘’은 ‘집으로’ 이후 9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이 감독의 이전 작품과는 얼핏 다른 인상을 준다. 그러나 영화 ‘오늘’에는 이 감독 작품임을 알 수 있는 인장 같은 장치가 여럿 있다.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봤던 심은하의 우산을 연상시키는 송혜교의 노란색 우산, 성격은 다르지만 아픔을 공유하는 다혜와 지민의 인연이 소통으로 이어질 때, 그리고 다혜가 다큐멘터리의 대상을 스케치하는 동안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동영상으로 하객 인터뷰를 따던 ‘춘희’의 모습이 겹쳐질 때 등이 그렇다.

    이전 작품과 닮은 듯하면서도 한층 성숙해진 영화 ‘오늘’은 이 감독의 변화한 현재다.

    “나이가 들면서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졌다”는 이 감독이 9년간 매달렸다는 영화 ‘오늘’은 더할 나위 없이 믿음직스러운 그의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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