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게 아니라면 또 이런 생각은 어떠한가. 오후 3시쯤 때늦은 점심을, 꼭 배가 고픈 것은 아니지만 해 저물기까지 버틸 수 없는 시간의 엄살에 못 이겨 혼자 식당으로 들어가 ‘식사 되죠?’라고 물으면서, 그 답이 부정문으로 끝날 것을 염려하여 재빨리 의자에 앉아 뻘건 김칫국물 밴 신문부터 집어들 때, 우리는 이 한세상 사는 일의 버거움을 실감한다. 황지우는 시 거룩한 식사에서 이렇게 썼다.
나이 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점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 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하략)

이런 일에 대하여 김훈은 비장한 자세로 ‘밥벌이의 지겨움’이라고 표현했던가. 아무튼 그런 일을 마치고 거리로 나서면 이 도심의 거리는 제 몸을 좌판 삼아 번다한 일들을 아래위로 좌악 벌려놓고, 또 마치 제 몸의 겨드랑이나 옆구리들에 간판이며 노점상이며 파라솔 내건 핸드폰 판매대 같은 것을 끼고 길게 누워 있다. 추석이 지나고도 한참 동안 30℃를 오르내리는 열섬의 공간 안에 이 모든 것이 부대끼면서, 아차 그만 멀미가 날 것 같은 풍경에 압도되는 것이다. 높은 사무실이나 육교 같은 먼 곳에서 한가로이 완상하면 건조하고 권태로운 풍경이되, 가까이 내려와 숨 막히는 지열을 느끼면서 거리의 속살을 훔쳐보면 이 긴박한 일상이 우리의 들숨과 날숨 사이를 턱! 가로막아버린다.
소설가 김원우가 있다. 시인 김정환은 그를 ‘문장은 물론 일류고 작품 짜임새가 탄탄하고 예술성도 무지근하다’고 기억한다. 형 김원일이 분단문학의 강타자이고 아들 김좌영이 록밴드 ‘앰프’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는, 말하자면 예술가 집안의 중추인데, 아직도 컴퓨터 대신 원고지에 한 글자씩 채워나가는 ‘최후의 근대인’이라 할 만한 작가다. 그의 객수산록(客愁散錄)은 지금 이 시대에 중년 가장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마치 가겟방 의자에 앉아 십자수 놓는 심정으로 공들여 쓴 소설집이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중에 반풍토설초(反風土說抄)는 작가 ‘김 선생’과 시인이자 국어전문 입시학원을 운영했던 ‘나’가 주고받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우리가 ‘소설’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어떤 ‘줄거리’ 자체를 거의 갖고 있지 않은, 담화 그 자체만이 부피를 이루는 작품인데, 공들여 읽다 보면 주술에 사로잡히는 듯하다. 무병신음기(無病呻吟記)는 현대의 가정 살림에 속한 자라면 벗어던질 수 없는 의무, 곧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지독한 형벌에 갇혀 “멀쩡한 육신을 갖고서 생병을 앓는” 중년을 보여준다. 이 ‘무병신음’은, 김원우에 따르면 “불가해한 어떤 멍에에 닿는 것인지. 피멍 들게 만드는 그 멍에 때문에 다들 시난고난하는 난민처럼 어디에서든 오막살이 신세”를 면키 어려운 현대의 병이다.
표제작이 되는 객수산록은 명퇴를 앞둔 은행지점장의 시선으로 살핀 그와 그 주변 사람들의 복잡한 사연들을 소묘한 것이다. 김원우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중후한 산문으로, 언뜻 한가롭고 화평한 듯하면서 순식간에 불덩이처럼 타오를 것 같은 이 도심의 삶, 멀미 나는 거리의 삶, 오갈 데 있긴 하여도 그곳이 안식의 처는 아닌 삶에 대한 축약도를 그려낸다.
오갈 데 넘쳐나도 안식처는 아닌 곳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