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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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의 역습 거품 붕괴 카운트다운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8-09-29 1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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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의 역습 거품 붕괴 카운트다운
    고가 아파트들의 굴욕

    9월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별관 211호 경매법정. 두 번이나 유찰된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주상복합아파트 대림아크로빌 201㎡(61평)형이 가까스로 낙찰됐다. 낙찰가는 11억5300만원. 감정가 16억원의 72%에 불과한 금액이다. 이 아파트 소유자인 벤처사업가 김모 씨는 이 집을 담보로 H저축은행에서 19억원을 대출받았다. H저축은행은 결국 무리한 주택담보대출로 7억원이 넘는 손실을 떠안게 됐다.

    지난 7월 사상 처음으로 경매에 나온 타워팰리스 224㎡(67평·감정가 28억원)형이 두 번 유찰된 끝에 감정가 대비 69%의 금액(19억3600만원)에 낙찰된 이후, 경매시장에서 고가 아파트의 ‘굴욕’은 멈추지 않고 있다. 실수요자들의 구매욕구가 높은 30평형대 아파트들도 감정가 대비 70~75%에서 낙찰되고 있어 경매시장의 한파는 재건축 기대 심리가 있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부동산 시장 전반으로 퍼지는 형국이다. 부동산 경매 컨설팅업체 ‘원옥션’의 하완수 부장은 “경매 물건은 낙찰가의 90%까지도 대출이 가능하지만, 요즘은 글로벌 경기 침체와 금리 인상 탓에 빚을 내면서까지 부동산을 사들이려는 사람이 없다”며 침체된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2단지 재건축 현장도 경매시장의 분위기와 다를 바 없었다. 한때 13억원까지 갔던 112㎡ (34평)형 아파트가 10억5000만원에 나왔을 정도로 추가 분담금 등 자금 압박을 못 이긴 조합원 매물이 쌓여 있다. 10월에 시작되는 일반 분양이 잘될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 사실상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를 폐기하려는 정부 대책도 별 효과가 없다. K부동산 대표는 “팔려는 사람은 많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다. 종부세 개편안은 팔려는 사람을 위한 정책이라 시장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집값 상승 둔화가 뚜렷이 나타나는 가운데 서울 강남권을 비롯한 핵심 부동산 시장이 침체일로에 빠지고 있다. 전국 주택가격 상승세는 2007년 1/4분기를 정점으로 둔화되고 있다. 강남 송파 용인 등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은 주택가격이 이미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최근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뱅크’가 내놓은 분석에 따르면, 버블세븐 지역 내 60만1050가구 가운데 12만2447가구(21%)가 2006년 5월 참여정부가 버블세븐 지역으로 지정할 당시보다 집값이 하락했다. 아파트 5채 가운데 1채의 집값이 2년 만에 ‘도로 아미타불’이 된 셈. 부동산뱅크는 “경기 침체가 계속된다면 대부분의 아파트가 버블세븐 지정 당시 가격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부동산 투자 1번지’ 서울 강남에서는 이미 아파트로 돈 버는 시대는 지났다는 게 정설처럼 통한다. 2000년 이후 낮은 은행 금리를 이용한 부동산 투자로 큰 수익을 본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민 김모(44·여) 씨는 “이제 은행에서 대출받아 집을 사는 사람은 없다”며 “현금이 넉넉한 사람은 미국 부동산으로 눈을 돌리거나 제2 경부고속도로 인근 토지 매매에 나서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계에 다다른 가계부채

    부동산의 역습 거품 붕괴 카운트다운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고 있다”는,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감히 입에 담지 못하던 말이 점점 더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까지 서울시에 주택 및 부동산 정책을 자문한 서울시 정책전문관 출신 선대인 씨(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는 9월 말 출간한 저서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한경BP)에서 “2002년 카드채 거품은 주로 저소득층의 문제였지만, 부동산 거품에는 중상류층까지 대거 가담했다”며 “이번 집값 거품의 붕괴는 집값 급락 이후 장기간에 걸쳐 침체를 면치 못하는 ‘L자형’ 장기 대폭락이 될 것”이라고 전망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농협경제연구소도 8월에 펴낸 ‘가격 주택수요 분석을 통한 향후 주택시장 전망’에서 현재 집값의 25% 정도가 버블로 예상되며 향후 12~26%까지 집값 하락이 예상된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이 같은 버블 붕괴 전망이 나오는 주된 이유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중국 등 세계적인 집값 하향세에서 우리나라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가계부채가 한계에 달했다는 점이 우려를 낳는다.

    2008년 7월 말 현재 가계대출 잔액은 498조8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주택담보대출은 231조8901억원으로 올해 들어서만 10조원 가까이 늘었다. 한편 2007년 4/4분기에 80%에 머물던 가계소득 대비 지출이 올해 1/4분기에는 84%로 확대됐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9%대로 올라섰고, 올해 안에 10%대에 진입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누구도 쉽사리 집을 사겠다고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2007년 4월 삼성경제연구소는 ‘가계부채의 위험도 진단’이라는 보고서를 펴냈다. 결론은 한국의 가계신용 위험도가 2002년 신용카드 버블 붕괴 당시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가계부채의 절대 규모가 늘지 않더라도 가계대출 금리가 1.3%포인트 상승하거나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구입한 주택가격이 5.5% 이상 하락할 경우 가계신용 위험도가 2002년 신용카드 버블 붕괴 당시와 동일한 수준이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1년 5개월이 지난 현시점의 상황은 암울하다. 2007년 2월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6.2%였지만 현재는 8~9%에 이른다. 주택담보대출을 낀 ‘부동산 투자’가 횡행하던 지역들의 집값 하락세는 아직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집값의 90%까지 대출을 해준 미국 서브프라임 주택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LTV(주택담보인정 비율)나 DTI(총부채상환 비율) 규제를 했기 때문에 부동산 버블 붕괴에서 안전하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2006년 전후 이들 규제가 있기 이전에 이뤄진 대출이다. 30년 동안 장기적으로 원리금을 분할 상환하는 미국 모기지 시장과 달리, 국내 주택담보대출은 2~3년 이자만 상환하다 이후 몇 년 동안 원리금을 함께 갚는 방식이다. 집값이 떨어지고 가계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가운데 원리금 동시 상환 시점이 도래할 경우 ‘무너지는 가정’들이 속속 나올 우려가 있는 것이다.

    물량의 공포, ‘잠실 사태’의 교훈

    가계들의 집 살 여력은 바닥난 가운데 아파트 물량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공식 집계된 미분양 물량이 15만여 가구지만, 업계에서는 25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다 준공 후 미입주 물량까지 합해지면 ‘놀고 있는’ 아파트는 더 많아진다. 미분양 물량에 묶인 돈만 28조원으로 추산되며, 대부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자금을 끌어들였기 때문에 건설회사 → 은행으로 이어지는 연쇄 부실도 우려된다. 6월 말 현재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 규모는 12조2000억원이며, 연체율은 14.3%에 이른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9·19 주택공급정책을 통해 10년 동안 연간 50만 가구씩 모두 500만 가구를 추가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게다가 2009년 판교신도시 2만9000가구를 비롯해 위례(송파)·광교·동탄2 등 2기 신도시 물량 57만여 가구가 쏟아져 나온다. 5년 후 ‘이명박 물량’까지 가세한다면 부동산 시장은 장기침체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지도 모른다.

    “여기서 전세금과 융자금이 시세의 절반 정도만 돼도 안전한 축에 속해요.”(송파구 신천동 H부동산 대표 이모 씨)

    대규모 물량과 금융 부담이 맞물려서 찾아올 앞으로의 ‘공포’를 미리 보여주는 현장이 바로 얼마 전 입주를 시작한 송파구 잠실 일대의 재건축 단지다. 요즘 이 일대 부동산에서는 ‘급전세’ ‘급매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량이 크게 늘어 매매가와 전세가가 하락하는 가운데 이자 부담을 못 이겨 싸게 내놓은 물건들이 쌓여 있다.

    H부동산 이모 대표는 “잠실 시영 재건축 단지에서 전세가가 3억5000만원가량인 149㎡(45평)형이 최근 2억9000만원에 급전세로 나왔다”고 소개했다. 집주인은 은퇴자인데, 인근에 소유한 주택이 팔리지 않고 이자 부담만 늘자 4억원가량의 융자금 중 일부라도 갚을 요량으로 전세를 파격적으로 싸게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인근 장미아파트에 사는 모 은행원은 3억4000만원의 담보를 얻어 구입한 109㎡(33평)형을 급매물로 내놨지만 워낙 쌓인 물량이 많아 거래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판교도 마찬가지다. 분양 당시 분당의 집값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렸던 판교도 준공 시점이 다가오자 오히려 주변 집값을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미분양부터 해소하라”

    정부의 500만 가구 주택공급정책은 건설경기를 부양하려는 의도로 읽히지만, 시장에서는 오히려 부동산 시장 ‘장기 침체’의 신호로 해석한다. 주택 실수요자들이 공공임대주택이나 장기전세주택 등 싼값의 주택을 기다리게 돼 15만 가구의 미분양 주택 문제가 해소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다. 게다가 정부가 서울 도심지역 중심으로 주택을 공급하기로 해, 서울과 떨어진 2기 신도시들은 분양에 실패할 공산이 커졌다는 것이다.

    “주택 추가 공급 이전에 미분양 물량부터 해소해야 합니다.”

    지난 8월 보고서에서 부동산 거품 붕괴 가능성을 예측한 농협경제연구소 송두한 수석연구원은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현재 부동산 시장이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미분양이라고 지적하면서 미분양 대책이 전혀 논의되지 않는 현 상황을 답답해했다. 그가 제시하는 미분양 대책은 간단하다. ‘분양가가 시장원리에 의해 작동되도록’ 하는 것이다. 송 연구원은 “이 과정에서 건설업계의 손해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몫”이라고 덧붙였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팽배했다. ‘대출을 껴서라도 집 사는 게 남는 장사’라는 말이 나돌았다. 그러나 지금 ‘대박의 꿈’이었던 부동산은 점차 쪽박으로 변해가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금리 인상, 건설업계 불황, 주택시장 침체 등이 맞물려 집값 버블 붕괴가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의 복수’는 이제 시작이다.

    저출산과 비정규직, 주택시장에 어떤 영향 줄까

    5년 후 돈 없고 집 살 사람도 없고 …


    주택시장을 전망하는 데 인구구조는 중요한 변수다. 30세 전후에 결혼해 5년간 자금을 모은 뒤 35세쯤 주택을 사고 40, 50대에 평수를 늘리다가 55세 은퇴 이후 평수를 줄여 은퇴자금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다.

    앞으로 5년 후인 2013년이 되면 베이비부머 세대인 1958년생 개띠들이 만 55세가 되어 은퇴를 시작한다. 한편 1978년생은 만 35세가 되어 생애 첫 주택 구입에 나선다. 그런데 문제는 세대교체 당사자들의 규모 격차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1958년에서 7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사람은 연간 100만명에 달했다. 그러나 1978년 출생자는 이보다 25% 적은 75만명에 그친다. 2020년 만 35세가 되는 1985년생은 고작 66만여 명 수준. 베이비부머 세대가 내놓은 집들을 사줄 사람이 한참 모자라게 되는 것이다.

    결혼도 늦어지고 있어 생애 첫 주택 구입 연령 또한 점점 더 뒤로 밀리는 추세다. 2007년 현재 평균 초혼연령은 남성 31.1세, 여성 28.1세로 1990년과 비교해 남녀 모두 3.3세나 증가했다(남성 27.8세, 여성 24.8세).

    바로 이러한 점에서도 이명박 정부가 계획하는 500만 가구가 공급되기 시작할 5년 후의 시점부터 그 집을 살 사람이 부족한 아이러니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한편 88만원 세대의 ‘복수’도 예정돼 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이자 경제학자인 우석훈 씨는 “비정규직 세대들이 아파트를 구매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없다”고 잘라 말했다. 평생 소득이 집값을 상회하지 않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가 집을 사주거나 부모에게 물려받는 20, 30대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아파트 잠재수요자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 우씨는 “지방에는 정규직이라도 평균임금이 100만원이 안 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며 제주도의 경우 20, 30대의 60%가 저신용, 즉 은행 거래는 할 수 있지만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자료를 본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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