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8

..

‘첼로’ 든 음악 순례자의 가을 독백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10-30 14:0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첼로’ 든 음악 순례자의 가을 독백

    요요마는 1999년 이래 동서양의 문화를 음악으로 연결하는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4세 때 첼로를 배우기 시작해 5세 때 첫 연주회 개최, 7세 때 케네디센터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와 협연, 15세 때 고등학교 졸업, 17세 때 하버드대 입학, 26세 때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녹음, 그래미상 14회 수상….

    첼리스트 요요마의 삶은 전형적인 천재의 그것이다. 5세 때 ‘첼로의 성서’라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했던 사실이나, 15세에 이미 테크닉으로는 당대 어느 첼리스트도 따를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은 요요마를 설명하는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본격적인 연주자 생활에 나선 뒤 한 세대 가까운 시간 동안 그는 언제나 세계 최고의 첼리스트였다.

    1995년 서울과 부산에서 열린 독주회 이래 8년 만에 다시 열리는 요요마 독주회(11월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요요마가 대단한 음악가인 것은 단순히 그가 탁월한 재능의 소유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요요마는 과거의 음악인 클래식을 완전무결한 테크닉으로 되살려놓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음악을 찾아 나서는 ‘음악의 순례자’다.

    첼로는 피아노나 바이올린과는 달리 독주 레퍼토리의 수가 지극히 제한돼 있다. 요요마 역시 30대 중반에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이나 베토벤과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전곡,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등 웬만한 첼로 레퍼토리들을 모두 녹음했다. 로스트로포비치 같은 첼리스트는 아예 지휘자로 전업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요마는 지휘나 작곡으로 눈을 돌리는 대신 세계의 음악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통해 적극적으로 첼로 레퍼토리를 늘려나가고 있다. 마크 오코너, 에드가 메이어 등 미국 작곡가들과 함께 ‘애팔래치안 왈츠’ 같은 음반을 내는가 하면,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을 연주한 음반 ‘탱고의 영혼’으로 그래미상을 받았고 영화 ‘와호장룡’의 사운드 트랙까지 연주했다. 올해 하반기에도 에그베르트 히스몬티, 세르지오 아사드 등 브라질 음악가들과 함께 삼바와 보사노바를 담은 ‘오블리가도 브라질’이라는 브라질 음악 연주 음반을 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요요마는 1955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중국인인 그의 부모는 모두 음악가였다. 파리에서 성장하며 아버지에게 첼로를 배운 요요마는 7세 때 뉴욕으로 이주한 이후 계속 뉴욕에서 살고 있다. 이 같은 성장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요요마의 음악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요요마는 동양인도 서양인도 아닌 ‘세계인’인 것이다.

    ‘첼로’ 든 음악 순례자의 가을 독백

    지난해 상하이 방송교향악단과 함께 내한했을 당시 MBC TV ‘수요예술무대’에 출연해 사회자 이현우와 인터뷰하는 요요마(왼쪽).

    99년 이후 요요마는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주력하고 있다.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동서 문화의 만남을 꾀하는 이 다차원적인 예술 프로젝트를 위해 요요마는 이란의 전통음악을 컴퓨터 음악으로 되살리고 한국 작곡가인 강준일, 김지영의 곡을 가야금, 장구와 협연하기도 했다. 몽골의 전통 현악기 마두금까지 배워 녹음할 정도로 그의 호기심은 끝을 모른다.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연주하고 사람들을 만나왔습니다. 때로는 이국의 전통악기를 배워 연주하기도 했죠. 그러면서 저는 여러 가지 다른 문화들이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며 어딘가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상이한 동서양의 문화를 연결시켜주는 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실크로드’였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요요마가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전념하면서 한국의 고대사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식을 쌓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해 3월 상하이 방송교향악단과 함께한 내한공연에서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을 연주한 후 예술의전당 로비에서 즉석 연설을 했다. “백제의 왕인 박사가 1600년 전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양국의 문물을 전달했듯이 한국과 중국이 과거의 정신을 이어받아 더욱 긴밀히 교류해나가기를 바랍니다.” 그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700여명의 팬들이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보는 이의 마음을 절로 따스하게 만드는 선량한 웃음, 세계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 ‘사랑스럽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지적이면서도 서정성이 돋보이는 연주. 서울 독주회에서 요요마는 올해 초 출반된 ‘파리-라 벨 에포크’ 음반 수록곡인 포레 소나타 A장조, 드뷔시 소나타 1번 등의 프랑스 음악들을 연주한다. 프랑스는 요요마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첼로를 든 이 음악의 순례자는 연어가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듯, 자신의 어린 시절로 잠시 되돌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문의 02-720-6633)





    문화광장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