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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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기회 창조 나는야 ‘점핑족’

경력 점프 3인의 노하우 … 맡은 일 최선 다하며 험한 길 도전 ‘성공시대’ 열어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3-10-29 16: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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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기회 창조 나는야 ‘점핑족’

    HSBC 임영신 인사본부장.

    ‘평생 직장은 환상이다.’ 이 시대 직장인들은 누구나 가슴 한켠에 이 서늘한 경구를 담아두고 산다. 매해 사상 최악을 경신하는 취업 전쟁을 치르고 나면, 삼팔선(38세 정년을 가리키는 신조어)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취업은 더 이상 고된 백수생활의 마침표가 되어주지 못한다.

    위로 오르지 못하면 밀려나는 세상, 그래서 이 시대 직장인들은 ‘점프’를 꿈꾼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끝없이 높은 곳으로. ‘점핑족’은 이제 살아남아야 하는 직장인들의 새로운 역할모델이다.

    특히 취업이라는 선(先)목표를 이루기 위해 높은 연봉과 안락한 생활을 향한 욕심을 뒤로 미뤄둔 채 ‘일단 입사부터’ 한 최근의 직장 초년생들에게 ‘점프’는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기도 하다. 외국계 기업에 계약직으로 입사하거나 중소기업에 자리를 잡은 이들은 입사 초기부터 자격증을 취득하고 경력을 관리하며 또 다른 기회를 찾는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 준비된 자가 주인공

    그러나 점프를 꿈꾼다고 해서 모두에게 성공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은 아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점프를 거듭해 자신의 자리를 만든 이들, HSBC(홍콩상하이은행) 임영신 인사본부장(51), 푸르덴셜 생명보험 조의주 상무(41), 다음커뮤니케이션 임방희 이사(34)는 ‘점핑족’이 되기 위한 제1계명으로 ‘기회를 놓치지 말라’를 들었다.



    HSBC의 임본부장이 1975년 영국계 은행인 ‘스탠다드 차티드 뱅크’에 입사할 당시만 해도 여성의 취업은 그 자체로 ‘대단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은행에서 임본부장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비서 정도뿐. 그는 입사 후 줄곧 CEO(최고경영자) 비서로 근무해야 했다. 함께 입사한 남자 동기들이 다양한 커리어를 쌓으며 성장하는 동안 ‘인정받는 비서’ 자리에 머물러 있던 그에게 기회가 온 것은 1989년이었다. 외환 업무를 맡고 있던 차장이 갑자기 퇴직하자 후임 인사로 골머리를 앓던 CEO가 기회를 흘린 것. “당신이 그 자리로 가면 아무 걱정이 없을 텐데…. 세상에 당신만한 남자가 없네”라는 CEO의 ‘농담’을 임본부장은 놓치지 않았다.

    “지금 그 평가가 진심이라면 내게 기회를 달라고 했어요. 잘할 자신이 있다고 했죠.”

    결국 CEO는 “지금 내가 당신을 그곳으로 보내면 비서에게 특혜를 줬다는 구설에 오를 것이다. 대신 내가 한 말에는 책임을 지겠다. 지금부터 준비를 해라. 다음에 기회가 생길 때는 다른 후보들과 공개적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도 여자 비서가 일반 부서의 간부로 배치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더구나 임본부장은 당시 비서 업무만 15년을 맡았던 39세의 중년 여성. 그러나 그는 외환부 차장 자리가 다시 공석이 되었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이 자리에서 새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다.

    ‘점핑족’ 성공 수칙 두 번째는 ‘전문성을 쌓으라’는 것이다. 41세의 나이에 푸르덴셜 생명보험 대표 계리인을 맡고 있는 조상무는 국내 1호 여성 계리인이다. 1987년 라이나 생명보험 계리부에 입사한 후 2년 만에 계리인 시험에 합격한 그는 당시 미국 제1의 보험사였던 푸르덴셜에 스카우트됐다. 한 해에 계리인을 1~2명밖에 뽑지 않던 시절, 그는 푸르덴셜에서 바로 상품 개발의 주역을 맡았고 고속 승진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쇼핑사업 부문 대표인 임이사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 MBA 출신. 그 역시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인 한국 IBM에 입사했을 때는 시스템 관리 사무를 보는 일반 직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MBA는 그의 삶의 전환점이 됐다. 귀국 후 바로 시티뱅크의 애널리스트로 채용됐고, 1998년 외환위기 때 관심 분야였던 트레이딩 업무를 맡으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MBA 취득 후 가장 달라진 점은 전문적인 업무 영역이 생기고, 그것을 기반으로 간부진들과 교류할 수 있게 됐다는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결정권자에게 직접 말할 수 있게 됐죠. 당연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어요. 대단한 혜택이었죠.”

    임이사는 이때의 경력을 바탕으로 2001년 4월 다음커뮤니케이션의 CFO(최고재무관리자)로 한 단계 더 ‘점프’할 기회를 갖게 됐다.

    스스로 기회 창조 나는야 ‘점핑족’

    푸르덴셜 생명보험 조의주 상무.

    HSBC의 임본부장도 외환 업무를 맡은 후 전문성을 쌓기 위해 대학원에 다녔다. “대학원에 가겠다고 하니 당시 CEO가 ‘아이도 있는 주부가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살려고 하느냐. 그냥 편하게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It’s none of your business(그건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어요. 혹시라도 내가 공부하고, 아이 키우느라 직장 일을 소홀히 하면 그때 처벌하라고 말이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그때는 공부가 가장 필요했으니까요.”

    인사담당자가 된 후에도 임본부장은 해외연수에 빠지지 않는 등 전문성 기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이들이 꼽는 ‘점핑족’의 세 번째 덕목은 ‘회사 일을 나의 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경력관리를 통해 보다 좋은 회사로 옮기기를 꿈꾸는 ‘점핑족’이 나의 운명과 회사의 운명을 동일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그러나 이들은 바로 이러한 자세야말로 자신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푸르덴셜 생명보험의 조상무를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수식어는 ‘맞춤형 종신보험의 선구자’. 조상무는 푸르덴셜 생명보험에 입사한 이듬해인 1991년 국내 최초로 맞춤형 종신보험을 개발해 대박을 터뜨린 주인공이다. 종신보험뿐만이 아니다. 생명보험 수급자가 시한부 삶을 선고받을 경우 사망 전에라도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한 ‘여명급부특약’을 개발, 전 보험사에 퍼뜨린 이도 조상무다. 조상무가 개발한 상품들은 즉시 다른 보험사에 퍼져나갔고, 푸르덴셜 생명보험은 ‘현대식 보험의 선구자’로 이름을 떨쳤다. 1989년 한국에 들어온 푸르덴셜 생명보험이 빠른 속도로 정착한 데는 조상무의 아이디어가 큰 힘이 됐다.

    조상무는 “내가 이룬 일로 회사가 발전하면, 회사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 된다. 직장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경력은 어떤 업무를 맡아 어떤 성과를 냈느냐 하는 것”이라며 “이 회사를 발전시키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일하면 다른 모든 회사에서 서로 데려가고 싶어하는 ‘점핑족’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 필요한 것은 ‘네트워킹’이다. 자신의 능력을 알리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인정해줄 사람을 만드는 것이라는 게 이들의 조언이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임이사는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1년 선배가 남녀차별이 적은 IBM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준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미국 MBA행을 결정한 것은 또 다른 2년 선배의 조언 덕이었고, 시티뱅크를 다니던 내게 ‘다음’을 소개해준 것은 친구였다. 결국 나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주위사람의 도움을 받았던 것”이라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오랫동안 일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말하는 네트워킹이 도구적인 것만은 아니다. HSBC의 임이사는 “비서일을 그만두고 싶었을 때 당시의 CEO가 내 능력을 인정하고 기회를 열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겠느냐”며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진실하게 대하고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네트워킹”이라고 말했다. 임이사는 지금도 그가 ‘모셨던’ 8명의 외국인 CEO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각국의 인재를 뽑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인사 업무를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성공적인 ‘점프’의 마지막 요소로 ‘행운’을 꼽았다. 끊임없는 선택의 순간에 항상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운’이 따랐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임본부장은 안정적인 비서 자리를 박차고 새로운 업무 영역에 도전했고, 임이사는 당시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MBA를 따기 위해 이름 있는 직장에 사표를 냈다. 조상무 역시 계리인 시험에 합격한 후 익숙했던 직장을 떠나 새로운 일터를 선택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성공’을 가져다줄 것을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자신 앞에 놓인 두 갈래 길에서 언제나 험한 길을 택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성공으로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서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성공적인 점프를 꿈꾸는 직장인의 마지막 덕목은 ‘운’이 아니라 ‘도전적일 것’, 그리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임본부장은 “이제 더 이상 ‘평생 직장’이라는 말은 존재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며 “경력 점프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우선 자신의 자리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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