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경기도 분당에 사는 정미희(38·가명) 씨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공부를 봐주다 한숨을 쉬었다. 아이가 “막대 3개와 또 다른 막대 2개를 묶어…”라는 덧셈 문제에서 ‘묶다’의 뜻을 몰랐던 것. 정씨가 ‘put together’라고 설명해주자, 아이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정씨는 “한글을 제대로 깨치기 전부터 ‘영어유치원’을 보냈더니 아이가 우리말을 잘 모른다”며 “꿈틀꿈틀, 움찔움찔, 깡총깡총과 같은 말을 모를 때는 국어 과외라도 시켜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이 된다”고 털어놓았다.
#장면 2
서울 성북구에 사는 김윤정(35·가명) 씨는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가 같은 ‘영어유치원’ 출신 친구와 어울려 놀며 하는 말을 듣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체리야, 우리 선데이(sunday)에 엄마, 아빠랑 같이 주(zoo)에 가자. 펀(fun)할 거야.”
김씨는 “애들끼리 미국 교포처럼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얘기하더라고요. 이름도 ‘영어유치원’ 때의 영어 이름을 쓰고요. 아이들 발음이 좋아 잠시 흐뭇했지만, 남들이 들으면 좀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걱정되더군요”라고 말했다.
유치원 대신 영어학원 유치부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고민을 토로하는 학부모도 생겨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 우리말보다 영어를 자주 접하게 되면서 우리말 실력이 떨어지는 것. 아이를 2년간 영어학원 유치부에 다니게 한 강지연(39·가명) 씨는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영어는 학교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잘하지만 국어 실력, 특히 독해 능력이 떨어져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나치게 산만하거나 돌출행동을 보이고 학습장애를 일으키는 아이도 적지 않다. 첫아이를 영어학원 유치부에 보냈다는 고민정(37·가명) 씨는 “큰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아이 중 3분의 2가 ‘영어유치원’ 출신인데, 엄마들이나 선생님이 ‘영어유치원’ 출신이 대체로 산만하다는 데 동의한다”며 “정서적인 측면을 고려해 둘째는 일반 유치원에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마음대로 교실을 뛰어다니고 책상 밑에 들어가는 등 돌출행동을 하는 아이 중 ‘영어유치원’ 출신이 많다”고 귀띔했다.
어릴 때부터 외국인과 영어로 말하는 환경에 놓이다 보니, 대화 중 반응이나 제스처 등이 외국식인 경우도 많다. 또 한 반에 10명 안팎인 영어학원 유치부 환경에서 ‘곱게’ 자란 아이들은 초등학교 입학 후 한 반에 35명이 넘는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리더십이나 대인관계 능력 등이 일반 유치원 출신보다 떨어져 심한 경우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온라인 학부모 커뮤니티인 ‘목동엄마 따라잡기’의 이태형 대표는 “1년 넘게 ‘영어유치원’을 보냈더니 초등학교 입학 후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하는 엄마가 많다”고 말했다.
영어학원 유치부가 ‘영어유치원’이라는 이름으로 일반화한 게 현실인 만큼, 어느 곳에서 아이를 교육시킬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가 됐다. 하지만 아이의 인생이 달렸기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아이가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받으면서 영어도 잘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해 점검해야 할 내용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아이의 처지에서 바라보라’고 강조한다.
레벨 올리기 무리한 욕심은 금물
우선 아이의 우리말 발달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모국어의 기초가 제대로 잡혀 있는지, 표현은 원활하게 하는지 등을 체크한다. 그리고 아이가 우리말을 ‘잘한다’는 판단이 서면 그때 영어학원 유치부에 보낼지 여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태형 대표는 “모국어 기초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를 쓰는 환경에 놓이면 2개 언어 모두 제대로 배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특히 남자아이는 영어학원 유치부에 보낼 때 좀더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보다 언어나 사회성 발달이 빠르기 때문에, 언어 능력이 뛰어난 아이라면 2개 언어를 모두 잘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언어 발달이 늦은 남자아이들은 무리한 언어 자극을 받으면 의욕이 떨어지고 위축될 수 있다. 이 시기에 중점적으로 키워야 할 리더십이나 대인관계 능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영어학원 유치부에 보낸 뒤에도 아이가 영어를 좋아하는지, 학원 수업에는 제대로 적응하는지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이 대표는 “아이가 영어학원 유치부에 가는 걸 주저하는 것 같으면 일반 유치원으로 옮겨라”고 조언했다. 또 한 곳을 최소 6개월 이상, 가능하면 1년 이상 다니게 한다. 자주 교육환경이 변하는 것은 아이에게 좋지 않다.
부모의 무리한 욕심은 금물. 원더랜드 대치학원 강현숙 부원장은 “아이의 수준에 맞게 클래스 레벨을 낮추라고 해도 부득이 레벨이 높은 곳에 보내겠다는 엄마들이 많다”며 “비슷한 수준의 클래스에서 자신감 있게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영어학원 유치부에 다니는 아이들이 학원 밖에서는 최대한 모국어 환경에 노출되도록 해줘야 한다. 폴리스쿨 도형석 이사는 “아이에게 영어책을 2~3권 읽어준다면 우리말로 된 책을 5~6권 읽어주라고 부모들에게 충고한다”며 “우리말을 잘하는 아이가 영어도 잘하고, 우리말 동화책 읽기에 흥미를 붙인 아이가 영어 동화책 읽는 것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또 영어학원 외에 또래 집단이 많은 모임에 자주 참여시키는 것도 좋다.
한편 엄마가 아이에게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선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양하다. 학습효과를 높여준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원어민이 아닌 엄마가 외워서 하는 어색한 영어는 영어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이에게 정서적 불안감을 안겨준다는 의견도 있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정미희(38·가명) 씨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공부를 봐주다 한숨을 쉬었다. 아이가 “막대 3개와 또 다른 막대 2개를 묶어…”라는 덧셈 문제에서 ‘묶다’의 뜻을 몰랐던 것. 정씨가 ‘put together’라고 설명해주자, 아이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정씨는 “한글을 제대로 깨치기 전부터 ‘영어유치원’을 보냈더니 아이가 우리말을 잘 모른다”며 “꿈틀꿈틀, 움찔움찔, 깡총깡총과 같은 말을 모를 때는 국어 과외라도 시켜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이 된다”고 털어놓았다.
#장면 2
서울 성북구에 사는 김윤정(35·가명) 씨는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가 같은 ‘영어유치원’ 출신 친구와 어울려 놀며 하는 말을 듣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체리야, 우리 선데이(sunday)에 엄마, 아빠랑 같이 주(zoo)에 가자. 펀(fun)할 거야.”
김씨는 “애들끼리 미국 교포처럼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얘기하더라고요. 이름도 ‘영어유치원’ 때의 영어 이름을 쓰고요. 아이들 발음이 좋아 잠시 흐뭇했지만, 남들이 들으면 좀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걱정되더군요”라고 말했다.
유치원 대신 영어학원 유치부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고민을 토로하는 학부모도 생겨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 우리말보다 영어를 자주 접하게 되면서 우리말 실력이 떨어지는 것. 아이를 2년간 영어학원 유치부에 다니게 한 강지연(39·가명) 씨는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영어는 학교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잘하지만 국어 실력, 특히 독해 능력이 떨어져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나치게 산만하거나 돌출행동을 보이고 학습장애를 일으키는 아이도 적지 않다. 첫아이를 영어학원 유치부에 보냈다는 고민정(37·가명) 씨는 “큰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아이 중 3분의 2가 ‘영어유치원’ 출신인데, 엄마들이나 선생님이 ‘영어유치원’ 출신이 대체로 산만하다는 데 동의한다”며 “정서적인 측면을 고려해 둘째는 일반 유치원에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마음대로 교실을 뛰어다니고 책상 밑에 들어가는 등 돌출행동을 하는 아이 중 ‘영어유치원’ 출신이 많다”고 귀띔했다.
어릴 때부터 외국인과 영어로 말하는 환경에 놓이다 보니, 대화 중 반응이나 제스처 등이 외국식인 경우도 많다. 또 한 반에 10명 안팎인 영어학원 유치부 환경에서 ‘곱게’ 자란 아이들은 초등학교 입학 후 한 반에 35명이 넘는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리더십이나 대인관계 능력 등이 일반 유치원 출신보다 떨어져 심한 경우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온라인 학부모 커뮤니티인 ‘목동엄마 따라잡기’의 이태형 대표는 “1년 넘게 ‘영어유치원’을 보냈더니 초등학교 입학 후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하는 엄마가 많다”고 말했다.
영어학원 유치부가 ‘영어유치원’이라는 이름으로 일반화한 게 현실인 만큼, 어느 곳에서 아이를 교육시킬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가 됐다. 하지만 아이의 인생이 달렸기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아이가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받으면서 영어도 잘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해 점검해야 할 내용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아이의 처지에서 바라보라’고 강조한다.
레벨 올리기 무리한 욕심은 금물
우선 아이의 우리말 발달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모국어의 기초가 제대로 잡혀 있는지, 표현은 원활하게 하는지 등을 체크한다. 그리고 아이가 우리말을 ‘잘한다’는 판단이 서면 그때 영어학원 유치부에 보낼지 여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태형 대표는 “모국어 기초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를 쓰는 환경에 놓이면 2개 언어 모두 제대로 배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특히 남자아이는 영어학원 유치부에 보낼 때 좀더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보다 언어나 사회성 발달이 빠르기 때문에, 언어 능력이 뛰어난 아이라면 2개 언어를 모두 잘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언어 발달이 늦은 남자아이들은 무리한 언어 자극을 받으면 의욕이 떨어지고 위축될 수 있다. 이 시기에 중점적으로 키워야 할 리더십이나 대인관계 능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원어민 선생님과 함께 스쿨버스를 타러 가는 아이들.
부모의 무리한 욕심은 금물. 원더랜드 대치학원 강현숙 부원장은 “아이의 수준에 맞게 클래스 레벨을 낮추라고 해도 부득이 레벨이 높은 곳에 보내겠다는 엄마들이 많다”며 “비슷한 수준의 클래스에서 자신감 있게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영어학원 유치부에 다니는 아이들이 학원 밖에서는 최대한 모국어 환경에 노출되도록 해줘야 한다. 폴리스쿨 도형석 이사는 “아이에게 영어책을 2~3권 읽어준다면 우리말로 된 책을 5~6권 읽어주라고 부모들에게 충고한다”며 “우리말을 잘하는 아이가 영어도 잘하고, 우리말 동화책 읽기에 흥미를 붙인 아이가 영어 동화책 읽는 것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또 영어학원 외에 또래 집단이 많은 모임에 자주 참여시키는 것도 좋다.
한편 엄마가 아이에게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선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양하다. 학습효과를 높여준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원어민이 아닌 엄마가 외워서 하는 어색한 영어는 영어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이에게 정서적 불안감을 안겨준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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