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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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사용하는 역량도 ‘부익부 빈익빈’

개인과 국가의 AI 접근성 격차가 계층 구조 대물림

  • 김지현 테크라이터

    입력2025-12-0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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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AI) 서비스가 구독료에 따라 사용 가능한 기능에 차등을 두는 구독 모델을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GETTYIMAGES

    인공지능(AI) 서비스가 구독료에 따라 사용 가능한 기능에 차등을 두는 구독 모델을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GETTYIMAGES

    ‘인공지능 사용 역량 격차(AI Capability Divide)’가 부익부 빈익빈 구조를 심화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디지털 격차’ 문제가 대두되긴 했지만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쉽게 정보에 접근하는 세상’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오늘날 AI 도구들은 AI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에 차등을 둬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부유한 사람은 더 부유하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 상용 AI 서비스는 대부분 사용자가 내는 구독료에 따라 사용 가능한 양과 기능에 차등을 두는 구독 모델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오픈AI의 ‘챗GPT’, 앤트로픽의 ‘클로드(Claude)’, 구글의 ‘제미나이(Gemini)’가 모두 무료와 유료 버전을 제공하는데 이 두 버전의 품질은 확연히 다르다.

    챗GPT 무료·유료 품질 차이 확연

    일례로 챗GPT 무료 버전에서는 최신 모델 ‘GPT-5.1’을 정해진 횟수까지만 사용할 수 있고, 이후에는 ‘mini’ 버전으로 자동 전환된다. 이미지 생성, 파일 업로드, 음성 대화, 데이터 분석 기능의 사용량 역시 제한돼 있다. 또 무료 버전은 유료 버전보다 사용자가 대화창에 입력할 수 있는 정보 양이 적고 답변 생성 속도도 느리다.

    반면, 월 20달러(약 2만9300원)짜리 ‘Plus’ 버전을 사용하면 이미지 생성, 파일 업로드 등 다양한 기능의 사용 가능 한도가 늘어난다. 텍스트로 동영상을 제작하는 ‘소라(Sora)’ 기능도 추가로 사용할 수 있다. 월 200달러짜리 ‘Pro’ 버전은 고급 모델 ‘GPT-5 Pro’와 ‘o3’에 대한 최대 수준의 접근 권한을 제공한다.

    구독료에 따라 모델과 기능, 사용량에 차이를 두는 구조는 단순한 마케팅 전략이 아니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운용 비용과 전력 소모라는 기술적 제약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챗GPT 같은 거대 언어모델을 실시간으로 운영하려면 막대한 자원과 전력이 필요해 모든 기능을 무료로 제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AI 접근성의 격차는 생산성과 경쟁력 차이로 이어진다. 예컨대 챗GPT 무료 버전만 사용하는 직장인은 기본적인 텍스트 생성 결과만 업무에 활용할 수 있다. 이미지 생성·파일 업로드 등 특정 기능은 일정 횟수가 넘어가면 아예 사용조차 할 수 없다. 반면 월 20달러를 주고 Plus 버전을 사용하는 직장인은 문서 파일을 업로드해 심층 분석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 또 200달러짜리 Pro 버전 사용자는 복잡한 전략 분석이나 코딩 작업까지 빠른 속도로 수행할 수 있다. 업무에 같은 시간을 투자해도 챗GPT에 쓰는 돈 액수에 따라 업무 성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기업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AI 도구 구독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은 비싼 AI 도구를 활용해 더 많은 실험을 빠르게 반복하며 혁신의 속도를 높인다. 실제로 글로벌 컨설팅 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와 베인앤드컴퍼니(Bain&Company)는 기업용 AI 도구 ‘챗GPT Enterprise’를 도입해 직원들의 생산성을 20~30% 향상시켰다고 보고했다. 반면 비용이 부담스러워 AI 도구를 도입하지 못한 중소기업은 여전히 기본 업무에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

    국가 간에도 차이가 벌어진다. GPU 확보가 어려운 신흥국은 AI 모델을 독자적으로 개발·운영하기 어려워 선진국의 구독형 AI 서비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AI 기술을 가진 선진국은 점점 더 부유해지고 신흥국은 더 가난해진다.

    AI 접근성 격차는 계층 대물림을 강화하기도 한다. 글로벌 채용 시장에서는 이미 ‘AI 도구 능숙도(AI Tool Proficiency)’가 이력서의 핵심 항목으로 부상했다. 실제로 많은 채용 공고가 챗GPT, 코파일럿 등 AI 도구 활용 경험을 우대 사항으로 명시하고 있다. 마케팅·디자인 직군에서는 ‘미드저니’ 같은 이미지 생성형 AI 도구 사용 경험이 우대 조건으로 적시되는 사례도 빠르게 늘고 있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바탕으로 유료 AI 도구를 사용해 ‘AI 포트폴리오’를 갖춘 취업준비생이 더 좋은 일자리에 취직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AI가 심화할 불평등 개선 모색해야

    이 같은 사회 불평등을 개선하려면 AI 기술에 대한 공정한 접근성 보장이 필요하다. 이에 일부 국가의 정부와 시민단체는 AI 접근성 격차를 완화하려는 시도를 실천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AI를 도로나 전기처럼 공공 인프라로 바라보자는 ‘AI 애즈 퍼블릭 인프라스트럭처(AI as public infrastructure)’ 운동도 확산하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올해 ‘AI 바우처 지원사업’을 통해 중소·중견기업, 소상공인에게 AI 사용 비용을 지원함으로써 이들의 AI 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

    AI의 효용이 개인과 사회 전체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AI를 공공재적 재화로 인식하는 사회적 전환이 필요하다. 데이터, AI 모델, 컴퓨팅 자원을 공공재에 가깝게 운영해 기술과 그 효용이 널리 공유될 때 AI 기술도 혁신을 지속할 수 있다. 사용자가 얼마를 내는지에 따라 AI 접근성에 차등을 두는 글로벌 AI 기업의 비즈니스 전략이 앞으로도 이어진다면 AI는 지식을 나누는 도구가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하는 장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AI가 심화할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사회적 담론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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