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8일 내한공연을 가진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맥 드마르코.
작업을 거의 대부분 미국 브루클린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끝낸 이 앨범은 미국 인디록의 어떤 흐름을 대변한다. ‘슬래커(slacker·게으름뱅이)’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나른한 보컬과 영롱하고 선연한 기타 멜로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낙관 가득한 분위기가 앨범 한 장을 그대로 메운다. 소박하지만 빛나는 팝 센스가 어느 한 곡도 빼놓지 않고 차지게 묻어 있다. 이런 음악을 사랑하는, 귀 밝고 빠른 이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약 500석 규모의 공연장이 진작 들어찼다.
보통 음반 분위기는 무대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곤 한다. 헤비메탈 밴드의 공연에서는 격렬한 퍼포먼스를 기대하는 게 당연하고, 힙합 뮤지션에게는 관객과 무대가 하나 되는 그루브를 바라기 마련이다. 어쿠스틱 뮤지션에게서는 침묵의 경청이 공연장을 메운다. 드마르코에게 기대한 건 적당한 그루브와 음악에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종류의 음악이 늘 그렇듯,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리며 몸을 앞뒤로 흔들흔들하는 시간이 되리라 예상했던 것이다.
편안한(혹은 후줄근한) 라운드 티셔츠에 헐렁한 청바지를 입고 등장한 드마르코는 애초 예상과 전혀 다른 공연을 한 시간 반 남짓 선보였다. 백업 기타와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 3인조 밴드와 함께 그는 앨범에 담긴 음악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자신을 테일러 스위프트라고 소개하는 등 멤버들과 함께 할리우드 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만담을 주고받으며, 꽤 많았던 외국 관객은 물론 한국 관객에게도 웃음을 선사했다. 얌전한 샌님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화장실 개그’를 떠올리게 만드는 각종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공연의 백미는 마지막 곡 ‘Still Together’였다. 길게 연주되는 간주 부분에서 그는 객석으로 몸을 날렸다. 무대 바로 앞에서 객석 맨 뒤까지, 관객들 손에 떠받쳐 파도 위 부유물처럼 떠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둥실둥실 무대 위로 흘러왔다. 공연장 뒤쪽 좌석이 2층 높이였으니 마치 배가 운하의 도크를 거쳐 위로 올라가듯 공중부양 보디서핑을 한 셈이다. 공연 초반부터 무대 앞에서 자기에게 노래를 시켜달라고 소리치던 중년여성 관객을 결국 무대 위로 올려 그가 부르는 ‘학교종이 땡땡땡’에 맞춰 반주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퇴장시키는 등 신인임에도 능수능란한 진행을 선보였다. 한마디로 음악과 달리 오랜만에 ‘똘끼’ 넘치는 공연의 즐거움을 선사했던 것이다.
그 즐거움이 가시기 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격한 퍼포먼스가 난무하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언젠가부터 관객끼리 몸을 부딪치는 행위가 민폐처럼 돼버렸다. 관객도, 뮤지션도 너무 얌전해졌다. 좋은 연주와 노래를 선보이는 것, 즉 ‘웰메이드’ 공연만이 전부는 아닐 텐데 말이다. 라디오 공개방송 같은 공연도 좋지만, 일반인과는 다른 아티스트의 ‘똘끼’를 무대에서 만나는 것도 공연이라는 시공간의 즐거움이다. 웰메이드가 어떤 움직임을 완성하는 영역이라면, ‘똘끼’의 분출이야말로 그 움직임을 만드는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한국 인디음악이 탄생한 지 20주년 되는 해다. 홍대 앞이란 공간을 신촌의 변방에서 독립문화 출발지로 만들었던 힘이 바로 그 ‘똘끼’였다. 시선과 평가를 의식하지 않고, 내면의 거친 욕망을 있는 그대로 뿜어내는 신인들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