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철 바른음원협동조합 발기인 대표가 7월 16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바른음원협동조합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노래를 너무 잘하는 거야. ‘어, 저 인간 뭐지?’ 하면서 계속 연주했지. 처음 보는 사람이랑 그 곡을 완주한 거야. 딱 마치고 정적이 몇 초 흘렀어. ‘우리 얘기 좀 할까요?’ 물으니 ‘그러죠’ 하더라고. 바로 앞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삶은 달걀 하나 사고 소주 한 병 깠지. 되게 신기하더라고. 술 한 잔씩 먹고 한 15분 지났나? 갑자기 ‘대철아, 나 모르겠니? 나 임재범이야’ 이래. ‘어, 임재범? 진짜야?’ 그때부터 다른 생각이 안 드는 거야. 그런 거 있잖아. 오른팔을 얻었을 때의 느낌. 유비가 제갈량을 만났을 때 그런 느낌인 거지.”
흡사 무협지의 한 장면 같은, 신대철과 임재범이 처음 만난 순간의 이야기다. 이튿날 신대철은 이미 영입한 보컬에게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이별을 통보하고 임재범을 끌어들인다. 고교 동창이었으나 학교에선 마주친 적 없었다는 두 사람은 이렇게 만나 한국 최초의 헤비메탈 앨범 시나위 1집을 발표하게 된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담긴 바로 그 앨범을.
신대철의 인터뷰집 ‘뛰는 개가 행복하다’(신대철·김철영 지음)는 특별할 수밖에 없던 유년기 기억부터 시나위를 통해 배출한 김종서, 임재범, 서태지, 김바다 등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겨 있다. 서울 종로3가 파고다극장을 중심으로 벌어진, 마치 무림과도 같았던 1980년대 헤비메탈계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있다. 불공정한 음원 비즈니스에 맞서 ‘바른음원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된 배경에는 동료와 후배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결의가 있고,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질문과 답변에는 시민의식이 발현될 수밖에 없는 성장 배경이 있다.
1975년 말 박정희 정권은 대중음악계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저격’ 대상이 된 건 한국 록의 대부이자 당시 ‘미인’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신중현. 바로 신대철의 아버지다. 인터뷰어인 김철영 MBC 라디오 PD는 묻는다. “‘남산’도 가셨던 거죠?” 신대철은 답한다. “고문당했지. 옛날에는 기본이니까. 물고문당했던 것 같아. 수건 덮어놓고 위에서 물 부어서 숨을 못 쉬게 하는…. (중략) 고문당하고 돌아오신 다음에 예전과 다르다는 걸 많이 느꼈어. 지금도 사람 말을 잘 안 믿어. 뻔한 진실인데도 안 믿는 경향이 있어.”
초등학생이던 신대철은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록스타 아들에서 ‘대마초왕’의 아들로 전락한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면서 위축된 성장기를 보냈다. 하지만 그의 시민의식이 싹튼 것도 그때였다. “초등학교 때 대마초 사건을 겪고 난 다음에 어른이 된 것 같아. 그냥 다 알아버린 거야. 세상이 어떻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신대철은 인생과 음악은 선악이 아닌 선택이라 일관되게 말한다. 1980년대 그의 라이벌이던 김태원이 후일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지만, 다만 자신이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을 따름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살 것인지는 결국 선택을 통해 얻고 잃는 것의 문제일 뿐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수많은 선택으로 이뤄진 자신의 인생을 그는 스스로 “적어도 주저하지는 않았다”고 평한다. 음악 유전자를 타고 세상에 태어나 한국 헤비메탈의 전성기를 열었고, 이제는 위기의 한국 음악계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로커의 생각과 철학이 책 전체에 흐른다. ‘뛰는 개가 행복하다’는 제목만큼이나 거침없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