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에 있는 한옥 호텔 ‘구름에’는 체계적인 시장조사, 해외 사례 연구, 현대적인 인테리어 설계 등을 통해 탄생했다.
우리는 그동안 여행으로 그런 욕구를 충족해왔다. 하지만 여행은 너무 짧고, 현지인이 아닌 여행자 시각으로만 낯선 곳을 본다는 한계도 있었다. 한 달 살기는 일종의 절충이자 타협안이다. 원래 제주에는 돈 많은 서울 사람들의 별장이 꽤 많았다. 이제 서민도 단기임대를 통해 한 달간 제주에서 자기만의 일상을 누릴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됐다. 단기임대의 경우 한 달에 들어가는 돈이 우리가 서울에서 생활하는 돈보다 적거나 비슷한 경우가 많다. 얼핏 보면 큰 사치 같은 제주에서의 한 달 살기가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꽤나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소비여력과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여행도 더 많이 가게 됐고, 기존 여행과 다른 새로운 여행에 대한 관심도 커져가고 있다. 서유럽과 북미는 웬만큼 다녀왔기에 동유럽, 북유럽, 남미, 심지어 아프리카까지 찾는다. 이제 배낭여행도 젊은이의 전유물이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의 여행 문화로 자리 잡았고, 해외여행은 아주 보편적인 문화이자 필수요소로 느껴진다. 오늘의 작은 사치는 낯선 곳에서 맞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다.
제주도 아파트단지 임대 붐
경북 안동의 고택 리조트 ‘구름에’는 조명과 에어컨 등을 벽 뒤와 천장 등에 배치해 전통 한옥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했다.
사실 한 달 동안 직장을 떠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호사지만, 프리랜서를 비롯해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결정적으로 장기휴가를 주는 기업도 생기면서 한 달 살기는 더는 로망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한 달까지는 아니어도 2~3주 휴가라면 그리 불가능한 미션도 아니다.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는 직장이라면 주중 닷새만 휴가를 내도 앞뒤로 있는 토, 일요일을 합치면 총 9일이라는 시간이 생긴다. 여기에 연휴라도 하나 붙이면 2주 정도가 된다. 아직 한 달 살기는 못 해봤지만 낯선 도시에서 2주 살기는 많이 해봤다.
일 년에 한 달이라도 낯선 도시에서 현지 주민처럼 지내는 건 짧게 다녀오는 여행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고, 일상을 즐겁게 만드는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제주는 한 달 살기를 꿈꾸는 이에게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다. 비용을 고려하면 국내가 낫고, 국내에서 이국적이고 낯선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장소 가운데 하나가 제주이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신혼여행지이자 학생들의 수학여행지였던 제주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낯선 도시에서 한 달 살기는 이제 그들만의 리그 같던 소수 문화에서 보편적 문화의 영역으로 점차 옮겨오고 있다. 여행도 뭔가를 구경하는 것에서 자신의 즐거움을 위하는 것으로 달라지고 있다. 바쁘게 돌아다니며 사진만 찍는 여행이 아니라, 현지인의 일상에 녹아들 듯 천천히 여유를 즐기는 여행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 달 살기는 꽤나 흥미로운 여행 문화다. 제주에서의 한 달 살기는 어떻게 계획하느냐에 따라 일주일짜리 유럽 패키지여행보다 비용이 더 저렴할 수 있다.
한 달 살기처럼 낯선 공간으로의 이동만 있는 건 아니다. 낯선 시간으로의 이동도 있다. 수백 년 된 고택에서 맞이하는 일상은 우리의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준다. 첨단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다 보니 오히려 아날로그 공간이 주는 낯설면서도 새로운 경험이 그립다. 경북 안동에는 ‘구름에’라는 한옥 호텔이자 고택 리조트가 있다. 새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1600~1800년대 양반가를 그대로 활용했다.
전국 조선시대 고택 650여 채 가운데 4분의 1 가까이가 안동에 있는데, 1975년 안동댐을 지으면서 수몰지역에 있던 수많은 양반집을 이전했다. 여기 고택들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안동댐 때문에 한 번 옮겼다가, 민속촌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흩어진 고택을 가까이 모을 때 또 한 번 옮겨졌다. ‘구름에’는 그렇게 옮겨진 고택 7채로 만든 리조트다. 수백 년 된 양반 종갓집 또는 학문을 정진하고자 지은 건물에서 잠을 잘 수 있게 된 것이다. 전국에 한옥 형태로 지은 리조트는 많지만 오리지널 조선시대 고택에서 잠잘 수 있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고택에서의 잊지 못할 하룻밤
일본 다카야마 시내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부티크 료칸 ‘이야마’.
일본에도 고택 료칸이 많다. 그리고 아주 비싸다. 그럼에도 성수기 때는 예약을 못 할 정도로 인기다. 일본인뿐 아니라 많은 나라 사람들이 일본의 전통 고택과 숙박 문화를 매력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공간인 료칸을 찾는다. 유럽에서도 고성을 활용한 호텔을 비롯해 오래된 집이 호텔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곳에선 웅장하고 높은 최신식 호텔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매력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전통과 과거의 느린 삶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가끔 우리에게 낯선 일상이 필요한 이유는 일상이 주는 익숙함, 식상함 때문이다. 낯선 공간, 낯선 시간에서 맞이하는 일상이 우리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치는 물건을 사거나 남에게 드러내는 데 집중됐다면, 요즘의 사치는 경험을 쌓고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데 더 집중된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의 사치는 작은 사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 액수를 떠나, 돈을 쓰는 관점이자 목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일상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어도, 가끔 낯선 곳에서 일상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그것이 우리 일상을 더 즐겁게 만드는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제주에 가든, 고택에 가든, 한적한 바닷가나 섬으로 떠나든 그건 각자의 선택이다. 이런 데 쓰는 돈은 어떤 물건을 사는 데 쓰는 돈보다 훨씬 값지지 않을까. 자신의 낯선 경험과 사색, 행복을 위해 쓰는 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