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인천 펜타포트록페스티벌을 즐기는 젊은 관객들.
무대 앞에는 사흘 행사 기간 중 가장 많은 관객이 모여 그들의 노래를 합창하고 리듬에 맞춰 춤추며 액션에 환호했다. 카사비안은 한국 팬의 열광적인 반응에 화답이라도 하듯 본 공연 90분에 앙코르 30분의 꽉 찬 무대를 선사했다. 마지막으로 비틀스의 ‘All You Need Is Love’를 커버하며 퇴장할 때까지 무대와 객석은 단 한순간도 식을 줄 몰랐다.
그들이 퇴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펜타포트와 줄곧 함께한 빗줄기를 하늘은 올해도 어김없이 뿌렸다. 오히려 좋았다. 그다음 날이자 2014 펜타포트의 마지막을 장식할 주인공은 트래비스였으니까.
떼창하고 춤추고 환호하고
2008 펜타포트로 처음 한국을 찾은 이래 이번까지 총 다섯 번의 내한공연을 한 이 영국 밴드의 히트곡 가운데 하나가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다. 1999년 2집 ‘The Man Who’에 실려 있던 이 노래를 트래비스는 이듬해 글래스턴베리에서 연주했다. 앨범도 노래도 차트에서 내려간 시점이었다. 그들이 이 노래를 연주할 때 흐린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관객은 이 절묘한 타이밍에 환호했고 ‘사건’은 뉴스가 돼 그해 글래스턴베리의 가장 기적 같은 순간으로 꼽혔다. 화제에 힘입어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는 차트에 재진입했다. 트래비스의 역사를 얘기할 때 늘 거론되는 에피소드다.
14년이 지난 지금 당시 글래스턴베리 관객의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몸은 젖을지언정 오히려 비를 기다리는 게 당연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크리는 소멸했지만 그 영향 탓에 일요일 인천은 분무기로 물을 뿌리는 듯 안개비가 멈추지 않았다. 밤 9시 반, 트래비스가 무대에 오르는 순간까지 그랬다.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히트곡 퍼레이드와 ‘떼창’ 향연에 분위기는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본 공연이 끝나고 앙코르로 ‘Flowers In The Window’를 연주할 즈음 비가 그쳤다. 그리고 마지막 앙코르로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를 불렀다. 비온 다음 부는 산뜻한 바람이 아름다운 멜로디와 섞이고 이지러졌다. 2000년 영국 관객의 마음을 느끼진 못했지만, 충분히 좋았다. 트래비스가 퇴장한 후 무대 스크린에 뜬 문구 때문이었다. ‘See You Next Year, 10th Pentaport.’ 그렇다. 펜타포트가 내년이면 10주년을 맞이하는 것이다.
펜타포트는 한국의 여름에 록페스티벌 문화를 이식한 장본인이다. 기록적인 폭우로 하루 만에 중단한 1999년 트라이포트록페스티벌을 전신으로 7년 만에 재기한 이 페스티벌은 국내 뮤지션으로만 채워졌던 기존 페스티벌계의 ‘판’을 업그레이드했다. 스트록스, 스노우 패트롤, 예 예 예스, 플라시보, 블랙 아이드 피스, 프란츠 퍼디난드 등 2000년대 음악계를 뜨겁게 달군 팀이 한꺼번에 한국을 찾았다. 한국을 ‘록의 신이 버린 나라’라며 체념하던 음악팬이 모두 달려와 3일간 무대 앞을 지켰다. 99년 못지않은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지만 무릎까지 빠지는 진흙탕을 걸어 다니던 음악팬의 표정은 힘들지언정 즐거워 보였다. 무대도, 객석도 그 사흘을 사수했다. 첫 해 성공에 힘입어 펜타포트는 승승장구했다. 라인업은 갈수록 좋아졌고, 관객도 갈수록 개성 있는 의상과 공동체 깃발을 들고 매년 여름 인천을 찾았다.
위기가 찾아온 건 2009년이었다. 주최사인 예스컴과 해외 라인업 섭외를 담당하던 옐로우나인이 갈라섰다. 옐로우나인은 그해 여름 오아시스와 위저, 베이스먼트 잭스라는 막강한 헤드라이너를 내세워 지산밸리록페스티벌(지산밸리)을 열었다. 음악팬의 관심은 단숨에 지산밸리로 옮겨갔다. 그로부터 몇년간 펜타포트에겐 ‘고난의 행군’이었다. 라인업도 라인업이지만, 인천광역시의 개발정책에 따라 장소도 옮겨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뜻깊은 10주년 맞이할 준비 끝내
그러는 사이 페스티벌 시장은 계속 커졌다. 혹은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펜타포트가 힘겹게 매년 여름을 나는 동안 페스티벌은 사시사철 가리지 않고 주말을 채우는 이벤트가 됐다. 페스티벌 거품의 절정이던 지난해는 펜타포트와 안산으로 장소를 옮긴 밸리록페스티벌 외에도 슈퍼소닉, 지산월드록페스티벌,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 등 총 5개 페스티벌이 한 달도 되지 않는 기간에 집중적으로 열렸다.
이 과잉 공급 사태는 공멸을 불렀다. 지산월드록페스티벌은 첫해를 끝으로 사라졌다. 슈퍼소닉 역시 진통 끝에 힘겹게 하루로 규모를 축소해 열린다. 밸리록페스티벌은 세월호 여파로 진작 취소됐다. 이제 펜타포트와 시티브레이크가 전부다. 시장 규모를 생각한다면 결국 정상적 공급 상태로 돌아온 걸 수도 있다. 그러니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객이 펜타포트에 몰렸다.
펜타포트와의 ‘우정’을 지키는 기존 관객이 더해졌고, 다른 페스티벌에서는 이제 찾아보기 힘든 높은 자유도가 있었다. 관객들 행동 하나하나를 통제하는 경호업체 직원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푸드존 역시 대기업 계열사가 즐비한 대신, 홍대와 인천 등의 소규모 업체가 입점해 한결 축제다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정말 멋진 공연이 사흘 내내 이어졌다. 1980년대 헤비메탈 밴드인 리지 보든, 헤비메탈의 미래를 보여준 일본의 크로스페이스, 스스로 최고 공연이었다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흥분했던 킹스턴 루디스카, 둘째 날 수만 관객으로 가득 찬 객석을 거대한 댄스클럽으로 만든 이디오테잎, 몇 번의 내한공연 중 최고 에너지를 보여줬던 스타세일러까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해와 비를 가리지 않고, 인상적인 순간이 8월 1일부터 3일간 유령도시 같던 송도에 용광로의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 에너지 속에 몸을 맡기며 페스티벌이란 이렇게 완성돼가는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자본에 의해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채 단점을 보완하고 시간을 견디며 브랜드와 신뢰도를 쌓아가는 것이다. 외국 유명 페스티벌이 그러하듯 말이다. 아홉 번 행사를 결국 치러낸 펜타포트, 거대한 분기점이 될 10주년을 훌륭히 맞이할 모든 태세를 갖췄다. 태풍도 그들을 피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