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신흥 언더그라운드 중심지인 285 켄트애비뉴에서 공연 중인 노브레인.
뉴욕은 세계 언더그라운드의 중심지다. 언더그라운드 역사는 곧 변방의 역사다. 태풍이 주기적으로 바다를 뒤집어 해양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듯, 변방으로부터 시작된 새로운 흐름이 시대와 만나 문화 흐름을 바꾼다. 영국 런던과 더불어 청년문화 발상지인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중심지는 시대에 따라 변천해왔다. 첼시, 소호 등 이제는 가장 트렌디한 동네가 된 곳이 초기 언더그라운드를 주도했다면, 지금 뉴욕에서 가장 ‘핫’한 곳은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 지역이다.
영화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에서 봤듯 브루클린은 한때 뉴욕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던 곳이지만, 당국의 지속적인 치안 개선과 재개발 덕에 지금은 범죄자 대신 가난한 아티스트가 모이는 곳으로 변모했다. 그중에서도 윌리엄스버그는 뉴욕의 홍대와도 같은 곳이다. 자신이 예술가임을 증명하려는, 예쁘게 꾸며진 허름한 아파트 입구가 곳곳에서 눈에 띄고 후드티에 청바지를 맵시 입게 차려입은 ‘힙스터’를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윌리엄스버그를 단순히 예술가 작업실이 아닌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곳은 커다란 창고들이다. 빈 창고를 개조해서 스튜디오, 로컬 바, 시네마데크 등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서울소닉 일행이 처음 무대에 선 285 켄트애비뉴도 그런 공간 가운데 하나다. 주소명이 곧 이름이다. 별도 간판도 없다. 큰 창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무로 만든 휑한 무대가 있을 뿐이다. 그라피티와 이름 모를 예술가의 그림이 벽 사방에 가득하다. 당연히 아는 사람만 갈 수 있는 곳이다. 남들이 모르는 곳을 나는 안다는 자부심은 하위문화를 발전시키는 원동력 가운데 하나다. 많은 이에게 이용될 수 있는 보편성 대신, 알아보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매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공연장도 마찬가지였다. 소호 인근 이스트리지에 위치한 누블루(Nublu)는 LPR와 더불어 뉴욕 언더그라운드 신을 상징하는 곳이다. 규모는 100여 명을 수용할 정도밖에 안 되지만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향유하는 이들의 오랜 아지트와도 같은 장소다.
현지 시간으로 3월 28일에는 285 켄트애비뉴에서, 30일에는 누블루에서 열린 서울소닉 공연은 그래서 다른 곳의 무대와는 달랐다. 장비나 음향 환경은 열악했지만, 그렇기에 나올 수밖에 없는 ‘날것의 에너지’를 만끽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캐나다 토론토의 한산하던 객석과 달리 사람으로 꽉 들어찬 공연장에서 노브레인, 로다운30,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모두 1990년대 홍대 앞으로 되돌아간 듯 코앞 관객과 호흡하고 부대끼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줬다.
바로 그 에너지 때문일까. 두 번의 공연은 모두 매진을 기록했고, 누블루의 경우 온라인 사전예약자들을 먼저 입장시킨 탓에 공연이 시작된 후에도 현장 구매 대기자들이 한참이나 줄을 서 있었다. 서울소닉의 시간이 3년간 쌓이면서 조금씩 생겨나는 브랜드 파워와 다른 지역에 비해 활발한 현지 한인 커뮤니티가 맞물린 결과일 것이다.
의외의 장소에서 성공적인 공연이 열리는 것을 지켜보며 몇 가지 생각거리를 얻었다. 도시가 발전하면서 흡사 황무지처럼 버려지는 곳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들어가 초목을 돋게 한다. 쇠락한 공간이 그곳에서 자생한 새로운 문화에 의해 가장 멋진 곳으로 변모한다. 윌리엄스버그 같은 지역이 바로 그렇다. 한 시대 하위문화 아지트가 비교적 세월이 지난 후에도 변질되지 않고 아지트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누블루가 딱 그랬다. 이러한 유지와 재생이야말로 거대 도시의 사막화를 막아내는 힘이다. 생존경쟁에 지친 도시인으로 하여금 다시 그 도시를 발견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새로운 문화를 향유하는 새로운 세대를 탄생시키는 동기다. 뉴욕의 마천루는 과거가 쌓여 생성된 현재였고, 언더그라운드는 현재가 만들어내는 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