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출신 한 인사와 술자리에서 쌀 소비량 감소에 대해 걱정하다가 이런 말이 나왔다.
“재수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밥맛이다’라는 말 말이야. 드라마니 개그니 방송 프로그램마다 쓰더라고. 원래는 ‘에이, 밥맛 없어’ 하는 게 바른말인데 언제부터 ‘밥맛이야’로 바뀌었는지 모르겠어. 이런 말도 쌀 소비량 줄이는 데 일조하지 않았는지 몰라. 밥이 원래 맛없는 것처럼 들리잖아.”
그분의 말 뒤에 나는 엉뚱한 사설을 붙였다. “예전에 비하면 밥이 맛없지요. 온통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니…. ‘밥맛이다’라는 말은 아마 전기밥솥 나오면서 생긴 신조어일 겁니다.”
그분은 언어습관을 말하는데 나는 맛타령이나 하니 이런 동문서답도 없을 것이다. 나는 밥맛에 대한 장광설을 풀고 싶었지만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농민, 농촌 문제 걱정하며 다들 한마디씩 하는 자리에서 밥맛이나 따지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속으로 했던 장광설을 다시 푼다면….
재수 없다는 ‘밥맛’ 전기밥솥 탓 아닐까
할머니들에게 들으니, 예전엔 아이가 젖 떼고 말을 시작하기 전에는 밥을 먹이고 고기는 먹이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밥맛을 들이기 전에 고기맛부터 알면 고기만 찾는다는 겁니다. 고기가 귀했던 시절이라 그런 말을 지어냈다고도 볼 수 있으나, 제가 생각하기에 아이 때부터 밥맛을 들이려는 조상님들의 지혜가 아니었나 합니다.
밥은 아무 맛이 없는 것 같지만, 한국 사람들은 밥맛에 민감합니다. 벼의 품종, 정미 정도, 물의 질과 양, 불의 종류와 세기, 밥솥의 종류 등에 따라 맛이 다 다르고, 이 제각각의 밥맛을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림짐작으로 맞힐 수 있는 것이 우리 민족이죠.
밥하는 기술도 그리 간단한 게 아니지요. 먼저 쌀에 붙은 겨와 때를 없애기 위해 쌀을 씻는데, 이때 재빨리 헹궈야 합니다. 시간을 끌면 물에 녹은 겨가 쌀에 스며들어 밥에서 겨 냄새가 나거든요. 깨끗한 물을 붓고 두세 차례 빠르게 휘저어 10초 이내에 버리기를 반복하는데, 물이 맑아질 때까지 합니다. 씻기가 끝나면 쌀을 물에 담가 쌀의 내부까지 물을 침투시킨 뒤 불에 올려야 합니다. 겨울철에는 최소 1~2시간, 여름철은 30분 이상 담그지요.
밥이 끓고 난 다음, 그러니까 요즘 너도나도 다 쓰는 전기밥솥으로 치면, 스위치가 탁 하고 소리를 내며 ‘취사’에서 ‘보온’으로 자리이동을 하고 난 다음 10~15분 뜸을 들여야 합니다. 뜸들이기가 끝나면 솥 안 가장자리를 따라 주걱으로 돌려가며 재빨리 섞어야 합니다. 이것은 여분의 수분을 증발시키고, 밥알이 뭉개지지 않고 서게 하며, 솥 안의 밥맛을 균일화하기 위한 것이지요.
갓 지어낸 밥은 정말 맛있습니다.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고 촉촉한 물기가 배어 있는 밥!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나며, 입 안에 넣었을 때 밥알이 낱낱이 살아 있음이 느껴지고, 혀로 밥알을 감았을 때 침이 괴면서 단맛이 더해지며, 무르지도 단단하지도 않게 이 사이에서 기분 좋은 마찰을 일으키는 밥! 밥맛은 윤기, 향기, 맛, 끈기와 단단함에 의해 결정됩니다. 혀뿐만 아니라 오감을 통해 밥맛을 느끼지요.
사실 이 정도의 밥은 요즘 전기밥솥이 있어 누구든 합니다. 씻지 않아도 되는 쌀이 나오고, 불리고 뜸들이는 시간까지 계산해 조리하는 전기밥솥이 있으니까요. 예전 무쇠솥에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지을 경우에는 불 보는 눈이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르러야 맛있는 밥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밥물이 끓어 넘칠 것 같으면 솥뚜껑에 물을 부어 숨을 죽여야 하고, 뜸들일 때를 맞추어 아궁이에서 불을 빼고, 결정적으로 솥뚜껑을 여는 마지막 순간을 정확히 알아야 맛있는 밥이 됩니다.
우리 음식은 밥과 반찬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 둘이 입 안에서 서로 어우러져야 맛이 완성되지요. 김치와 장아찌, 젓갈 등 반찬이 대체로 짜거나 맵고 강렬한 맛이 나는 것은 밥과의 어울림을 염두에 두고 조리하기 때문입니다. 즉, 밥이 밑반찬들의 강렬한 맛을 잠재우면서 그 밑반찬들이 품고 있는 깊은 맛을 끄집어내는 것이지요. 밥이 맛없으면 아무리 좋은 반찬이 수십 가지 놓여도 제대로 된 맛을 즐길 수가 없게 됩니다.
제 집은 최근 전기밥솥을 버렸습니다. 밥맛 없다고 제가 자꾸 투정하니까, 그 이유가 전기밥솥에 있다고 내내 불만을 토로하니까, 집사람이 조그만 무쇠솥으로 끼니때마다 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밥맛이다’라는 잘못된 언어습관을 바로잡는 것만큼이나 전기밥솥으로 밥맛 버리는 일을 줄이는 것도 쌀 소비 촉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떠세요?
“재수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밥맛이다’라는 말 말이야. 드라마니 개그니 방송 프로그램마다 쓰더라고. 원래는 ‘에이, 밥맛 없어’ 하는 게 바른말인데 언제부터 ‘밥맛이야’로 바뀌었는지 모르겠어. 이런 말도 쌀 소비량 줄이는 데 일조하지 않았는지 몰라. 밥이 원래 맛없는 것처럼 들리잖아.”
그분의 말 뒤에 나는 엉뚱한 사설을 붙였다. “예전에 비하면 밥이 맛없지요. 온통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니…. ‘밥맛이다’라는 말은 아마 전기밥솥 나오면서 생긴 신조어일 겁니다.”
그분은 언어습관을 말하는데 나는 맛타령이나 하니 이런 동문서답도 없을 것이다. 나는 밥맛에 대한 장광설을 풀고 싶었지만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농민, 농촌 문제 걱정하며 다들 한마디씩 하는 자리에서 밥맛이나 따지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속으로 했던 장광설을 다시 푼다면….
재수 없다는 ‘밥맛’ 전기밥솥 탓 아닐까
할머니들에게 들으니, 예전엔 아이가 젖 떼고 말을 시작하기 전에는 밥을 먹이고 고기는 먹이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밥맛을 들이기 전에 고기맛부터 알면 고기만 찾는다는 겁니다. 고기가 귀했던 시절이라 그런 말을 지어냈다고도 볼 수 있으나, 제가 생각하기에 아이 때부터 밥맛을 들이려는 조상님들의 지혜가 아니었나 합니다.
밥은 아무 맛이 없는 것 같지만, 한국 사람들은 밥맛에 민감합니다. 벼의 품종, 정미 정도, 물의 질과 양, 불의 종류와 세기, 밥솥의 종류 등에 따라 맛이 다 다르고, 이 제각각의 밥맛을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림짐작으로 맞힐 수 있는 것이 우리 민족이죠.
밥하는 기술도 그리 간단한 게 아니지요. 먼저 쌀에 붙은 겨와 때를 없애기 위해 쌀을 씻는데, 이때 재빨리 헹궈야 합니다. 시간을 끌면 물에 녹은 겨가 쌀에 스며들어 밥에서 겨 냄새가 나거든요. 깨끗한 물을 붓고 두세 차례 빠르게 휘저어 10초 이내에 버리기를 반복하는데, 물이 맑아질 때까지 합니다. 씻기가 끝나면 쌀을 물에 담가 쌀의 내부까지 물을 침투시킨 뒤 불에 올려야 합니다. 겨울철에는 최소 1~2시간, 여름철은 30분 이상 담그지요.
밥이 끓고 난 다음, 그러니까 요즘 너도나도 다 쓰는 전기밥솥으로 치면, 스위치가 탁 하고 소리를 내며 ‘취사’에서 ‘보온’으로 자리이동을 하고 난 다음 10~15분 뜸을 들여야 합니다. 뜸들이기가 끝나면 솥 안 가장자리를 따라 주걱으로 돌려가며 재빨리 섞어야 합니다. 이것은 여분의 수분을 증발시키고, 밥알이 뭉개지지 않고 서게 하며, 솥 안의 밥맛을 균일화하기 위한 것이지요.
갓 지어낸 밥은 정말 맛있습니다.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고 촉촉한 물기가 배어 있는 밥!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나며, 입 안에 넣었을 때 밥알이 낱낱이 살아 있음이 느껴지고, 혀로 밥알을 감았을 때 침이 괴면서 단맛이 더해지며, 무르지도 단단하지도 않게 이 사이에서 기분 좋은 마찰을 일으키는 밥! 밥맛은 윤기, 향기, 맛, 끈기와 단단함에 의해 결정됩니다. 혀뿐만 아니라 오감을 통해 밥맛을 느끼지요.
사실 이 정도의 밥은 요즘 전기밥솥이 있어 누구든 합니다. 씻지 않아도 되는 쌀이 나오고, 불리고 뜸들이는 시간까지 계산해 조리하는 전기밥솥이 있으니까요. 예전 무쇠솥에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지을 경우에는 불 보는 눈이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르러야 맛있는 밥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밥물이 끓어 넘칠 것 같으면 솥뚜껑에 물을 부어 숨을 죽여야 하고, 뜸들일 때를 맞추어 아궁이에서 불을 빼고, 결정적으로 솥뚜껑을 여는 마지막 순간을 정확히 알아야 맛있는 밥이 됩니다.
우리 음식은 밥과 반찬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 둘이 입 안에서 서로 어우러져야 맛이 완성되지요. 김치와 장아찌, 젓갈 등 반찬이 대체로 짜거나 맵고 강렬한 맛이 나는 것은 밥과의 어울림을 염두에 두고 조리하기 때문입니다. 즉, 밥이 밑반찬들의 강렬한 맛을 잠재우면서 그 밑반찬들이 품고 있는 깊은 맛을 끄집어내는 것이지요. 밥이 맛없으면 아무리 좋은 반찬이 수십 가지 놓여도 제대로 된 맛을 즐길 수가 없게 됩니다.
제 집은 최근 전기밥솥을 버렸습니다. 밥맛 없다고 제가 자꾸 투정하니까, 그 이유가 전기밥솥에 있다고 내내 불만을 토로하니까, 집사람이 조그만 무쇠솥으로 끼니때마다 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밥맛이다’라는 잘못된 언어습관을 바로잡는 것만큼이나 전기밥솥으로 밥맛 버리는 일을 줄이는 것도 쌀 소비 촉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