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많은 여고시절 우정은 변치 않아요”](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4/12/17/200412170500006_1.jpg)
하지만 친구의 이혼소식과 함께 연락이 끊겼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어김없이 오던 카드도 그해부터 오지 않았다. 이씨는 친구 명숙씨가 죽은 줄로만 알았단다. 이번에는 이씨가 이사하면서 혹시라도 옛 주소, 옛 전화번호로 친구의 연락이 올까 노심초사했다. ‘주간동아’에서 한국-미국간 헤어진 사람을 찾아준다는 기사를 보자마자 이씨는 “이런 일까지 찾아주겠느냐”며 반신반의하면서 사연을 보냈다.
사실 이 사연이 접수되었을 때 ‘주간동아’와 시카고의 강효흔 탐정은 망설임을 거듭했다. 연락이 끊긴 지 5년밖에 안 되어 본인들이 찾으려는 의지만 있다면 굳이 이 캠페인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긴 이별은 이처럼 별것 아닌 단절에서 비롯한다. 다음에 연락하면 되지 하고 미뤘다가 영영 생이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 점에서 5년도 이미 너무 늦은 것일 수 있었다.
강탐정은 신청자가 알려준 옛 주소에서 시작해 수차례 이사한 흔적을 추적해 쉽게 정명숙씨의 현주소를 찾아냈다. 집 전화번호를 등록하지 않은 상태여서 확인하지 못했으나 사업자등록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정씨가 경영하는 몇 개의 사업체와 연락처를 알아냈다. 소요시간은 불과 1시간.
![“꿈 많은 여고시절 우정은 변치 않아요”](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4/12/17/200412170500006_2.jpg)
![“꿈 많은 여고시절 우정은 변치 않아요”](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4/12/17/200412170500006_3.jpg)
이 사연을 접수하자마자 강효흔 탐정은 곧바로 추적을 시작했다. 너무 오래 전 헤어진 경우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뜻밖에도 쉽게 박○○씨의 연락처를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예상 외의 성과에 기뻐한 것도 잠시, 박○○씨에게 아무리 전화 메시지를 남기고 노모가 찾는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도 응답이 없었다. 아파트 관리인에게 박○○씨의 거주 여부를 확인하고 메시지를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그에 대한 대답도 없었다. 마지막 수단으로 한국의 가족은 간곡한 편지와 함께 40년 전 박○○씨가 보내온 편지와 가족 사진 등을 동봉해 미국으로 부쳤다. 혹시라도 사진과 편지를 보고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그러나 끝내 박○○씨에게서 소식은 오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사연은 1974년 가난 때문에 입양 보낸 딸을 찾는 친모와 양모 사이의 갈등으로 전화 상봉이 지연된 경우다. 1남6녀 딸부잣집 넷째딸 박○○씨(33)는 여섯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양모는 미국인과 결혼한 한국 여성. 미국에서 성장한 박○○씨는 직업군인으로 결혼도 했으나 한국의 가족을 찾고자 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마침 한국의 가족이 ‘주간동아’에 사연을 접수했고 강효흔 탐정은 박○○씨를 추적했다. 한국말을 완전히 잊어버린 박○○씨는 한국의 가족이 찾는다는 말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다가 양모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한국 가족과 전화상봉을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그 뒤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양모와 박○○씨의 갈등, 양모와 친모의 갈등이 겹치면서 박씨는 모든 일이 정리된 후 상봉하겠다며 4월 말부터 지금까지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고 있다.
그밖에 30여 년 전 자식을 두고 홀로 미국으로 간 어머니를 찾는 딸의 사연도 결실을 보지 못했다. 강탐정이 어머니의 연락처를 확인한 후 전화를 걸었으나 한국 가족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황급히 전화를 끊어버린 후 다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후 수차례 편지를 보냈으나 응답이 없었다. 30년이라는 세월도 자식을 버린 죄책감을 지우지는 못한 것이었다.
이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주간동아’와 강효흔 탐정이 공동으로 벌이는 한국-미국 ‘그리운 얼굴 찾기’ 무료캠페인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