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음식이란 어렸을 때 입맛대로 늘 추억이 있어 대개 어른이 되어서도 그 장소 그 시간을 잊지 못한다. 제주 음식의‘느랏내’에 절어 살던 사람은 서울에 살아도 자리젓이나 몸국이 나이들수록 그리울 것이다. 또 필자와 같이 한꺼번에 다섯 가마니의 보리를 담던 그 물항에 오가재비 굴비를 묻었다가 파낸 것을 구워 여름날 물에 만 쌀보리밥에 한 가락씩 찢어 얹어 먹던 맛을 잊지 못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맛의 U턴 현상’이라 한다. 이는 네댓 살 때 김치를 먹어 버릇하면 비록 김치맛을 잊었더라도 40~50대에 가면 다시 그 김치맛을 되살려내는 것을 말한다. 닭갈비와 막국수도 예외는 아닐 터다.
닭갈비와 막국수로 유명한 곳이 군사·교육 도시 춘천이다. 춘천시의 중심가인 명동 골목은 온통 닭갈비집이다. 명동 골목에서도 ‘원조’로 이름난 집이 바로 ‘우미 닭갈비집’(노석호, 033-254-2428)이다. 31년간 2대에 걸쳐 대물림한 닭갈비집으로 보통 닭갈비 1인분은 6000원, 뼈 없는 닭갈비는 7500원이다. 큼직큼직하게 자른 닭고기에 양념이 골고루 배도록 하루쯤 재워 채소와 함께 구워내는 닭갈비야말로 걸쭉하고 질퍽해서 좋다. 국수사리를 한데 넣어 비벼 먹으면 더욱더 맛이 어울린다.
춘천 닭갈비의 역사는 1960년대 말, 선술집 막걸리판에서 숯불에 굽는 술안주의 대용으로 개발되었다. 그것이 10년 전부터 번져나가 중심가를 파고든 것이다. 3년간의 군 생활에서 휴가나 외출 나온 군인들이 즐겨 먹었고, 또 값이 싸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지라 춘천 시내 5개 대학생들도 좋아하는 음식이다. 옛날에는 도시락에 비벼 먹었을 만큼 춘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구수하고 푸짐한 음식으로 기억된다.
가장 오래된 우미 닭갈비집은 32년 전 춘천 주물공장에서 수작업으로 생산한 무쇠솥판을 지금껏 쓰고 있다. 강원도 일판의 무쇠솥이나 무쇠솥판은 거개가 이때 생산한 주물이다. 우미 닭갈비집의 닭갈비는 보통 진간장, 카레 케첩을 쓰는 대신 고추장과 소금간으로 맛을 내는 특징이 있다. 고명으로는 미나리, 양배추, 생고구마, 양파, 가래떡, 대파, 마늘 등 푸짐하기 이를 데 없다. 분점이 세 군데나 있으나 50개의 식탁이 초만원을 이룬다.
서두르다 손해보는 것을 빗대어‘날떡국에 입천장 덴다’는 식담도 있지만 닭갈비에 들어가는 떡볶이 곧 흰 가래떡도 입맛을 돋운다. 그래서 가래떡이고 얼굴 찌푸린 사람 없다던가. 닭갈비를 먹고 나면 포만증이 절로 온다. 그래서 명동 골목에선 ‘해가 간다고 나이 먹냐. 우미집 닭갈비에 가래떡을 먹어야 나이 먹제’라는 우스갯말도 이 식탁들 사이에서 듣곤 하는 말이다. 이 말뜻은 알고 보면 ‘농경사회의 절박함은 배부르게 먹는 것이다’라는 단적 표현이다. 휴가 나온 군인들이나 대학생들의 소주잔에 못 먹던 때의 이야기가 이쯤 떠올라야 향수식품이 아니겠는가.
먹다 남은 닭갈비에 육수를 붓고 아껴둔 미나리를 넣으면 그 맛 또한 괜찮겠다. 미나리는 소양호의 얼음구덕에서 파올린 빙어와 버무려야 제 맛이 나지만 닭갈비 국물에 살짝 익혀내는 맛도 따로 즐길 만하다. 특히 겨울에서 봄까지의 미나리는 싱싱한 맛이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최영년(崔永年)의 ‘해동죽지사’에 미나리를 예찬한 시가 있어 소개한다.
미나리꽝의 미나리 향기로 와라/
뽑아올린 살진 줄기 맛도 좋으니/
행채, 순채(蓴菜)가 어이 이를 따르랴/
옛날엔 나랏님께 진상도 하였거니
최영년은 이렇게 하여 지금은 절멸하다시피 한 순채나물보다 그 맛을 한결 치켜세우고 있다. 물론 이는 닭갈비에 무침한 미나리 데침을 말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든 춘천 닭갈비야말로 앞으로도 얼마든지 새로운 맛으로 개발할 수 있어 그 전망이 밝다 하겠다.
닭갈비와 막국수로 유명한 곳이 군사·교육 도시 춘천이다. 춘천시의 중심가인 명동 골목은 온통 닭갈비집이다. 명동 골목에서도 ‘원조’로 이름난 집이 바로 ‘우미 닭갈비집’(노석호, 033-254-2428)이다. 31년간 2대에 걸쳐 대물림한 닭갈비집으로 보통 닭갈비 1인분은 6000원, 뼈 없는 닭갈비는 7500원이다. 큼직큼직하게 자른 닭고기에 양념이 골고루 배도록 하루쯤 재워 채소와 함께 구워내는 닭갈비야말로 걸쭉하고 질퍽해서 좋다. 국수사리를 한데 넣어 비벼 먹으면 더욱더 맛이 어울린다.
춘천 닭갈비의 역사는 1960년대 말, 선술집 막걸리판에서 숯불에 굽는 술안주의 대용으로 개발되었다. 그것이 10년 전부터 번져나가 중심가를 파고든 것이다. 3년간의 군 생활에서 휴가나 외출 나온 군인들이 즐겨 먹었고, 또 값이 싸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지라 춘천 시내 5개 대학생들도 좋아하는 음식이다. 옛날에는 도시락에 비벼 먹었을 만큼 춘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구수하고 푸짐한 음식으로 기억된다.
가장 오래된 우미 닭갈비집은 32년 전 춘천 주물공장에서 수작업으로 생산한 무쇠솥판을 지금껏 쓰고 있다. 강원도 일판의 무쇠솥이나 무쇠솥판은 거개가 이때 생산한 주물이다. 우미 닭갈비집의 닭갈비는 보통 진간장, 카레 케첩을 쓰는 대신 고추장과 소금간으로 맛을 내는 특징이 있다. 고명으로는 미나리, 양배추, 생고구마, 양파, 가래떡, 대파, 마늘 등 푸짐하기 이를 데 없다. 분점이 세 군데나 있으나 50개의 식탁이 초만원을 이룬다.
서두르다 손해보는 것을 빗대어‘날떡국에 입천장 덴다’는 식담도 있지만 닭갈비에 들어가는 떡볶이 곧 흰 가래떡도 입맛을 돋운다. 그래서 가래떡이고 얼굴 찌푸린 사람 없다던가. 닭갈비를 먹고 나면 포만증이 절로 온다. 그래서 명동 골목에선 ‘해가 간다고 나이 먹냐. 우미집 닭갈비에 가래떡을 먹어야 나이 먹제’라는 우스갯말도 이 식탁들 사이에서 듣곤 하는 말이다. 이 말뜻은 알고 보면 ‘농경사회의 절박함은 배부르게 먹는 것이다’라는 단적 표현이다. 휴가 나온 군인들이나 대학생들의 소주잔에 못 먹던 때의 이야기가 이쯤 떠올라야 향수식품이 아니겠는가.
먹다 남은 닭갈비에 육수를 붓고 아껴둔 미나리를 넣으면 그 맛 또한 괜찮겠다. 미나리는 소양호의 얼음구덕에서 파올린 빙어와 버무려야 제 맛이 나지만 닭갈비 국물에 살짝 익혀내는 맛도 따로 즐길 만하다. 특히 겨울에서 봄까지의 미나리는 싱싱한 맛이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최영년(崔永年)의 ‘해동죽지사’에 미나리를 예찬한 시가 있어 소개한다.
미나리꽝의 미나리 향기로 와라/
뽑아올린 살진 줄기 맛도 좋으니/
행채, 순채(蓴菜)가 어이 이를 따르랴/
옛날엔 나랏님께 진상도 하였거니
최영년은 이렇게 하여 지금은 절멸하다시피 한 순채나물보다 그 맛을 한결 치켜세우고 있다. 물론 이는 닭갈비에 무침한 미나리 데침을 말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든 춘천 닭갈비야말로 앞으로도 얼마든지 새로운 맛으로 개발할 수 있어 그 전망이 밝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