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말과 생각, 감정과 행동은 뇌과학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우리를 움직이는 뇌. 강석기 칼럼니스트가 최신 연구와 일상 사례를 바탕으로 뇌가 만들어내는 마음의 비밀을 풀어준다.

러시아 화가 이반 크람스코이의 대표작 ‘미지의 여인’. 그림 속 여성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실존 인물로 추정된다. 위키백과
아직 ‘안나 카레니나’를 읽지 않은 사람도 이 소설의 유명한 첫 구절은 들어봤을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지만 음미해보면 인생에 대한 심오한 통찰이 느껴진다. 실제로 톨스토이는 이 문장을 완성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 자리에 대립하는 다른 단어 쌍을 넣어도 말이 된다. ‘건강한 몸’과 ‘병든 몸’이 그 예시다. 모든 신체 장기가 정상적으로(비슷하게) 작동하면 건강하지만 어느 하나에(제각각) 문제가 생기면 병이 든다. 학계에서는 이 구절을 일반화해 성공과 실패의 조건을 설명한다. 이를 ‘안나 카레니나 법칙(원리)’이라고 부른다.
최근 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는 뇌의 활동 패턴에도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 적용된다는 일본 연구팀의 연구 결과가 실렸다.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사람의 뇌 활동 패턴은 서로 비슷하지만, 비관적인 사람은 패턴이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이게 대체 어떤 의미일까.
비관적인 사람은 뇌 패턴 제각각
일본 연구팀은 피험자 87명을 대상으로 세 가지 범주(긍정적·중립적·부정적)의 사건이 일어나는 미래를 상상하게 했다. 이때 내측전전두피질(mPFC)의 활동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기록했다. 내측전전두피질은 자기 성찰과 조망적 사고에 관여하는 영역이다. 실험 뒤에는 설문조사를 통해 피험자가 얼마나 낙관적인지 평가해 연관성을 분석했다.그 결과 낙관적 성향이 클수록 미래 사건을 떠올릴 때 사람들 사이의 뇌 활동 패턴이 비슷했다. 특히 긍정적 사건에서 활발한 경향이 뚜렷했다. 반면 부정적 사건에서는 뇌 활동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즉 낙관적인 사람들은 긍정적 사건은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상상하고, 부정적 사건은 추상적으로 떠올려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다. 낙관적인 성향이라고 해서 부정적 사건에 대해서까지 긍정적으로 재해석(왜곡)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반대로 낙관적 성향이 약할수록 사람들 사이의 뇌 활동 패턴이 제각각이고 사건의 범주, 다시 말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 내용에 따라 뚜렷하게 나뉘지도 않았다. 패턴만 보고 피험자가 긍정적 사건을 상상하는지, 부정적 내용을 떠올리는지 추측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비관적 성향일수록 우울증 같은 정신건강상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큰데, 이런 뇌 활동 패턴 차이가 그 배경일 수 있다.
낙관적 성향은 사회적 네트워크, 인간관계 폭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낙관적인 사람은 네트워크의 허브(중심)에 있고, 비관적인 사람은 주변부에 자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2022년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네트워크 중심성이 클수록, 즉 연결된 관계가 많은 사람일수록 뇌 활동 패턴이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인지 구조)이 비슷하면 서로 잘 맞고 갈등이 적어 두루 친밀한 관계(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소위 말하는 원만한 인간관계다. 반면 어디선가 왜곡된 관점을 지닌 사람은 별것 아닌 일로도 충돌해 관계를 그르치곤 한다.
낙관성은 주관적 웰빙인 행복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낙관적 성향이 클수록 행복도가 높은데, 이는 객관적인 성공 기준(학벌·재산 등)보다도 영향력이 크다. 명문대 교수, 엄청난 부자가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심지어 자살하는 일이 드물지 않은 이유다. 그리고 이런 성향(기질)은 환경보다 유전의 영향이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행복의 비결은 물려받은 유전자에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환경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비관적 성향일수록 부정적인 환경 자극,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역치가 낮아 사회적 스트레스가 커지고 정신 문제를 겪는 경우도 늘어난다.
지난해 한국에서 정신질환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283만 명으로 5년 전(2019)보다 40% 가까이 늘었다. 우울증, 불안·강박 환자의 급증에 따른 결과다. 그 배경에는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확산이 꼽히고 있다.
‘감동 콘텐츠’ 보면 비관적 성향 줄어
그런데 최근 학술지 ‘대중매체 심리학’에는 미디어를 잘 활용하면 비관적 성향을 줄여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샌타바버라) 연구자들은 감동을 담은 콘텐츠를 시청하는 것이 인지 구조를 바꿀 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행동 요법인 명상에 버금가는 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실험에 쓰인 예시 가운데 하나는 암으로 한쪽 폐만 기능하는 남성이 에베레스트산 등반에 성공한 과정을 담은 영상이었다. 참고로 코미디 영상은 별 효과가 없었다.연구자들은 “사람들은 기분이 나쁠수록 무섭거나 슬픈 콘텐츠를 더 찾는 경향이 있다”며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이 이런 부정적 방향을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런 콘텐츠 소비를 줄이고 감동적이고 영감을 주는 콘텐츠를 좀 더 자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신과에 내원하는 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콘텐츠를 복용(시청)하게 하는 ‘디지털 처방’도 하나의 아이디어로 제시했다.
지금까지 ‘안나 카레니나’는 14차례나 영화화됐다. 그러나 영화 버전은 비관적인 사람에게 큰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대부분 안나와 브론스키의 불륜에 줄거리가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반면 소설은 불행한 가정을 상징하는 두 사람 외에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가는 레빈(소설의 실질적 주인공)과 키티 등 많은 인물이 등장해 의미 있는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과 울림을 준다. 전체 분량이 1500쪽이 넘어 ‘벽돌 책’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올겨울 ‘안나 카레니나’ 완독을 목표로 삼아보면 어떨까.
강석기 칼럼니스트는… 서울대 화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 연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를 거쳐 2012년부터 과학칼럼니스트이자 프리랜서 작가(대표 저서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