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현지 시간) 전 세계 투자자의 축제라 할 수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가 미국 오마하에서 열렸다. 이 주총은 금세기 최고 투자자로 일컬어지는 워런 버핏과 찰스 멍거가 직접 나와 지난 1년간 투자 활동을 정리하는 자리다. 다만 2인자인 멍거는 지난해 11월 99세 나이로 사망했다. 올해는 버핏과 후임자 그레그 에이블이 주주총회를 이끌었다. 버핏은 올해 94세다.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에 나설 수 있는 날도 이제 그리 많지 않다. 버핏 이후에도 버크셔 해서웨이가 유명 투자회사로 남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은 축제처럼 진행되는 Q&A 세션이 주이고, 그 후 좀 더 공식적인 주주 미팅이 열린다. 주주 미팅에는 주주 제안 시간이 있다. 소액 주주들이 발언 기회를 얻어 버크셔 해서웨이에 다양한 제안을 할 수 있다. 올해 주주 제안은 버크셔 헤서웨이의 사회적책임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이 주로 얘기됐다. 탄소 제로에 기여해야 한다는 제안, 근로자·고용 조건에 대한 책임, 이익 공유 방안 등이 대표적이다. 기업이 주주 이익이 아닌 근로자, 지역사회, 시민사회 등 여러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충실한 제안이었다. 누가 봐도 정당하고 타당한 제안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들을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이 정말 투자자인 주주 맞나. 투자자도 아니면서 저런 말을 하려고 일부러 주식을 사서 주총에 온 거 아닌가.”
이런 의문이 든 건 당연하다.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중시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ESG 경영 등은 최소한 투자 수익으로 먹고사는 주주·투자자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런 주장은 주주·투자자 이외 사람들이 하는 얘기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ESG 경영 등에서는 기업이 주주 이익뿐 아니라, 근로자나 지역사회 등 관련 이해관계자 모두의 이익도 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 이익을 주주가 독점하는 게 아니라 근로자, 지역사회, 시민사회 등과 골고루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참 좋은 얘기다. 그런데 투자자인 내가 보기에 이런 주장들엔 중요한 포인트가 빠져 있다. 이런 주장들은 이익을 서로 나누자고 이야기하지만 좀 더 중요한 건 이익이 아니라, 손해가 났을 때 그 손해를 누가 부담할지, 손해를 어떻게 나눌지다.
이익을 나누는 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물론 이익을 나누는 것도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서로 나눠 먹을 게 있을 때는 서로 합의하고 잘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손해를 나누는 건 간단하지 않다. 이익을 얻으려고 달려드는 것과 손해를 피하려고 달려드는 것은 그 강도가 다르다. 이익은 좀 덜 얻어도 된다. 하지만 손해는 절대 보지 않으려 한다. 그게 사람들의 일반적 정서다.
기업이 이익을 냈을 때 그 이익을 주주, 근로자, 지역사회 등이 서로 나눠 가지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투자자 대부분은 기업에 투자할 때 완전 대박을 원하지는 않는다. 적정 이익만 생겨도 되고, 은행 이자보다 좀 더 높은 이익에 만족하는 투자자도 많다. 그 이상 이익이 있을 때 그걸 근로자, 지역사회 등과 나누는 건 별문제가 아니다.
지역사회, 시민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은 더더욱 별문제 될 게 없다. 기업이 손실이 났다고 하면 그냥 “적자라서 안 됐네” 하는 정도다. 기업이 적자라고 지역사회 주민, 시민운동가들이 돈을 모아 그 적자를 메워줄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 기업 이익을 주주뿐 아니라 근로자, 지역사회, 기타 이해관계자와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기업이 손실이 났을 때 그 손실을 근로자, 지역주민 등이 같이 메우자는 얘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어디까지나 기업이 이익이 났을 때 논리일 뿐이다. 기업이 손실을 입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기업과 주주들이 알아서 할 기업·주주의 사정일 뿐이다.
손실이 났을 때 그 손실을 같이 부담하고, 이익이 났을 때 그 이익을 서로 나누자고 하면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이익이 났을 때는 이익을 나누고, 손실이 났을 때는 손실을 네가 다 부담하라고 하면 거기에 동의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건 주주·투자자들이 욕심쟁이고 자기밖에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어떤 일에서도 “이익이 나면 우리 서로 나누자. 그런데 손해가 나면 그건 네가 다 알아서 하는 걸로 하자”라는 말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자신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일을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건 정당한 요구가 될 수 없다. 손해가 났을 때는 나 몰라라 하면서 이익이 났을 때만 이익을 나누자고 하면 그런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주주·투자자들이 이익을 모두 같이 나누자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기업 이익이 중요하지 않고 주가 등락을 더 중시하는 기술적 주식 투자자는 주주이긴 해도 기업 이익을 모두 나눠야 한다는 대의명분에 지지를 보낼 수 있다. 투자 수익이 목적이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주식을 갖고 있는 주주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찬성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 이익으로 투자 실적이 결정되는 투자자, 배당금으로 살아가는 주주는 그런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업 이익을 나눠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주주·투자자들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논조로 얘기하는 학자와 언론이 가끔 있지만, 주주·투자자들이 직접 나서서 자신은 그것에 반대한다는 말을 명시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반대하지 않는다고 그것에 찬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이들은 자기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기업 이익을 모두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 강한 곳에 더는 투자하지 않을 뿐이다. 투자금을 뺄 수 있으면 빼고, 그런 위험이 없는 곳으로 투자처를 이동한다. 주주·투자자들은 자기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투자처를 옮길 뿐이다. 다른 기업으로 옮기고, 다른 산업으로 옮기고, 또 다른 나라로 옮긴다. 그냥 조용히 빠져나간다.
여하튼 기업 이익을 어떻게 나눌까만 얘기하는 기업의 사회적책임론은 제대로 시행되기 힘들다. 기업에 손실이 날 경우 어떻게 할지도 같이 얘기될 때 뭔가 진전이 있을 것이라 본다. 이익 배분만 얘기하는 건 반쪽만 보는 것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ㅁ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SG 경영 논의한 주총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오른쪽)이 5월 3일(현지 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연례 주주총회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저 사람이 정말 투자자인 주주 맞나. 투자자도 아니면서 저런 말을 하려고 일부러 주식을 사서 주총에 온 거 아닌가.”
이런 의문이 든 건 당연하다.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중시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ESG 경영 등은 최소한 투자 수익으로 먹고사는 주주·투자자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런 주장은 주주·투자자 이외 사람들이 하는 얘기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ESG 경영 등에서는 기업이 주주 이익뿐 아니라, 근로자나 지역사회 등 관련 이해관계자 모두의 이익도 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 이익을 주주가 독점하는 게 아니라 근로자, 지역사회, 시민사회 등과 골고루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참 좋은 얘기다. 그런데 투자자인 내가 보기에 이런 주장들엔 중요한 포인트가 빠져 있다. 이런 주장들은 이익을 서로 나누자고 이야기하지만 좀 더 중요한 건 이익이 아니라, 손해가 났을 때 그 손해를 누가 부담할지, 손해를 어떻게 나눌지다.
이익을 나누는 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물론 이익을 나누는 것도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서로 나눠 먹을 게 있을 때는 서로 합의하고 잘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손해를 나누는 건 간단하지 않다. 이익을 얻으려고 달려드는 것과 손해를 피하려고 달려드는 것은 그 강도가 다르다. 이익은 좀 덜 얻어도 된다. 하지만 손해는 절대 보지 않으려 한다. 그게 사람들의 일반적 정서다.
기업이 이익을 냈을 때 그 이익을 주주, 근로자, 지역사회 등이 서로 나눠 가지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투자자 대부분은 기업에 투자할 때 완전 대박을 원하지는 않는다. 적정 이익만 생겨도 되고, 은행 이자보다 좀 더 높은 이익에 만족하는 투자자도 많다. 그 이상 이익이 있을 때 그걸 근로자, 지역사회 등과 나누는 건 별문제가 아니다.
기업 적자는 온전히 투자자 부담
문제는 손실이 났을 때다. 주주는 기업이 손실이 나면 바로 자신의 손실이 된다. 배당금을 받지 못하고 주가가 떨어져 자본 손실이 생긴다. 또 기업이 유상증자를 하면 주주들은 돈을 더 집어넣어야 한다. 그런데 이익이 날 때 그 이익을 나눠 가지는 근로자, 지역사회 등은 기업이 손실이 났을 때 어떤 부담을 질까. 근로자는 기업 손실이 생겨도 월급이나 퇴직금이 깎이지 않는다. 사업에서 손실이 났다고 근로자들에게 월급을 안 주거나 늦게 주면 큰일 난다. 기업이 완전히 문을 닫을 정도로 손실이 나고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사정까지 간다면 근로자도 타격을 받는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면 근로자는 기업이 손해난다고 해서 큰 피해를 입지는 않는다. 이익이 났다면 받을 수 있었을 성과급, 오를 수 있었을 연봉이 오르지 않는 정도다. 기업이 손해를 봤다고 근로자가 자기 월급을 포기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는 없다. 자신이 그동안 모아온 돈을 적자를 메우라며 기업에 가져다주는 경우도 없다.지역사회, 시민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은 더더욱 별문제 될 게 없다. 기업이 손실이 났다고 하면 그냥 “적자라서 안 됐네” 하는 정도다. 기업이 적자라고 지역사회 주민, 시민운동가들이 돈을 모아 그 적자를 메워줄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 기업 이익을 주주뿐 아니라 근로자, 지역사회, 기타 이해관계자와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기업이 손실이 났을 때 그 손실을 근로자, 지역주민 등이 같이 메우자는 얘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어디까지나 기업이 이익이 났을 때 논리일 뿐이다. 기업이 손실을 입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기업과 주주들이 알아서 할 기업·주주의 사정일 뿐이다.
손실이 났을 때 그 손실을 같이 부담하고, 이익이 났을 때 그 이익을 서로 나누자고 하면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이익이 났을 때는 이익을 나누고, 손실이 났을 때는 손실을 네가 다 부담하라고 하면 거기에 동의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건 주주·투자자들이 욕심쟁이고 자기밖에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어떤 일에서도 “이익이 나면 우리 서로 나누자. 그런데 손해가 나면 그건 네가 다 알아서 하는 걸로 하자”라는 말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자신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일을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건 정당한 요구가 될 수 없다. 손해가 났을 때는 나 몰라라 하면서 이익이 났을 때만 이익을 나누자고 하면 그런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주주·투자자들이 이익을 모두 같이 나누자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기업 이익이 중요하지 않고 주가 등락을 더 중시하는 기술적 주식 투자자는 주주이긴 해도 기업 이익을 모두 나눠야 한다는 대의명분에 지지를 보낼 수 있다. 투자 수익이 목적이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주식을 갖고 있는 주주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찬성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 이익으로 투자 실적이 결정되는 투자자, 배당금으로 살아가는 주주는 그런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업 이익을 나눠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주주·투자자들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논조로 얘기하는 학자와 언론이 가끔 있지만, 주주·투자자들이 직접 나서서 자신은 그것에 반대한다는 말을 명시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반대하지 않는다고 그것에 찬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이들은 자기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기업 이익을 모두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 강한 곳에 더는 투자하지 않을 뿐이다. 투자금을 뺄 수 있으면 빼고, 그런 위험이 없는 곳으로 투자처를 이동한다. 주주·투자자들은 자기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투자처를 옮길 뿐이다. 다른 기업으로 옮기고, 다른 산업으로 옮기고, 또 다른 나라로 옮긴다. 그냥 조용히 빠져나간다.
기업의 사회적책임 시행되기 힘들어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강조하는 유럽 경제가 정체되고, 그 정도가 그리 강하지 않은 미국 경제가 계속 잘나가는 건 이러한 영향도 크다. 돈 있는 투자자들은 같은 선진국이라도 유럽보다 미국에 주로 투자한다. 이익은 나누고 손해는 네가 다 부담하라는 분위기가 강한 곳에 투자하기는 힘들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에서 탄소 제로 등 사회적책임을 강화하자는 주주 제안은 모두 거절됐다. 주주들이 그걸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기업이라면 우리도 탄소 제로에 기여하고 있고 사회적책임을 늘리려는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할 테지만, 버크셔 해서웨이 측은 “주주들이 원하지 않아 시행할 수 없다”며 아주 노골적으로, 하지만 진짜 이유를 얘기했다. 이 솔직함이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가 유명한 주된 원인일 것이다.여하튼 기업 이익을 어떻게 나눌까만 얘기하는 기업의 사회적책임론은 제대로 시행되기 힘들다. 기업에 손실이 날 경우 어떻게 할지도 같이 얘기될 때 뭔가 진전이 있을 것이라 본다. 이익 배분만 얘기하는 건 반쪽만 보는 것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ㅁ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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