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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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기술의 융합 BMW 아트카 프로젝트

[조진혁의 Car Talk] 팝아트 스타일로 BMW 320i 디자인한 로이 릭턴스타인이 대표적

  • 조진혁 자유기고가

    입력2023-08-02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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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미술에서 자동차는 얼마나 매력적인 소재인가. 자동차는 일상적이고 기능적이며 정치적이고 심미적이다. 게다가 성공의 욕망이 투영되기도 하고, 짜릿한 스포츠 감각이 느껴지기도 한다.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 소재이니, 미술가에게는 다루기 까다롭지만 한 번쯤 고려할 가치가 있는 소재다. 이런 이유로 자동차는 조각이나 설치미술, 퍼포먼스 아트 등 현대미술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돼왔다.

    2023년 바젤아트페어에서 선보인 구지윤 작가의 작품은 BMW i5에서 영감을 받았다. [BMW 제공]

    2023년 바젤아트페어에서 선보인 구지윤 작가의 작품은 BMW i5에서 영감을 받았다. [BMW 제공]

    미술작품이 된 자동차들

    프랑스 조각가 세자르 발다치니는 사물을 육면체로 압축한 ‘Compression’ 시리즈에서 네모반듯하게 압축한 폐차를 선보였다. 이는 탈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동차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멕시코 작가 가브리엘 오로스코의 ‘La DS’는 시트로엥을 대표하는 모델 DS의 중간을 잘라내고 좌우 양쪽을 이어붙인 모습인데,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을 자아낸다. 더 나아가 차를 해체한 경우도 있다. 멕시코 조각가 다미안 오르테가는 ‘Cosmic Thing’에서 1989년형 폭스바겐 비틀을 분해해 각 부품을 천장에 걸었다. 자동차의 매끈한 외피에 가려진 복잡한 구조를 끄집어낸 것이다. 이처럼 자동차를 해체하거나 분석한 사례 외에 주행이 가능하도록 차량의 온전한 형태를 유지한 채 작업한 작가들도 있다. 1960년대에는 롤스로이스를 노란색으로 칠한 비틀스가 있었고, 1970년대에는 미국 현대미술 작가 리처드 프린스가 차량을 캔버스 삼아 자동차 후드에 그림을 그렸다. 당시 미술계는 자동차를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거나 사회문제를 제기하는 데 사용했다.

    자동차는 언제나 최첨단 기계공학의 산물로 존재해왔다. 잘 만들어진 기계라는 점에서 자동차는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자동차 제조사는 자사의 기술력이 집약된 최상의 모델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 했다. 주행 가능한 현대미술이 되길 바란 것이다. 외장에 페인팅을 한 아트카, 실내 트림이나 천장에 수공예 요소를 더한 차량이 여기에 해당한다. 피아트는 2007년 남아프리카 은데벨레 부족의 미술 양식으로 채색된 아트카 500을 선보였고, 포르쉐는 2019년 리처드 필립스가 채색한 911 RSR 아트카를, 2021년에는 타이칸을 공개했다. 자동차가 이동수단에 그치는 게 아니라, 디자인과 예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의 시작을 찾자면 1975년 BMW 3.0 CSL 모델일 테다.

    BMW 모터스포츠 소속의 레이싱 드라이버이자 예술가 에르베 플랭은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특별한 BMW 3.0 CSL을 선보이고 싶어 했고, 여기서 특별함이란 현대미술을 입은 레이스카였다. 그는 거대한 키네틱 아트 ‘모빌’을 만든 현대미술가 알렉산더 칼더에게 작업을 제안했고, 칼더는 강렬한 채색으로 답했다. 이후 BMW는 매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예술가를 초대해 레이스카를 캔버스 삼아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후 BMW는 시대를 상징하는 현대미술가와 협업한 레이스카를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선보여왔다. 1976년 프랭크 스텔라는 기하학적인 선으로 외장면을 채운 파격적인 BMW 3.0CSL을 공개했고, 1977년 로이 릭턴스타인은 팝아트 스타일로 BMW 320i를 디자인했다. 1979년 앤디 워홀은 BMW M1을 직접 손으로 그려 대담하고 독특한 팝아트 스타일을 만들어냈는데, 속도를 시각화한 것이라고 한다. 2010년에는 제프 쿤스가 BMW M3 GT2를 알록달록한 색상과 선으로 장식해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했다.

    자동차 본질 재해석

    BMW의 아트카 프로젝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6월 BMW는 미국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박물관에서 줄리 머레투와 M 하이브리드 V8을 협업한다고 발표했다. M 하이브리드 V8은 20번째 BMW 아트카가 돼 2024년 6월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출전할 계획이다.



    BMW 아트카와 르망 24시간 레이스의 인연은 5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많은 레이스카와 작가가 BMW 아트카 프로젝트를 거쳐갔다. 처음에는 마케팅 활동으로 시작됐지만, 이제는 현대미술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예술가에게는 최첨단 기계인 자동차로 작업하는 기회가 되는 것은 물론, 기술과 디자인, 성능, 속도 같은 자동차 본질을 탐구하고 재해석하는 자리도 된다. 그리고 레이스카를 경주장이 아닌 미술관에서 만나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다. 다른 한편으로 BMW 아트카 프로젝트는 예술과 상업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프로젝트를 통해 BMW는 이미지를 강화하고 브랜드 가치를 올릴 수 있었다.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보여주는 이 흥미로운 마케팅 전략은 관객에게 신선한 아이디어를 선사하고, 차를 이동수단이 아닌 예술작품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현대미술 관객, 모터스포츠 팬, 자동차를 사랑하는 이웃 모두가 자동차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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