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의 한 반지하주택. [뉴스1]
LA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가 최근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원래는 한겨울에도 온화하고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는 지역이다. 그런데 최근 겨울 폭풍이 강타해 일부 지역은 2m 넘는 눈에 파묻히고, 또 다른 지역에는 120㎜ 넘는 비가 쏟아졌다. 이로 인해 12만 가구 이상이 전기가 끊겨 추위에 시달리는 등 고통을 겪어야 했다. 미국 정부는 34년 만에 캘리포니아 전역에 눈보라 경보를 발령했다.
캘리포니아의 기상이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월 중순에도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겨울 폭풍이 9차례 이어지면서 950억t가량의 비가 퍼부었다. 이는 캘리포니아 연간 강우량의 3분의 1이 넘는 양이다. 이로 인해 최소 20명이 숨지고, 300억 달러(약 39조 원) 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미국 정부는 당시에도 캘리포니아에 재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기상이변과 그로 인한 피해 발생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지난해 8월 서울 한강 이남 지역에 쏟아진 8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8명이 목숨을 잃고, 1000억 원대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인명 피해가 있던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일대는 사고 당일이던 8월 8일 오후 6시부터 12시까지 6시간 동안 양동이로 퍼붓듯이 비가 쏟아졌다. 측정된 강우량은 1시간 기준 141.5㎜, 3시간 기준 259.0㎜, 24시간 기준 381.5㎜였다. 시간당 빈도로 환산하면 1시간 강우량은 489년, 3시간은 2151년, 24시간은 109년에 한 번 있을 법한 강우량이었다(국토연구원, 국토이슈리포트 67호-‘기후위기시대 도시침수 예방대책: 2022년 수도권 집중호우의 교훈’).
반지하주택 대책 마련 목소리 높아
이후 정부의 기상이변 관련 대책 마련에 대한 요구가 거세졌다. 무엇보다 반지하주택에 살던 거주민들이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도시와 취약계층 거주 주택의 재해 대응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국내외 언론은 정부가 영화 ‘기생충’으로 반지하주택의 심각성을 인지하고도 개선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며 질타를 이어갔다.2019년 개봉한 ‘기생충’은 고급 주택과 반지하주택에 사는 상반된 환경의 주인공들을 통해 심각한 빈부격차 문제를 집중 조명해 전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프랑스 칸 영화제, 한국 대종상 영화제 등 국내외 다수 영화제에서 주요 상을 휩쓸었다. 이에 이듬해인 2020년 6월 문재인 정부는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을 개정했다. 반지하주택 거주자가 좀 더 좋은 주거환경으로 옮길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게 핵심이었다. 이른바 ‘주거사다리 지원사업’이다. 이 사업은 쪽방촌 등 비주택 거주자 가운데 지방자치단체장이 대상자를 선정해 매입임대나 전세임대 등 좀 더 좋은 주거환경으로 옮기도록 지원하는 것으로, 반지하주택 거주자를 대상에 추가했다. 하지만 2년 뒤인 지난해 8월 폭우로 반지하주택 거주자가 잇따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정부가 2월 22일 발표한 ‘기후변화에 따른 도시·주택 재해대응력 강화방안’은 이런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종합대책이다. 줄여서 ‘반지하주택 대책’으로 불리는데, 반지하주택 같은 재해 취약 주택과 취약 주택 밀집지역의 안전망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해당 대책에 따르면 앞으로 반지하주택은 신축이 불허된다. 기존 반지하주택은 공공이 사들인 후 지상층은 공공임대주택으로, 지하층은 지역주민 커뮤니티 시설로 각각 사용한다. 반지하주택 밀집지역은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추진한다. 정비사업 지정 요건에 ‘반지하주택 동수 2분의 1 이상’이 추가되고, 재개발 때 용적률도 완화된다. 방재시설 설치비용 지원과 공공 사업지 우선 선정 같은 지원책도 마련된다.
도시계획에 침수대책 방안 마련
반지하주택을 포함한 비정상 거처 거주자를 대상으로 한 공공임대 우선 공급 비중(매입·전세임대 15→30%)도 높아진다. 만약 주변 생활권에 원하는 공공임대가 없어 민간임대 이주를 희망한다면 최대 5000만 원까지 무이자 대출도 해준다. 이에 따라 월세 30만 원짜리 반지하주택 거주자는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월셋집으로 옮길 수 있다. 이사하면 이사비와 생필품도 지원된다.도시계획에 침수대책도 포함됐다. 앞으로 도시계획을 세울 때 중장기 방재계획을 제시하고, 실행력을 높이고자 재해취약성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취약등급별, 재해유형별로 차등화한 부문별 재해저감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재해 취약지역의 정비를 지원하기 위해 규제 중심의 방재지구도 정비 유도형 계획 수단으로 바뀐다. 현재도 재해 예방이 필요한 지역은 방재지구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건축주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가 크지 않아 규제제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는 방재지구가 절반 이상 포함된 지역에서 도시정비사업을 추진할 경우 정비계획 입안 요건 등이 완화된다. 방재지구에서 개별 건축을 할 때 재해저감대책이 마련되면 용적률도 기존 용적률의 1.2~1.4배로 높아진다.
스마트도시 기술도 적극 활용된다. 다수의 재해정보를 실시간으로 종합 분석한 뒤 만든 취약지역 정보를 제공한다. 육안 관제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인공지능 폐쇄회로(CC)TV 분석기술을 적용한 재해경보체계도 구축한다. 강소형 스마트시티 사업공모를 통해 재해대응 특화 솔루션을 실증하는 재해대응 선도 도시도 조성한다. 시범사업 등을 통해 검증이 완료된 서비스는 보급하는 한편, 새로운 재해대응 솔루션에 대한 연구개발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
이원재 국토교통부 1차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기후재해 발생 시 신속한 복구도 중요하지만, 도시 공간에 집중된 재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도시계획, 주거대책과 연계를 통한 사전적·종합적 대응이 중요하다”면서 “(이번 강화방안을 통해) 재해대응력을 체계적으로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바람대로 이번 대책이 계획대로 실행돼 영화 ‘기생충’이 예술작품으로만 기억되고 평가받길 기대해본다.
황재성 기자는…
동아일보 경제부장을 역임한 부동산 전문기자다. 30년간의 기자생활 중 20년을 부동산 및 국토교통 정책을 다루는 국토교통부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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