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평군 개군산에서 바라본 숲속마을 전경
이 마을은 우리나라에 ‘땅콩집’(땅콩껍질 안에 땅콩 두 알이 들어 있는 것처럼, 한 필지에 집 두 채를 짓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 열풍을 불러온 건축가가 ‘마을 만들기’ 일환으로 기획한 ‘땅콩밭’이다. 그가 추진한 땅콩밭은 경기 용인, 오산, 동탄 등 12개에 달한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마을’, 강북구 수유동 ‘재미난마을’ 등 주민공동체가 성공적으로 꾸려지면서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마을 만들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양평 숲속마을은 현재 27가구가 둥지를 튼 상태. 3차 공사를 마무리하면 80여 가구가 머무는 ‘거대한’ 주거단지가 된다. 이곳은 땅값이 저렴해 한 필지에 두 집을 짓는 땅콩집이 아닌, 한 필지에 한 집을 짓는 ‘외콩집’으로 꾸민 것이 특징이다. 이 마을은 땅값 5000만 원, 시공비 1억 원, 설계비 1000만 원 등 1억6000만원 내외로 마당 있는 내 집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탄생했다. 거주자는 모두 집 실소유자로, 30~40대 외벌이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들은 서울 종로, 강남, 금천 등지로 많게는 2시간을 들여 출근한다.
숲속마을 주민들은 왜 이곳에 왔을까. 그 답을 듣고자 마을 대표 이윤호(35) 씨에게 먼저 연락했다. 인심 좋은 시골이라고 해도 불쑥 남의 집에 들어가 취재할 수 없기에 사전에 취재 협조를 요청했다. 이씨는 “주민들에게 카카오톡 단체 문자메시지로 9월 10일 취재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공지했다”면서 “집을 찾아가면 주민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집에 간다’ 아닌 ‘쉬러 간다’ 느낌 들어
1 유리창으로 된 선룸에 앉아 노을을 보노라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는 김태진 씨(오른쪽).
유리창으로 된 선룸(sun room)의 식탁 위에 객을 위한 포도주스를 살포시 올려놓은 김씨의 직업은 건축가. 경기 시흥에 있는 사무실로 일주일에 2~3번 출근한다는 그는 “과거에는 퇴근하면 ‘그저 집에 간다’는 마음이었지만 이제는 ‘쉬러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뿌듯해했다.
“올 3월 여기로 들어온 뒤로는 주말에 나간 적이 별로 없어요. 휴가철이면 해외로 나가곤 했는데 굳이 나갈 이유가 없더라고요. 아이들이 여름에 집 앞 풀장에서 노느라 까맣게 탔죠(웃음). 저도 선룸에서 노을 지는 모습을 보노라면 정말 잘 왔다 싶어요. 참, 친인척하고 다니던 여행을 이번에는 이웃과 다녀왔어요. 그만큼 이웃하고 돈독해졌는데 일요일에는 대부분 이웃과 시간을 보내요. 토요일에는 지인이 많이 오는데, 매주 손님을 받다 보니 저희 생활이 없어져 격주로 손님을 초대하고 있어요.”
2 김태진 씨 집 전경. 3 김태진 씨 가족과 이웃이 집 앞 풀장에서 즐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도시에서처럼 문화생활을 하기는 쉽지 않아요. 가장 힘든 건 벌레가 많다는 점이죠. 하지만 그런 것만 빼면 다 좋아요. 아이들 어린이집, 초등학교 스쿨버스가 마을 앞까지 오기 때문에 등·하교도 수월하고, 방과후수업도 생각보다 훌륭해요. 딸아이 성적이 좋으면 계속 이곳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하는 걸 봐서는 가능해 보여요(웃음).”
김씨는 자신처럼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준비 기간을 둘 것을 권했다. 무작정 교외에 집을 짓기보다 교외 주택에서 전세로 살면서 자신에게 적당한 곳인지 알아보라는 얘기다.
김씨 집 윗집에 사는 김은영(33) 씨는 비교적 준비를 많이 하고 이주한 경우다. 앞집에 마실 온 그를 앞집 벤치에서 만났다. 그는 신혼 때 서울 강북구 번동에 있는 43㎡(13평) 빌라를 8000만 원에 구매해 그곳에서 살았다. 하지만 땅콩집 열풍 이후 전원생활을 동경해 운전, 재봉틀, 우쿨렐레를 배우며 시골행을 준비했다. 다니던 직장마저 그만뒀다.
낚시가 취미인 남편 가정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마당 있는 집을 만들어주고 싶어 이주한 김은영 씨가 집 앞에서 아들 이호준 군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위). 김은영 씨 남편 이승재 씨는 주말이면 남한강에서 낚시한 고기를 이웃들과 나눈다.
그가 양평행을 결심한 또 다른 이유는 남편의 취미생활 때문이다. 여행사 영업팀 직원인 남편은 주중 내내 일이 많아선지, 주말이면 낚시터로 훌쩍 떠나기 일쑤였다. 어린 아들을 혼자 돌보던 아내는 남편과의 사이가 점점 나빠졌다. 하지만 아내가 “낚시를 할 수 있는 곳에서 살자”고 제안하자 남편이 반색하며 거들었다. 양평역에서 직장이 있는 서울 종로까지 급행열차로 1시간 20분여가 걸리는데도 감내하겠다고 했다. 집 지을 준비를 하면서 집 꾸미기라는 공통 취미도 생겼다. 부부는 빌라를 팔고 대출금과 여윳돈을 합친 2억 원으로 땅 247㎡(75평)를 사고 각 층이 33㎡(10평)인 3층짜리 집을 지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다.
“몇 달 전만 해도 주말에 아이와 단둘이 보낼 때가 많았어요. 이제는 남편이 남한강에서 새벽 낚시를 하고 아침 9시면 돌아와요. 잡은 고기를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매운탕도 함께 끓여먹는데, 이제는 남편 취미로 많은 사람이 행복해졌죠.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에요. 이웃에 사는 아이들이 우리 아들과 함께 놀아주니까 육아 스트레스도 많이 덜었고요(웃음).”
물론 어려운 점도 있다. 남편은 밤 9~10시가 돼야 돌아오기 때문에 주중에는 아이가 아빠를 볼 시간이 거의 없다. 더 큰 문제는 버스가 하루에 세 번만 온다는 점이다.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는 그로서는 전처럼 자유로이 다닐 수 없어 답답할 따름이다. 이웃들과 함께 장을 보러 다닌다는 그는 언젠가 마을에 셔틀버스가 생기면 고충이 줄어들 거라 기대했다.
“예전에는 지하철 한 대만 놓쳐도 발을 동동거렸어요. 그런데 이제는 시간이 많아선지 마음이 여유로워졌어요. 12시 반에 오는 버스를 타려고 일찌감치 나가 기다리거든요. 가능하면 아이가 커서도 이곳에서 살고 싶어요. 시간에 쫓기지 않고 시간을 채우며 살고 싶거든요.”
집값 오를 기대 없이 내 집에 살 뿐
정갈한 앞뜰에서 석유리 씨가 막 잠에서 깬 딸 송지민 양을 업어 달래고 있다.
“신혼 때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92㎡(28평) 1억7000만 원 아파트에 살다가 남편이 경매로 강동구 길동 96㎡(29평) 아파트를 3억9000만 원에 샀어요. 살던 아파트가 1억 원 올라서 그 돈으로 충당했죠. 그런데 새로 들어간 아파트가 도로변에 있어선지 가족들 기관지가 나빠졌어요. 여기는 신랑이 원해서 왔고 저는 반대했죠. 그 집을 팔아 땅 495㎡(150평)에 1층과 2층 각각 82㎡(25평), 3층 49㎡(15평)인 3층 집을 4억 원에 지었지만 너무 외져서 싫었어요.”
6세 아들, 4세 딸을 키우는 그는 육아휴직 상태. 중소기업에서 기획 일을 하고, 백화점 문화센터에 다니던 그가 시골생활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양평여성회관에서 도예, 홈파티요리를 배우며 주민들과 교류하면서 ‘이곳이 살 만하다’고 느끼는 중이다. 남편은 서울 강남 역삼동 사무실로 매일 출퇴근하는데도 만족도가 높다. 항만 엔지니어링 기술자로 바쁜데도, 전 마을대표였을 정도로 마을 만들기에 열성이다. 함께 사는 시어머니는 자신만의 독립적인 공간인 1층에서 생활하고, 정원 손질을 하며, 뒷집 할머니와 친해지면서 만족도가 높아졌다. 석씨는 “삶이 윤택해진 덕에 고부관계가 좋아졌다”며 빙긋이 웃었다.
“그동안 집을 옮겨 다니며 돈을 벌었기 때문에 앞으로 이사하지 않는다고는 보장할 수 없겠죠. 그런데 이 집은 값이 오르지 않을 것 같아요. 땅값이 오르면 몰라도 누가 여기에 와서 살려고 하겠어요. 만약 서울로 가야 할 일이 생기면 전세를 줄 거고, 언제든 여기로 돌아와야죠. 지금 당장은 손님 치르느라 생활비가 전보다 3배 늘었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전처럼 안정되겠죠(웃음). 한 번 살아보세요. 생각보다 좋아요.”
숲속마을 사람들을 만나며 마을 만들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도심에서 이웃과 교류 없이 살다가 갑자기 이웃과 어울려 지내기가 버거울 수 있다. 실제로 몇몇 주민은 이웃과의 교류로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마을회의를 하면서 실외활동은 자정 전까지 끝내기, 아이들은 저녁식사 전까지 집으로 돌려보내기, 파티 때 참가자들이 각자 음식 준비하기 등 소소한 규칙을 만들면서 그 어려움은 조율되는 모양새다. “언제까지나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숲속마을 주민들의 바람이 현실이 되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