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6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전군주요지휘관회의 결과를 보고받고 있다.
MB도 직접 나섰지만 힘없는 메아리
4월 22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한진텐진호 구출작전에 대한 결과를 보고 중이다.
“쉬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끝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대통령 본인이 수차례 나서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장관을 비롯한 군 당국 고위층 전체가 총력을 기울인 사안이었다. 국군기무사령부는 상황 분석과 대책 마련을 위한 별도의 팀을 운영했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본회의 상정은커녕 법안심사소위원회 문턱도 못 넘고 끝날 판이다.”
개혁안 추진에 관여한 전직 군 고위관계자의 토로다. 정부가 한국군의 상부지휘구조를 일원화 체제로 개편하겠다며 추진해온 국방개혁안이 국회 공전 상황에 휘말리면서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은 그는 “정치권도 문제지만, 애초에 개혁안을 만든 메커니즘이나 정부가 일을 추진해온 과정에서부터 한계를 배태했다”고 못 박았다.
당초 정부는 12월 임시국회를 개혁안 통과의 마지막 고비라 판단하고 총력을 기울였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직접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수차례 참석하고, 차관을 비롯한 고위관계자들이 시간 날 때마다 의원회관을 방문하는 등 다급한 행보가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도 직접 나서서 “국방개혁은 현대전을 위한 제2의 창군”이라며 여러 차례 힘을 실었다.
그러나 상황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여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강행 처리한 이후 여의도 정치 일정이 올 스톱한 데다,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 개혁안 통과 주도의 총대를 멨던 홍준표 대표가 중앙선관위원회 디도스 공격 논란의 와중에 낙마했다. 여기에 한나라당 내부 사정이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수렁에 빠지면서 개혁안 처리 문제가 비집고 들어설 틈이 사라진 것. 예산처리를 위해 12월 중에 국회 일정을 재개한다는 여야 간 합의가 있었지만, 국방개혁안 처리는 논의 대상과 거리가 멀다.
3월 30일 국방부와 합참에 근무하는 대령급 이상 장교들이 국방부 대강당에서 한민구 당시 합참의장의 국방개혁안 설명을 듣고 있다.
원유철 국방위원장은 이미 11월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11월 29일을 심사기일로 정한다”고 선을 그어놓은 상태지만, 기일이 지났다고 해서 야당을 배제한 채 위원회를 개최한다는 시나리오는 상상하기 어렵다. 더욱이 대통령 탈당 요구가 나올 만큼 혼돈된 최근 여의도 상황에서 ‘청와대와 정부의 간곡한 요청’이라는 말은 여당 의원에게도 별다른 압력이 되기 어려워 보인다. 당내 주류세력으로 부상한 친박(친박근혜) 진영이 이 사안에 상대적으로 유보적 태도를 취해온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변수. 한 국회 관계자는 “개혁안이 법안심사소위→국방위 전체회의→법사위→본회의라는 길고 긴 개정 절차를 연내에 통과할 가능성은 1% 미만”이라고 선을 그었다.
올해를 그냥 넘기면 내년은 더욱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국방부에는 초비상이 걸렸다. 2월 임시국회가 열린다 해도 공천과 총선을 코앞에 둔 임기 말 국회가 이 사안을 처리해줄 확률은 제로에 가깝고, 총선 이후에는 야당이 다수당을 차지할 가능성이 큰 현재 분위기상 새 국회가 이를 통과시켜줄 리도 만무하다. 만에 하나 의석 판도가 크게 바뀌지 않는다 해도, 이미 제출된 법안은 모두 폐기되는 데다 새로 당선된 의원들과 원점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한 국방부 관계자의 말이다.
“문제는 2015년 말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 전환까지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지휘구조 개편에 관한 큰 그림을 확정해야 군무회의와 국방개혁심의위원회를 열어 기본계획을 수립할 수 있지만, 국회 통과가 무산될 경우 다른 우회로란 불가능하다. 쉽게 말해 이명박 정부의 국방개혁안 전체가 붕괴되는 것이다. 이 경우 전작권 전환 준비는 새 정부가 들어선 후에나 다시 논의할 수 있을 텐데, 이후 시간에 쫓겨 진행하는 준비 작업은 졸속으로 흐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합동성’이 다른 과제 발목 잡은 형국
10월 1일 계룡대에서 열린 건군 63주년 기념 국군의 날 행사. 이날 이명박 대통령은 ‘국방개혁, 현대전을 위한 제2의 창군’이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더욱 냉정히 말하자면, 이명박 정부는 국방개혁과 관련해 집권 후 3년 가까운 시간을 허비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2020’을 수정해 작성한 ‘국방개혁 기본계획’을 대통령이 재가한 것이 2009년 6월. 국방개혁이라는 어젠다의 규모와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의 그물을 감안하면 최소한 이 시점에는 현재의 개혁안 수준의 큰 그림이 나왔어야 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이 대통령의 대선캠프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5년 단임제 대통령의 특성상 국방개혁 같은 과제를 수행하려면 인수위 시기부터 뚜렷한 원칙과 비전을 갖고 임해야 했다”고 말했다. 결국 모든 책임은 청와대를 향한다는 질책이다.
물론 정부 관계자에게도 할 말은 있다. ‘국방 분야의 경영 합리화’를 화두로 예산 효율화를 핵심으로 하는 국방개혁의 큰 그림을 초기부터 준비해왔지만, 지난해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뿌리부터 흔들렸다는 것. 이후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와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 등 청와대가 주도하는 회의체를 통해 달라진 상황에 맞는 개혁의 핵심 얼개를 완성해가다 보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청와대 주도의 논의 과정에서 국회나 군 예비역 인사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들의 자존심을 자극했고, 이 때문에 상황이 악화됐다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다. 실제로 군 고위관계자들조차 이들 회의체에 관여했던 인사들이 “현재의 한국군은 (전쟁이 벌어지면) 무조건 지는 군대”라는 식의 공개 발언을 쏟아낸 것에 대해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개혁안이 공개된 후 해·공군 예비역 인사를 중심으로 반대의견이 쏟아지면서 야당은 물론 여당의원들조차 선뜻 개혁안에 손을 들어줄 수 없는 구도가 만들어진 것 아니냐는 반문이다. 한 전직 군 최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합동성 강화’를 개혁의 모든 것인 양 치부한 게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에서 나타난 한계가 과연 합동성 부족 때문이었는지는 이견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를 통합군제 시도로 의심한 예비역들의 반대가 본격화하자 다른 개혁 어젠다도 한꺼번에 발이 묶여 꼼짝할 수 없게 됐다.”
“씻을 수 없는 과오로 기록될 것”
최근 국회 일각에서는 “무조건 이번 국회 임기 안에 처리한다고 능사가 아니다”라는 말도 나온다.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지만 여당 단독으로 개혁안을 통과시킨다 해도, 총선 이후 다수당이 된 야권이나 내년 대선 이후 들어설 새 정부가 이를 폐기하고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소지가 크기 때문. 이렇게 되면 지난 4년간 국방개혁 문제를 둘러싸고 군 안팎에서 벌였던 갖가지 논쟁을 다시 한 번 반복할 수밖에 없고, 본격적인 전작권 전환 준비는 새 정부가 안정화되는 2013년 말에나 힘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충분한 합의 없이 진행하는 법안 통과는 아무런 실익이 없다는 의미다.
하나의 과제를 만들고 공론화한 뒤 한참을 표류하다 끝내 침몰하고 마는 일련의 흐름. 현재의 국방개혁안 동의 여부를 떠나 전문가 대부분이 정부와 청와대의 능력 문제를 거론하는 이유다. 익명을 요청한 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는 “대통령이 개혁을 선언했다면 어떻게든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게 정권의 능력이고 참모의 존재 이유다. 이명박 정부 국방개혁안의 침몰은 두고두고 한국군에 큰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씻을 수 없는 과오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