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방, 먹방에 이어 ‘사(史)방’이 뜬다.
요리하고, 먹고 마시는 방송이 최근 몇 년간 예능프로그램을 지배했다면 이제는 역사를 배우고 즐기는 역사 예능이 새로운 대중문화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MBC ‘무한도전’과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 등 인기 예능이 딱딱하고 지루하게 여겨지던 역사를 소재로 한 특집을 선보이며 시청자로부터 호평을 받은 가운데 종합편성채널 채널A는 역사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사심충만 오!쾌남’(오쾌남)을 4월 1일 첫 방송한다.
3월 3일 인천 강화도에서 진행된 ‘오쾌남’ 촬영 현장. 1866년 조선 병사들이 처음으로 프랑스군을 막아냈던 삼랑성 전투 격전지에 ‘쾌남’과 ‘쾌걸’이 등장했다. 삼랑성 전투는 양헌수 장군과 포수들이 신식 무기로 무장한 프랑스군을 물리쳤던 전투. 이날 이들이 둘러본 전등사에는 양헌수 장군과 병사들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남자 연예인과 여자 아이돌이 함께 떠나는 역사 여행
한국사 스타 강사인 이다지 씨의 설명을 들으며 역사 공부에 한창인 쾌남과 쾌걸은 ‘오쾌남’의 주인공들이다. ‘오쾌남’은 쾌남 5명이 역사의 현장을 보고 체험하며 여행하는 버라이어티 예능. 연출을 맡은 채널A 박세진 PD는 “역사를 배우긴 했지만 오래돼 잊어버린 아재들과 역사를 배울 기회가 없던 아이돌 소녀들이 함께 여행하면서 우리 역사를 배우고 느끼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다.
시대를 읽을 줄 아는 진정한 ‘쾌남’이 되고자 쾌남들은 매회 걸그룹 게스트인 쾌걸들과 함께 역사 유적지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첫 회에는 역사유적이 많아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강화도를 무대로 쾌남과 쾌걸들의 역사 여행기가 펼쳐진다. 강화도에 이어 교동도, 창경궁, 수원 화성 등을 다룰 예정.
강화도 여행에는 걸그룹 EXID의 멤버 하니와 혜린이 쾌걸로 합류했다. 이들은 쾌남들과 함께 덕포진교육박물관을 시작으로 병인양요의 최대 격전지인 삼랑성, 신미양요가 벌어졌던 광성보, 전등사 등을 둘러봤다. 촬영에 앞서 만난 혜린은 “소속사에서 얼마 전 멤버에게 휴가를 줬는데 하니는 역사책을 들고 혼자 경북 경주에 갈 정도로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경주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빼곡하게 메모한 하니의 역사 노트도 공개된다.
앞으로 역사 현장 곳곳을 누빌 쾌남 5명에는 방송인 김성주를 비롯해 전 축구 국가대표 안정환, 배우 한상진, 개그맨 조세호, 아이돌그룹 몬스타 엑스의 리더 셔누가 캐스팅됐다.
‘명쾌’ 김성주는 자칫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질 역사 관련 내용을 쉽고 명확하게 풀어주는 진행으로 ‘오쾌남’의 맏형 구실을 맡았다. ‘흔쾌’ 안정환은 역사에 호기심이 많고 시원시원한 ‘쿨가이’ 캐릭터로, 그동안 여러 예능에서 호흡을 맞춰온 김성주와 ‘부부 케미’를 선보인다.
3월 28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김성주는 “어쩌다 보니 안정환과는 목요일부터 월요일까지 하루도 안 빠지고 보는 사이가 됐다”며 “집에 있는 아내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그와 촬영장에서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예능에서 까칠하고 뭐든 귀찮아하는 캐릭터를 보여줬던 안정환은 역사 유적지에서 배운 내용을 수첩에 기록할 정도로 역사 공부에 열정적이라는 후문. 이날 제작발표회에서는 안정환이 광성보에 다녀온 후 전투하는 꿈을 꾸며 잠꼬대를 했다는 출연자들의 제보가 이어졌다.
‘유쾌’ 조세호는 누구보다 역사 공부에 적극적이지만 아쉽게도(?) 역사 관련 지식이 가장 넓고 얕은 게 특징. 김성주는 “선생님에게 질문해놓고 선생님의 대답을 들으며 졸고 있더라”며 조세호의 엉뚱한 면을 폭로했다.
조세호는 “회초리를 맞으면서 공부해야겠다”며 “올해로 36세인데 아직도 주의가 산만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주의가 산만해도 단순 암기력은 누구보다 뛰어나다며 훈민정음 앞부분과 단심가를 암송해 취재진으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명쾌 흔쾌 유쾌 통쾌 상쾌…다섯 쾌남 뭉쳤다
‘통쾌’ 한상진은 그동안 ‘마의’ ‘이산’ ‘육룡이나르샤’ 등 사극에 출연하며 역사 지식이 멤버 가운데 가장 해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극에서 백성, 보부상도 해보고 왕도 해봤다. 사극에서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셈”이라고 말했다. 제작발표회에서 한상진은 “사극에 출연하는 배우는 기본적인 소양과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많이 공부하고 준비하는 편”이라며 “한국사 시험을 볼 생각도 잠깐 했지만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보니 역사는 시험으로 점수를 매기는 분야가 아니라 마음으로, 기억으로 남겨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예능에 첫 출연하는 ‘상쾌’ 셔누는 선배들에게 깍듯한 막내로, 존재만으로도 상쾌한 에너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국내 예능이 정규 편성을 통해 본격적으로 역사를 소재로 한 리얼 버라이어티를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출연자들 또한 예능이지만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김성주는 “주입식, 암기식으로 역사 교육을 받은 세대여서 그런지 몇몇 예능에서 역사를 접한 아이들이 내게 질문을 하면 난감할 때가 많다. ‘오쾌남’을 통해 역사를 공부해보니 역사가 반복된다는 생각이 들더라.
과거 사건들을 통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고 세상을 바라볼지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상진 또한 “외세 침략을 받을 때 백성이 자진해 전투에 참여한 역사를 보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점을 느낀다”면서 “촬영할 때마다 그들의 희생을 생각하면 뜨거움이 올라오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박세진 PD는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딱딱한 수업이 아닌, 여행과 이야기를 통해 역사를 편하게 익히길 바라고, ‘오쾌남’이 찾은 루트를 보면서 ‘나도 주말에 가족과 한번 다녀와볼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