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즈오카현 오야마초의 후지 묘원. 이곳에는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1896〜1987)가 잠들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차관과 상공장관을 지낸 기시 전 총리는 A급 전범으로 복역하다 불기소처분으로 석방됐다. 이후 그는 1955년 자민당 초대 간사장을 거쳐 57년부터 60년까지 총리를 역임하는 등 전후 일본 정계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극우 정치인이었다. 일본의 침략 전쟁을 인정하지 않았던 기시 전 총리의 목표는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전후 체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기시 전 총리는 1956년 총선에서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당시 야당인 사회당의 약진으로 자민당은 개헌 발의 정족수인 3분의 2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그는 60년 집단자위권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미·일 안보조약 개정안을 중의원에서 통과시켰다. 개헌 대신 집단자위권 행사라는 편법을 미·일 안보조약에 집어넣은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전역에서 반대 시위가 이어지며 정국이 마비되자 기시 전 총리는 사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평화헌법을 바꾸는 게 일본의 진정한 독립”이라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2015년 9월 외조부 묘를 참배하면서 집단자위권 행사를 전면 허용하는 안보법을 제정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보고했다. 외조부가 못 한 집단자위권 전면 행사를 법으로 보장한 것이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뿌리이자 롤모델은 기시 전 총리다. 아버지(아베 신타로)가 외무상까지 올랐던 인물이지만, 아베 총리는 정치인으로서 가장 닮고 싶은 인물로 외조부를 꼽아왔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제2차 세계대전을 제국주의에 대항해 싸운 정의의 전쟁이었고, A급 전범은 범죄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등 전후 체제를 부인해왔다. 기시 전 총리의 정치적 DNA를 그대로 계승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아베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해 총리가 됐다. 이때 내건 공약에 개헌이 들어가 있었다. 1년 만에 건강 문제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그는 절치부심하다 2012년 총리로 복직하면서 다시 개헌을 추진해왔다.
아베 총리는 7월 10일 실시된 참의원 선거의 승리로 기시 전 총리의 ‘비원’(悲願·비장한 소원)인 평화헌법 개정을 적극 추진할 수 있는 카드를 확보했다. 상원격인 참의원 선거 결과를 보면 집권 여당인 자민당을 비롯한 개헌 지지세력이 개헌안 발의 정족수인 3분의 2 의석을 확보했다. 전체 의원 242명 중 121명을 새로 선출한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과 연립정권 파트너인 공명당, 오사카유신회,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당 등 개헌을 지지하는 4개 정당이 모두 77석을 차지했다. 새로 뽑지 않는 121석 가운데 이들 4개 정당은 84석을 갖고 있다. 4개 정당의 전체 의석을 합치면 161석이 된다. 여기에다 개헌을 지지하는 무소속 의원 4명을 더하면 165석으로, 개헌안 발의 정족수인 162석을 넘게 된다. 하원격인 중의원에선 자민·공명당이 이미 전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개헌안은 중·참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국민투표에서 18세 이상 국민 과반수가 찬성해야 통과된다.
아베 총리가 추진해온 개헌의 최종 목표는 평화헌법 제9조를 바꾸는 것이다. 제9조를 보면 1항에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2항은 ‘육·해·공군 및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내용 때문에 일본 헌법은 그동안 평화헌법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평화헌법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의 주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1946년 11월 3일 공포됐다. 아베 등 개헌 지지세력은 현행 헌법이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의 강요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당시 일본이 패전국이라는 약자의 위치에서 어쩔 수 없이 수용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또 개헌을 통해 ‘자주헌법’을 만들어야 일본이 전후체제에서 탈피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평화헌법 제9조 전체를 뜯어고쳐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가가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의 표현대로 하자면 일본을 ‘보통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보통국가란 정치·외교·군사·경제 주권을 확립하고 국력에 걸맞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를 뜻한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의도하는 보통국가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전의 일본을 의미한다. 전전(戰前) 일본은 주변국을 침략해 식민지로 삼는 등 패권만 추구한 군국주의 국가였다. 일본이 진정한 보통국가가 되려면 독일처럼 전범들을 처벌하고 식민지배, 학살, 징용과 위안부 강제동원 등 온갖 악행을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아베 총리 등 개헌 지지세력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이를 인정한 적이 없다. 이들의 야심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명분으로 일본을 군사대국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로선 아베 총리의 전략이 성공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경제 살리기에 실패할 경우 개헌이 물 건너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동북아 정세가 아베 총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주한미군 배치에 따른 미국과 중국의 갈등 증폭,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등 동·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안보 불안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로선 동북아 정세가 혼란에 빠질수록 자신과 외조부의 꿈인 개헌이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기시 전 총리는 1956년 총선에서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당시 야당인 사회당의 약진으로 자민당은 개헌 발의 정족수인 3분의 2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그는 60년 집단자위권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미·일 안보조약 개정안을 중의원에서 통과시켰다. 개헌 대신 집단자위권 행사라는 편법을 미·일 안보조약에 집어넣은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전역에서 반대 시위가 이어지며 정국이 마비되자 기시 전 총리는 사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평화헌법을 바꾸는 게 일본의 진정한 독립”이라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2015년 9월 외조부 묘를 참배하면서 집단자위권 행사를 전면 허용하는 안보법을 제정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보고했다. 외조부가 못 한 집단자위권 전면 행사를 법으로 보장한 것이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뿌리이자 롤모델은 기시 전 총리다. 아버지(아베 신타로)가 외무상까지 올랐던 인물이지만, 아베 총리는 정치인으로서 가장 닮고 싶은 인물로 외조부를 꼽아왔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제2차 세계대전을 제국주의에 대항해 싸운 정의의 전쟁이었고, A급 전범은 범죄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등 전후 체제를 부인해왔다. 기시 전 총리의 정치적 DNA를 그대로 계승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의 꿈
아베 총리는 개헌을 가장 실현하고 싶은 정치적 목표라고 말해왔다. 그는 1993년 38세에 처음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했을 때도 “국회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헌법 개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2006년 발간한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도 ‘연합군이 일본을 두 번 다시 열강이 되지 못하도록 평화헌법을 통해 손발을 묶어놓았다’며 ‘일본이 스스로 헌법을 제정해야 진짜로 독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손(祖孫)의 신념이 판박이인 셈이다.당시 아베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해 총리가 됐다. 이때 내건 공약에 개헌이 들어가 있었다. 1년 만에 건강 문제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그는 절치부심하다 2012년 총리로 복직하면서 다시 개헌을 추진해왔다.
아베 총리는 7월 10일 실시된 참의원 선거의 승리로 기시 전 총리의 ‘비원’(悲願·비장한 소원)인 평화헌법 개정을 적극 추진할 수 있는 카드를 확보했다. 상원격인 참의원 선거 결과를 보면 집권 여당인 자민당을 비롯한 개헌 지지세력이 개헌안 발의 정족수인 3분의 2 의석을 확보했다. 전체 의원 242명 중 121명을 새로 선출한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과 연립정권 파트너인 공명당, 오사카유신회,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당 등 개헌을 지지하는 4개 정당이 모두 77석을 차지했다. 새로 뽑지 않는 121석 가운데 이들 4개 정당은 84석을 갖고 있다. 4개 정당의 전체 의석을 합치면 161석이 된다. 여기에다 개헌을 지지하는 무소속 의원 4명을 더하면 165석으로, 개헌안 발의 정족수인 162석을 넘게 된다. 하원격인 중의원에선 자민·공명당이 이미 전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개헌안은 중·참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국민투표에서 18세 이상 국민 과반수가 찬성해야 통과된다.
아베 총리가 추진해온 개헌의 최종 목표는 평화헌법 제9조를 바꾸는 것이다. 제9조를 보면 1항에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2항은 ‘육·해·공군 및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내용 때문에 일본 헌법은 그동안 평화헌법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평화헌법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의 주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1946년 11월 3일 공포됐다. 아베 등 개헌 지지세력은 현행 헌법이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의 강요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당시 일본이 패전국이라는 약자의 위치에서 어쩔 수 없이 수용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또 개헌을 통해 ‘자주헌법’을 만들어야 일본이 전후체제에서 탈피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평화헌법 제9조 전체를 뜯어고쳐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가가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의 표현대로 하자면 일본을 ‘보통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보통국가란 정치·외교·군사·경제 주권을 확립하고 국력에 걸맞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를 뜻한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의도하는 보통국가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전의 일본을 의미한다. 전전(戰前) 일본은 주변국을 침략해 식민지로 삼는 등 패권만 추구한 군국주의 국가였다. 일본이 진정한 보통국가가 되려면 독일처럼 전범들을 처벌하고 식민지배, 학살, 징용과 위안부 강제동원 등 온갖 악행을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아베 총리 등 개헌 지지세력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이를 인정한 적이 없다. 이들의 야심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명분으로 일본을 군사대국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 살리기로 민심 얻는 게 우선
그렇다면 아베 총리는 개헌을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까. 그는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2018년 9월 이전에 개헌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평화헌법 제9조를 바꾸는 개헌을 그대로 밀어붙이기는 어려울 듯하다. 일본 국민의 평화헌법 제9조 개정에 대한 반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교토통신’이 실시한 참의원 선거 출구조사에서 개헌 반대가 50%, 찬성이 39.8%로 집계됐다. 아베 총리는 우선 1단계로 ‘긴급사태 조항’ ‘환경권’ 등을 평화헌법에 추가하는 등 국민의 거부감을 낮추는 방향으로 개헌하고, 2단계로 제9조를 개정하는 개헌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가 “국회는 개헌안을 발의할 뿐이며 결정하는 것은 국민투표”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아베 총리가 참의원 선거 다음 날부터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천명한 것도 개헌을 위해 민심을 얻으려는 포석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10조~20조 엔(약 110조~220조 원)을 투입하고 고속철 조기 개통 등 인프라를 개선할 계획이다. 아베 총리는 이와 함께 9월 임시국회를 개원하면 중·참의원에서 헌법심사회를 가동해 단계적으로 개헌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현재로선 아베 총리의 전략이 성공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경제 살리기에 실패할 경우 개헌이 물 건너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동북아 정세가 아베 총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주한미군 배치에 따른 미국과 중국의 갈등 증폭,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등 동·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안보 불안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로선 동북아 정세가 혼란에 빠질수록 자신과 외조부의 꿈인 개헌이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