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실크로드는 중국 톈산(天山)산맥을 만나면서 톈산북로와 톈산남로로 갈라진다. 북쪽 기슭에 점점이 있는 오아시스 도시를 연결하는 동서 간 육상교통로인 톈산북로는 둔황, 투루판, 우루무치를 거쳐 카자흐스탄을 지나 터키, 로마에 이른다. 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2007년 7월 동료들과 함께 보름간 버스와 기차를 이용해 톈산북로를 여행했다. 중국 시안에서 시작해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서부의 바얀불락까지 달리는 동안 드넓은 농경지, 초지와 숲, 사막으로 바뀌는 낯설고도 다채로운 풍경과 만났다. 그러나 생태학자는 초원에 널린 가축의 똥도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
“우리 여행길에 제비를 많이 만나기도 했지만 고창고성 입구에서부터 참새가 유난히 많았습니다. 그곳에서 참새 사진을 찍던 ‘새박사’가 이런 말을 했지요. ‘우리를 태웠던 노새와 말의 똥으로 참새가 많은 것 같다.’ 이 말을 듣고 저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그래, 똥의 다양성이 자연의 다양성을 끌어내는 한 가지 요인이겠구나!”
이도원 교수는 여행길 동료들에게 설명을 이어간다. “시안에서 허시후이랑(河西回廊)을 지나는 동안에 우리는 주변에서 염소와 양 떼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투루판에서 우루무치로 이동하던 날 오후 지나쳤던 다반청(達坂城) 부근에서 갑자기 넓은 초원이 나타났고, 염소와 양, 소들이 많아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중략) 그리고 바얀불락 가는 길 주변 평원에서는 더 많은 염소와 양을 만났습니다.”
대화 주제는 이제 ‘사막화 방지 사업’으로 넘어간다. “기존의 사막화 방지 사업은 염소와 양을 사막화의 주범으로 봅니다. 그리고 염소와 양을 배제하고 나무를 심는 방식으로 사막화 방지 사업을 하려고 하지요.” 그의 결론은 이 방식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나무는 성장하는 데 풀보다 훨씬 많은 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건조한 사막에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숲을 만드는 것은 지하수를 고갈시켜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오히려 사막화된 땅을 녹화할 때 염소와 양을 포함한 초식동물들이 그 안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게 낫다는 주장이다. 어느새 이야기는 풀→초식동물→배설물→분해자→육식동물로 이어지는 에너지와 물질의 흐름으로 넘어간다. 톈산북로 여정을 마무리하며 그는 이렇게 기록한다. “식물이 그린 풍경 위에 동물들이 작용하고, 또 인간의 힘이 보태지면서 풍경은 바뀐다. 그 바뀌는 과정의 한 형태인 사막화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것이 이도원 교수가 제안하는 ‘관경(觀景)’이다.
그의 안내에 따라 비단길을 관경하다 보면 길섶의 염소 똥, 풀 한 포기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아를 잇는 캅카스(코카서스) 3국 여행에서는 ‘땅과 물’의 관계에 집중하고, 터키에서는 다채로운 풍경을 낳은 지형과 기후, 식생분포를 살펴보는 식이다. ‘관경하다’는 ‘깊숙이 보면 보이는 것들’에 대한 예찬이다.
만주 모던
한석정 지음/ 문학과지성사/ 518쪽/ 2만8000원
1960년대 ‘싸우면서 건설하자’ ‘배우면서 일하자’ 같은 재건국민운동 구호는 만주국(1932~45)의 모델을 차용한 것이다. 이 책의 부제 ‘60년대 한국 개발 체제의 기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한국의 ‘재건체제’, 불도저식 증산, 안보체제의 원류를 만주국에서 찾는다. 물론 이를 전파한 것은 일본 식민주의다. 30년대 만주와 60년대 남한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이들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살펴본다.
일생일어(一生一語)
김영수 편저/ 어른의시간/ 308쪽/ 1만5000원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자신의 승리 요인을 장량, 소하, 한신 같은 인재를 기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장량은 개국공신임에도 정치권력의 속성을 간파하고 일찍이 속세를 떠났다. 지금도 장량 사당이 있는 산시성 바위에는 ‘지지(知止·멈출 줄 알아라)’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요 임금의 ‘양위(讓位)’, 범려의 ‘토사구팽(兎死拘烹)’ 등 중국 역사에 이름을 남긴 26명의 인생 키워드를 정리했다.
장병준 평전
박남일 지음/ 도서출판 선인/ 292쪽/ 2만3000원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은 대규모 선거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그날 낮 12시 45분, 광주에서 민주당 당원 200여 명이 전국 최초로 부정선거 규탄시위를 벌였다. 당시 67세 장병준은 ‘곡(哭) 민주주의 장송(葬送)’이라 쓰인 현수막을 들고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었고 이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탁월한 균형 감각으로 통합을 추구했던 민족해방운동가 포양 장병준의 삶을 발굴한 평전.
시간 밖으로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김승욱 옮김/ 책세상/ 252쪽/ 1만5000원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명된 바 있는 이스라엘 작가는 이스라엘 정부의 극단적인 팔레스타인 정책에 반대해온 평화운동가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작가가 실제 2006년 2차 레바논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슬픔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물 깁는 여인, 수학 교사, 산파, 구두장이, ‘켄타우로스’로 불리는 작가 등 한 마을에서 자식의 죽음을 경험한 이들의 삶을 그렸다.
오사카에서 장사의 신을 만나다
이영호 지음/ 처음북스/ 256쪽/ 1만5000원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 조심스럽게 포일을 뜯자 그 안에서 스테이크가 얼굴을 내민다. 훅 하는 김과 함께 코끝을 사로잡을 정도로 매혹적인 육즙 그리고 고기향이 감미롭다.” 이 군침 넘어가는 장면은 일본 오사카의 함박스테이크 전문점 도요테이를 소개한 부분이다. 저자는 줄 서서 기다리는 오사카 맛집들의 성공 요인을 분석해 ‘잘되는 가게에서 배워야 할 특별한 그 무엇’에 대해 말한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핸드 지음/ 전대호 옮김/ 더퀘스트/ 300쪽/ 1만7000원
로또 1등에 당첨되고 싶은가. 돈이 있다면 가능한 숫자 세트를 모두 사라. 그중에 반드시 1등 당첨번호가 있다. 이것이 ‘필연성의 법칙’이다. 열차 사고가 날 확률은 매우 적지만 당신이 매일 열차를 탄다면 사고를 당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것이 ‘아주 큰 수의 법칙’이다. 세계적 통계학자가 쓴 이 책은 언뜻 보면 ‘말도 안 되는 일들’의 배후에 엄밀한 수학, 통계학적 법칙이 존재함을 알려준다.
심플, 결정의 조건
도널드 설·캐슬린 M. 아이젠하트 지음/ 위대선 옮김/ 와이즈베리/ 348쪽/ 1만5000원
전쟁터에서 한꺼번에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면 의료인은 치료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단순한 규칙(simple rules)’이다. 단순한 규칙은 기억하기 쉽고, 개인 및 조직에 맞춰 만들어지며, 명확한 지침과 함께 재량권을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저자가 일상 습관에서부터 기업 경영까지 군더더기를 빼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단순한 규칙의 힘을 설명했다.
왜 그들은 우리를 파괴하는가
이창무·박미랑 지음/ 메디치미디어/ 392쪽/ 1만5000원
우리나라 살인 피해자 10명 가운데 6명은 자신과 잘 아는 사람에게 피살된다. 4명 가운데 1명은 친족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이처럼 사이코패스보다 잘 아는 사람이 더 위험한 이유는 살인이 ‘격정의 범죄’이기 때문이다. 범죄학 전문가인 저자들은 ‘범죄에 대한 무지’가 두려움을 키우고, 피해를 입고도 자신이 피해자인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무지와 편견의 가면을 벗겨낸 범죄의 민낯은 무엇인가.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 여행길에 제비를 많이 만나기도 했지만 고창고성 입구에서부터 참새가 유난히 많았습니다. 그곳에서 참새 사진을 찍던 ‘새박사’가 이런 말을 했지요. ‘우리를 태웠던 노새와 말의 똥으로 참새가 많은 것 같다.’ 이 말을 듣고 저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그래, 똥의 다양성이 자연의 다양성을 끌어내는 한 가지 요인이겠구나!”
이도원 교수는 여행길 동료들에게 설명을 이어간다. “시안에서 허시후이랑(河西回廊)을 지나는 동안에 우리는 주변에서 염소와 양 떼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투루판에서 우루무치로 이동하던 날 오후 지나쳤던 다반청(達坂城) 부근에서 갑자기 넓은 초원이 나타났고, 염소와 양, 소들이 많아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중략) 그리고 바얀불락 가는 길 주변 평원에서는 더 많은 염소와 양을 만났습니다.”
대화 주제는 이제 ‘사막화 방지 사업’으로 넘어간다. “기존의 사막화 방지 사업은 염소와 양을 사막화의 주범으로 봅니다. 그리고 염소와 양을 배제하고 나무를 심는 방식으로 사막화 방지 사업을 하려고 하지요.” 그의 결론은 이 방식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나무는 성장하는 데 풀보다 훨씬 많은 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건조한 사막에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숲을 만드는 것은 지하수를 고갈시켜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오히려 사막화된 땅을 녹화할 때 염소와 양을 포함한 초식동물들이 그 안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게 낫다는 주장이다. 어느새 이야기는 풀→초식동물→배설물→분해자→육식동물로 이어지는 에너지와 물질의 흐름으로 넘어간다. 톈산북로 여정을 마무리하며 그는 이렇게 기록한다. “식물이 그린 풍경 위에 동물들이 작용하고, 또 인간의 힘이 보태지면서 풍경은 바뀐다. 그 바뀌는 과정의 한 형태인 사막화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것이 이도원 교수가 제안하는 ‘관경(觀景)’이다.
그의 안내에 따라 비단길을 관경하다 보면 길섶의 염소 똥, 풀 한 포기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아를 잇는 캅카스(코카서스) 3국 여행에서는 ‘땅과 물’의 관계에 집중하고, 터키에서는 다채로운 풍경을 낳은 지형과 기후, 식생분포를 살펴보는 식이다. ‘관경하다’는 ‘깊숙이 보면 보이는 것들’에 대한 예찬이다.
만주 모던
한석정 지음/ 문학과지성사/ 518쪽/ 2만8000원
1960년대 ‘싸우면서 건설하자’ ‘배우면서 일하자’ 같은 재건국민운동 구호는 만주국(1932~45)의 모델을 차용한 것이다. 이 책의 부제 ‘60년대 한국 개발 체제의 기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한국의 ‘재건체제’, 불도저식 증산, 안보체제의 원류를 만주국에서 찾는다. 물론 이를 전파한 것은 일본 식민주의다. 30년대 만주와 60년대 남한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이들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살펴본다.
일생일어(一生一語)
김영수 편저/ 어른의시간/ 308쪽/ 1만5000원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자신의 승리 요인을 장량, 소하, 한신 같은 인재를 기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장량은 개국공신임에도 정치권력의 속성을 간파하고 일찍이 속세를 떠났다. 지금도 장량 사당이 있는 산시성 바위에는 ‘지지(知止·멈출 줄 알아라)’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요 임금의 ‘양위(讓位)’, 범려의 ‘토사구팽(兎死拘烹)’ 등 중국 역사에 이름을 남긴 26명의 인생 키워드를 정리했다.
장병준 평전
박남일 지음/ 도서출판 선인/ 292쪽/ 2만3000원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은 대규모 선거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그날 낮 12시 45분, 광주에서 민주당 당원 200여 명이 전국 최초로 부정선거 규탄시위를 벌였다. 당시 67세 장병준은 ‘곡(哭) 민주주의 장송(葬送)’이라 쓰인 현수막을 들고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었고 이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탁월한 균형 감각으로 통합을 추구했던 민족해방운동가 포양 장병준의 삶을 발굴한 평전.
시간 밖으로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김승욱 옮김/ 책세상/ 252쪽/ 1만5000원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명된 바 있는 이스라엘 작가는 이스라엘 정부의 극단적인 팔레스타인 정책에 반대해온 평화운동가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작가가 실제 2006년 2차 레바논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슬픔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물 깁는 여인, 수학 교사, 산파, 구두장이, ‘켄타우로스’로 불리는 작가 등 한 마을에서 자식의 죽음을 경험한 이들의 삶을 그렸다.
오사카에서 장사의 신을 만나다
이영호 지음/ 처음북스/ 256쪽/ 1만5000원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 조심스럽게 포일을 뜯자 그 안에서 스테이크가 얼굴을 내민다. 훅 하는 김과 함께 코끝을 사로잡을 정도로 매혹적인 육즙 그리고 고기향이 감미롭다.” 이 군침 넘어가는 장면은 일본 오사카의 함박스테이크 전문점 도요테이를 소개한 부분이다. 저자는 줄 서서 기다리는 오사카 맛집들의 성공 요인을 분석해 ‘잘되는 가게에서 배워야 할 특별한 그 무엇’에 대해 말한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핸드 지음/ 전대호 옮김/ 더퀘스트/ 300쪽/ 1만7000원
로또 1등에 당첨되고 싶은가. 돈이 있다면 가능한 숫자 세트를 모두 사라. 그중에 반드시 1등 당첨번호가 있다. 이것이 ‘필연성의 법칙’이다. 열차 사고가 날 확률은 매우 적지만 당신이 매일 열차를 탄다면 사고를 당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것이 ‘아주 큰 수의 법칙’이다. 세계적 통계학자가 쓴 이 책은 언뜻 보면 ‘말도 안 되는 일들’의 배후에 엄밀한 수학, 통계학적 법칙이 존재함을 알려준다.
심플, 결정의 조건
도널드 설·캐슬린 M. 아이젠하트 지음/ 위대선 옮김/ 와이즈베리/ 348쪽/ 1만5000원
전쟁터에서 한꺼번에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면 의료인은 치료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단순한 규칙(simple rules)’이다. 단순한 규칙은 기억하기 쉽고, 개인 및 조직에 맞춰 만들어지며, 명확한 지침과 함께 재량권을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저자가 일상 습관에서부터 기업 경영까지 군더더기를 빼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단순한 규칙의 힘을 설명했다.
왜 그들은 우리를 파괴하는가
이창무·박미랑 지음/ 메디치미디어/ 392쪽/ 1만5000원
우리나라 살인 피해자 10명 가운데 6명은 자신과 잘 아는 사람에게 피살된다. 4명 가운데 1명은 친족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이처럼 사이코패스보다 잘 아는 사람이 더 위험한 이유는 살인이 ‘격정의 범죄’이기 때문이다. 범죄학 전문가인 저자들은 ‘범죄에 대한 무지’가 두려움을 키우고, 피해를 입고도 자신이 피해자인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무지와 편견의 가면을 벗겨낸 범죄의 민낯은 무엇인가.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