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8월 여드레간의 짧은 한국 여행을 시작으로 2014년 8월 서울대 국어교육과 부교수직을 그만두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로버트 파우저 교수가 30년 넘게 한국과 소통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쓴 책이 ‘미래 시민의 조건’(부제 ‘한국인이 알아야 할 민주주의 사용법’)이다. 그는 이 책 8장 ‘제3의 나와 한국인’에서 “모어(母語) 하나로 사는 것이 흑백이라면, 두 가지 언어로 사는 것은 컬러이고, 언어 세 개 이상으로 사는 것은 3D 컬러”라고 했다.
그가 3D(3차원) 컬러로 본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1982년, 그해 여름에 처음 만난 한국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독재자가 대통령이었고, 민주적 선거를 실시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을 떠난 1993년 여름에는 32년 만에 민주적 선거를 통해서 민주화운동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인 김영삼이 대통령이었다. 경제 성장으로 생활수준이 올라가면서 생활방식도 많이 변했다. 버스 안내원이 없어졌고, 단독주택이 많이 사라졌으며 지금의 서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많은 변화의 동력은 더 ‘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공감 때문이었다.”(3장 ‘좋은 나라를 향한 열망’ 중에서)
파우저는 한국인에게 ‘좋은 나라’의 기준은 ‘잘사는 자랑스러운 민주국가’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의 현실은 남북 분단, 학벌주의, 정경유착 어느 것 하나 해결하지 못한 채 선진국 문턱에서 기웃거리는 신세다. 파우저는 현재 ‘강남’과 ‘서민’이라는 말에서 과거 지배계층과 백성의 그림자를 본다. 한국에서 ‘강남’은 행정구역이라기보다 지배계층의 사회적 자본을 의미하며, 서민은 그것을 갖지 못한 대중이다. 정부의 무능에 불안한 서민들은 ‘강남’에 진입하고자 하고, 이미 ‘강남’에 진입한 사람들은 서민의 불안을 알기에 더 많은 사회적 자본을 가지려 아등바등하는 모습에서 21세기 한국인의 불안을 포착해낸다.
민주화운동이 양극화에 일조했다는 해석도 흥미롭다. 4·19혁명에 뿌리를 둔 민주화는 1987년 직선제 대통령선거를 실현했고 97년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뤘다. 문제는 자유선거가 성공하면서 인권과 권위주의 문제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고 그런 맥락에서 권력과 부의 집중, 즉 ‘강남’의 분배에 대한 관심도 사라졌다고 그는 분석한다. 그 결과가 2000년대 들어 더욱 벌어진 ‘강남’과 ‘서민’의 격차다.
파우저는 9장 ‘미래 시민의 조건’에서 작은 단위에 참여해 다른 이들과 소통하면서 실제적 영향을 미치는 민주시민이 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와 한국인에게 그가 한 조언 가운데 더 눈에 띄는 것은 ‘문화적 기둥’과 민족주의에 대한 해석이다. 민족주의를 이제 필요 없는 낡은 사상으로 치부하지 말고 자기중심이 되는 문화적 기둥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도록 전환하라는 것이다. 문화적 정체성이 뚜렷하면 남의 언어와 문화를 자신 있게 접하고 배울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는 점도 강조한다. 30년 축적된 내공으로 한국인의 취약점을 간파했다.
로봇의 부상
마틴 포드 지음/ 이창희 옮김/ 세종서적/ 480쪽/ 2만 원
자판기가 도입되자 당장 매장 임대료, 노무비, 고객과 종업원의 절도 세 가지가 대폭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동화의 물결은 저숙련 노동자뿐 아니라 화이트칼라의 일자리도 위협하고 있다. 임금 정체, 노동력 참여율 하락, 줄어드는 고용 창출, 급증하는 장기 실업, 심화하는 불평등, 대졸 새내기의 소득 감소와 저고용, 양극화와 파트타임 일자리가 현실이 된 상황에서 미래 사회의 변화를 경고한 책.
희망난민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혼다 유키 해설/ 이언숙 옮김/ 민음사/ 296쪽/ 1만7000원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로 한국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저자가 6년 전 쓴 책. 희망이 있어도 그것을 쉽게 이룰 수 없는 현실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을 ‘희망난민’이라 한다. 성장이 멈춘 시대 젊은이들은 새로운 공동체에서 안식을 구하고 여전히 꿈의 포로로 살아가지만(?) 현실의 빈곤과 고독은 아무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차라리 “젊은이를 단념시켜라”는 저자의 주장이 서늘하다.
중부 유럽 경제사
양동휴·김영완 지음/ 미지북스/ 380쪽/ 1만6000원
오늘날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가 자리한 중부 유럽은 종교와 문화적 전통, 신성로마제국과 헝가리왕국, 폴란드-리투아니아를 포함하는 시공간적 경계, 다국적 제국과 다인종, 다문화의 경험 측면에서 서유럽, 동유럽, 남동 유럽과 구별된다. 경제사 권위자와 독일사 전공자가 함께 쓴 이 책은 서유럽과 다른 ‘또 하나의 유럽’으로서 중부 유럽이 어떻게 태어나고 발전해왔는지를 산업화와 전쟁, 대립과 수렴의 1000년 역사를 통해 설명한다.
이슬람 이야기
캐롤 힐렌브렌드 지음/ 공지민 옮김/ 시그마북스/ 288쪽/ 2만5000원
영국의 대표적 이슬람사 전문가가 쓴 이슬람 입문서. 무함마드, 쿠란, 신앙, 율법, 다양성, 사상, 수피즘, 지하드, 여성, 이슬람의 미래 등 11장으로 나누어 역사적 맥락에서 이슬람 신앙과 관습을 소개했다. 즉 예언자 무함마드의 생애를 조명하는 한편, 18세기 이후 후계자들에 의해 이슬람교의 부흥과 개혁이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해 이슬람의 역사와 현대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은행업의 윤리, 정치적 위기 같은 문제에 이슬람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도 살펴본다.
천자를 읽어 천하를 알다 : 讀千字 知天下
진세정 지음/ 사계절/ 288쪽/ 1만6000원
경천애인(敬天愛人)에서 신종여시(愼終如始)까지 1000자의 한자로 된 사자성어 250구를 자연(自然), 정사(政事), 수학(修學), 충효(忠孝), 수덕(修德), 오륜(五倫), 인의(仁義), 군웅(群雄), 군자(君子), 한거(閑居), 잡사(雜事), 경계(警戒) 등 12장으로 나누고 뜻풀이와 해설, 출전, 같은 말과 반대말, 비슷한 말, 영어 명언까지 수록한 사전적 구성이 특징이다. 부록으로 ‘천자문 필사노트’가 포함돼 있다.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모든 것 1
김영수 지음/ 창해/ 416쪽/ 1만8000원
저자가 2006년 출간한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를 전면 개정해 세 권짜리로 다시 펴냈다. 1권 ‘사마천, 삶이 역사가 되다’에서는 사마천의 생애에 초점을 맞추고, 2권 ‘사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사기’의 주요 사상을 철학, 역사, 정치, 경제, 학술로 나누어 살펴봤다. 3권 ‘한성, 숨겨진 수수께끼를 풀다’는 저자가 네 차례에 걸쳐 사마천의 고향 한청(한성)을 탐방한 기록이다. 이 책을 원작으로 한중 합작 뮤지컬 ‘사마천’을 제작 중이다.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
오카다 다카시 지음/ 김해용 옮김/ 동양북스/ 256쪽/ 1만3000원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사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자꾸 반발심이 들게 만드는 사람,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사람, 별 이유 없이 그냥 싫은 사람. 마음에서 한번 거부 반응이 일어나면 그 마음을 되돌리기 어렵다. 문제는 상대가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 철학을 전공하고 다시 의대에 들어가 정신과의사가 된 저자가 27년간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인간 알레르기’라는 현상의 본질을 파헤쳤다.
홀(The Hole)
편혜영 지음/ 문학과지성사/ 209쪽/ 1만3000원
삶의 폭력성을 예리하게 포착해온 작가의 네 번째 장편소설.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눈을 깜빡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대학교수 오기. 교통사고는 느닷없는 일이었지만 오기의 삶에 구멍이 나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부터였다. 사고 이후 말을 할 수 없게 된 오기, 이미 죽어 말이 없는 아내,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으로 남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장모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사고 전후 오기의 삶을 교차해 보여준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