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 정의당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없다. 정당으로서 존재감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왜일까. ‘존재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이유.’ 아주 단선적 이유만 찾아보자면 대략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먼저 언론에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물론 언론은 항변할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은 게 아니라 ‘독자’들이 관심이 없기 때문에 기사로 다루지 못하는 것”이라고.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일단 여기서는 넘어가기로 하자.
둘째, 언론에서 다루지 않으니 국민은 더욱 알 길이 없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든 일반 국민은 정치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관심 있다 하더라도 결국 대부분 의지하는 대상은 TV와 라디오, 신문, 잡지 같은 매체들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뉴스 중심에서 빠진 정의당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거나 무관심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구도, 이슈, 인물
정의당에 대해 알고, 또 그 지향점과 정책 등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표’를 주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바로 세 번째 이유다. 간단히 말하면 사표 방지 심리로 상당수 유권자가 ‘될 만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경향이 있다. 거대한 양당체제로 몇십 년을 버텨온 한국 정치 지형에서 제3당으로 살아가기는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이 와중에 20대 총선을 앞두고 또 다른 복병도 생겼다. 바로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과 결별한 국민의당의 출현이다. 제3당으로 존재하기도 힘든 지형에서 이젠 제4당으로 밀려나게 됐으니, 정의당은 더욱 답답한 처지가 됐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중요한 건 유리한 프레임(구도)을 잡고 이슈를 선점하는 일이다. 또 하나, 바로 인물이다. 양당체제 기득권 속에서 제3당, 제4당이 프레임을 잡고 끌고 가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1월 말 당시 더민주당 문재인 대표와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범야권 전략협의체’ 구성에 합의한 바 있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독주를 막고 야권결집을 도모하자는 취지였다. 연장선장에서 심 대표는 3월 9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주 안에 야 3당이 담대하고 책임 있는 야권연대 논의에 들어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더민주당 김종인 대표가 3월 2일 ‘투척’한 야권통합(당 대 당 통합) 제안에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거절)와 천정배 공동대표-김한길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검토)이 이견을 노출하는 등 자중지란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던진 제안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심 대표의 제안을 당일, 단박에 거부했다. “지금 연대하자는 건 결국 선거구를 나눠 달라는 말밖에 더 되느냐. (중략) 19대 총선 때도 그러려다 여론조사 파문이 났다. 이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끼어들 틈조차 주지 않은 것이다.
김 대표의 발언을 찬찬히 뜯어보면 통합진보당의 그림자가 여전히 어른거리는 정의당과 거리를 두려는 흔적이 보인다. 겉으로는 ‘여론조사 파문’을 언급했지만 괄호 열고 ‘이석기’라는 단어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이미 갈라선 지 오래지만 한때 통합진보당과 한솥밥을 먹은 정의당과 손을 잡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판단이 깔렸을 것이다.
또 하나는 이슈 선점이다. 정책이 ‘섹시’해야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하지만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 진보정당들의 기본 메뉴, 알찬 메뉴(정책)는 이미 보수당인 새누리당까지 레시피를 카피해서 쓰고 있는 실정이다. 19대 총선, 18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진보정당들의 이런 메뉴들은 무한 복제된 바 있다. 정의당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정책들이 상당 부분 보편화됐다는 의미다. 정의당으로선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사람은 옳은 사람 말 듣지 않아. 좋은 사람 말 듣지.”웹툰 ‘송곳’에 나오는 말이다. 상품이 아무리 좋아도 팔리지 않을 때 기업들은 대개 마케팅과 홍보에 열을 올린다. 정당도 사람들을 향해 정책과 비전을 파는 곳이라면 일종의 호객 행위를 해야 한다. 인물이 중요한 이유다. 정의당엔 옳은 사람도 많고 좋은 사람도 많다. 그럼에도 정의당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심상정, 노회찬’ 2명뿐이다. 아직도!
새 이름, 새 정책, 새 비전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인물도 중요하다. 새 피의 수혈이 필요한 이유다. 경험 많은 정치인들이 뒤에서 버텨주는 동시에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고 키워야 한다. 그럼에도 진보정당은 여전히 젊다. 새로운 실험을 계속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투표시스템(K-voting)을 도입했다. 아울러 현장 투표, 모바일 투표 등의 방식으로 3월 6일부터 11일까지 당내 경선을 실시했다. 밀실공천, 전략공천, 찍어내기 공천 말고 100% 당원 투표로 정하겠다는 취지다.
공약도 신선하다. 3월 9일 발표한 ‘20대 총선 노동공약’에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편 양대 지침(일명 ‘해고 쉽게 하는 법’ 등) 폐기, 최저임금 1만 원으로 인상, 5시 칼퇴근법 도입, 파업 손배·가압류 금지 등이 들어 있다. 김윤기 후보(대전 서구)가 자신이 국회의원에 당선할 경우 추진할 1호 법안으로 제시한 ‘국회의원 세비의 최저임금 연동제 도입’ 등에도 박수를 쳐주고 싶다. 내가 배고파봐야, 남 배고픈 것도 안다. 실험과 시도는 계속돼야 한다. 낮은 지지율의 진보당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정치, 참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당은…
정의당은 어떤 곳인가. 현재 정의당 간판은 대표 심상정이다. 심 대표의 행보를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지난 20여 년간 진보정당의 흐름을 대략 그려볼 수 있다. 심 대표는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주역 가운데 한 명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이른바 ‘진보정당’으로서 2004년 17대 국회에 소속 의원 10명을 입성시키는 돌풍의 주역이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종북(從北) 논란 속에서 진보신당으로 갈라져 나왔다. 이후 여러 부침을 겪던 진보세력은 2011년 통합진보당이란 당명으로 다시 합친다. 하지만 19대 총선(2012) 무렵 비례대표 부정경선을 둘러싼 폭력 사태를 거치며 다시 갈라섰다. 당시 심상정 의원은 탈당해 진보정의당(현 정의당)을 만들었고, 심 대표가 떠난 통합진보당은 2014년 12월 헌정 사상 초유의 정당해산 결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