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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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전방위 대북제재에 우왕좌왕 평양

2월 말 韓·美·日 제품 가공 중단 지시…안보리 결의 통과하자 번복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6-03-11 17: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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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등 올해 들어 계속된 북한의 도발에 국제사회가 어느 때보다 강력한 대북제재를 추진하자, 평양이 우왕좌왕 행보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동안 자유롭게 대북사업을 해오던 기업들 역시 이번 제재가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임에 따라 사업 철수까지 고려하며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북한 나선(나진·선봉)경제특구에서 의류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중국인 A씨는 최근 긴박하게 돌아가는 북한 내부 동향을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전했다. A씨에 따르면 평양은 2월 24일 북한 내부와 북·중 접경지역에서 대외무역을 하는 사업가들에게 긴급 지시를 내렸다. “앞으로 남쪽 물건은 무엇이든 사용해선 안 되며 남쪽과 관계된 사업은 일절 금지”라는 것이었다(‘주간동아’ 1027호 ‘평양, 대남 간접거래 전면 중단’ 기사 참조). 이때는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조치 등 한미일 3국이 독자적으로 대북제재를 추진하는 가운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고강도 대북제재 초안을 놓고 미국과 중국 정부가 긴밀하게 논의를 이어가던 시기. 이러한 제재 강화 움직임에 대해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우리가 남쪽 물건 없이 못 사나. 남쪽 물건 당장 걷어치우고 우리끼리 해도 아무런 문제없다는 걸 당당하게 보여줘라’는 식의 분노를 터뜨린 결과로 보인다.



    “현금 지급해야 물건 가져간다”

    평양의 갑작스러운 지시로 대외무역에 종사하던 북측 관계자들은 물론, 북한과 사업을 하던 중국 기업, 그 배후에서 비즈니스를 이어온 한국 기업 모두 한바탕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한국으로 물건을 납품하던 대북사업가들 사이에서 “왜 하필 한국 제품만 문제 삼나. 같이 대북제재에 참가한 미국과 일본의 제품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인가”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졌다는 것. 마치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2월 26일 평양은 남한 제품에 이어 미국과 일본 제품에 대해서도 가공을 금지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남한 제품 가공 금지 조치 후 이틀 만이다.
    이 지시에는 한미일 3국으로 보낼 제품 가운데 이미 생산 중인 물건의 경우 작업 비용을 전액 현금으로 지불해야만 가져갈 수 있다는 통보도 덧붙었다. 그동안은 완성품을 가져간 뒤 20~30일 후 대금을 지불하는 게 관행이었다. 당국의 이런 지시 때문에 많은 기업이 북한 현지 공장에서 물건을 빼내올 현금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평양은 또 주말을 포함해 사흘 뒤인 2월 29일 월요일, 한국산 상표가 붙은 제품은 모조리 몰수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이 때문에 나선경제특구 등에서 한국 상표를 붙인 제품을 생산해온 공장들이 상표를 떼어내느라 한바탕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는 설명이다.
    ‘한미일 3국 제품 가공 중단’ 지시는 북한 전역에서 활동하는 임가공업체 종사자들에게는 엄청나게 큰 타격이다. 이 지시가 고착화할 경우 일자리를 잃어 생활이 막막해지기 때문. 특히 평양이나 나선경제특구 같은 대도시는 ‘돈 버는 게 최고’라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널리 확산된 상태여서 지역 공장의 반발이 훨씬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돈맛’을 안 사업가와 근로자들이 곳곳에서 하소연과 항의를 토해내자 평양 당국도 뒤늦게 현실을 파악하고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는 것이다.
    A씨는 3월 4일 나선경제특구에 있는 자신의 공장으로 향했다. 생산한 완성품을 서둘러 찾아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 대금을 지불하려 하자 북측 파트너는 “너무 서두를 필요 없다. 예전처럼 월말에 계산하라”며 황당한 반응을 보였다. “제품을 찾으려면 현금을 갖고 오라고 해서 급히 돈을 마련했는데, 이제 와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북측 파트너는 “3월 3일 당에서 새로운 지시가 떨어졌다. 그냥 예전대로 일하라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날 나온 평양의 지시는 ‘모든 인민은 생활 변동 없이 일에 더욱더 집중하라. 외국의 조작에 굴복하지 않고 조선인민의 강인함을 보여줘라’는 취지였다는 게 A씨의 증언. 그 대신 외국 제품을 만드는 근로자의 정신교육을 강화했다. 평소 하루 한 차례 실시하던 정신교육을 두세 차례로 늘린 게 대표적이다. 최근 북한이 처한 상황은 외세가 부당하게 위협하기 때문이라고 규정한 뒤, 난국을 타개하려면 더욱 열심히 일해 돈은 벌되 정신만큼은 자본주의 국가에 물들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정신교육을 강화했다는 이야기다.


    고객 확보에 결사적인 기업들

    평양이 ‘원래대로 회귀’를 지시한 3월 3일이라는 시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시각으로 이날 새벽 0시 무렵 유엔의 고강도 대북제재가 안보리 전체회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숨통을 조여오는 걸 실감한 북한이 스스로 외국 제품 가공까지 접을 경우 내부 경제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현실을 뒤늦게 직시하고 지시를 번복했을 공산이 크다.
    평양이 지시를 번복한 후 북측 관계자들은 고객 확보에 더욱 결사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싸움은 국가가 하는 것이고, 사업은 사업가가 하는 것이다. 조선에서의 생산은 우리가 100% 책임진다”는 말을 거듭 강조하면서 중국 등 외국 사업 파트너들을 달래고 있다. 하지만 평양 당국이 일주일 사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자 외국 파트너들은 말 그대로 천국과 지옥을 오갔고, 따라서 북측 관계자들의 약속 역시 설득력을 잃어가는 상황이라 풀이된다.
    실제로 북한 근로자가 만드는 제품에 대한 주문은 하루가 다르게 철회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사업가는 이를 썰물이 빠지는 바닷가에 비유하면서 북한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한 중국인 경영자가 “이러다간 곧 망한다”며 울음을 터뜨렸다고 전했다. 그동안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마음껏 주문하던 다양한 국적의 바이어들 역시 행여 대북제재 불똥이 튀지 않을까 우려하며 여차하면 북한과의 거래를 완전히 끊겠다는 각오로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는 설명도 이어진다.
    2016년의 첫 석 달, 한반도는 어느 때보다 숨 가쁘다. 김정은 정권이 ‘핵과 경제의 병진노선’을 내건 이래 ‘돈맛’을 보기 시작한 북한 내부 사업가들 역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상황. 과거처럼 ‘우리끼리 잘살자’식의 쇄국정책이 주효하기 어려워 보이는 배경이다. 2월 하순부터 3월 초순 사이 김정은 정권이 보여준 우왕좌왕 행보는 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단초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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