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은 2월 12일부터 열흘간 대구 북구 산격동에 있던 도청사를 경북 안동·예천의 신청사로 이전했다. 1966년 대구 중구 포정동에서 산격동으로 청사를 이사한 지 꼭 50년 만의 이전이다. 경북도청 측은 2월 이주 결정이 도청 직원들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한 결과라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이사를 먼저 하고 집 안 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손님을 초청해 집들이를 하는 것처럼, 경북도청은 당초 2월 신청사 이전, 5월 개청식을 예정했다. 4월 13일 총선 전에는 정치권이 선거 준비로 어수선할 수 있다는 점까지 고려해 총선 이후로 개청식 일정을 늦추려 한 것.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경북도 신청사 이전 직후인 3월 10일로 개청식 날짜가 잡혔다. 경북도 내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청사 이전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개청식 준비까지 하게 된 경북도 관계자들은 지난 한 달 동안 정말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고 귀띔했다.
4시간 30분 vs 1시간
광역단체의 신청사 개청식은 국가적으로도 매우 뜻깊은 행사 가운데 하나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축하하는 게 관례다. 2013년 4월 4일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40일 만에 충남도 신청사 개청식에 직접 참석한 바 있다. 따라서 경북도 신청사 개청식에 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3월 10일 오후 3시 경북도 신청사 개청식에 앞서 박 대통령은 대구를 먼저 찾았다. 박 대통령의 대구 일정은 2월 말까지만 해도 오전에 대구육상진흥센터에서 열리는 스포츠 관련 행사에 참석한 뒤 오후에 경북도 개청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3월 들어 대통령의 대구 일정이 하나 둘씩 추가됐다.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하고, 대구전시컨벤션센터(엑스포)에서 열리는 대구 국제섬유박람회 전시장을 둘러보는 일정 등이 추가됐다.
경북도 개청식을 계기로 대통령의 TK(대구·경북) 방문 일정이 준비됐는데,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의 대구 일정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로 대폭 늘었고, 그 여파로 경북도 신청사 개청식 시간은 당초 오후 2시에서 오후 3시로 한 시간 늦춰졌다.
야권의 한 전략통 인사는 “3월 10일 대통령의 대구 일정은 주객이 전도된 측면이 있다”며 “본질은 대통령이 경북도청 이전 기념 개청식에 참석하는 것인데, 경북 안동에는 1시간 머물고, 그에 앞서 대구에 4시간 30분간 머무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대구 정치권에서는 “새누리당 공천을 앞두고 대통령이 대구에 내려오는 것 자체가 판을 흔드는 효과가 있다”며 민심의 기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대구 정가의 한 인사는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과도 같은 대구에서 지역민들이 박 대통령에게 느끼는 정서는 남다르다”며 “총선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 공천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 대통령이 대구에 내려오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진짜 친박근혜(진박)계를 자처하며 대구지역 총선에 출마한 이른바 진박 인사들이 지금까지 대부분 고전하고 있는데, 이번 박 대통령의 대구 행차를 계기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려는 것”이라며 “앞으로 새누리당의 TK, 특히 대구 총선 여론은 3월 10일 이전과 이후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김부겸 당선 가능성 유효할까
박 대통령이 3월 10일 4시간 30분 동안 대구에 머물며 지나온 지역들을 살펴보면 박 대통령의 대구 행차에 담긴 정치적 함의를 엿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이 가장 먼저 찾은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는 대구 동구갑에 위치하고, 국제섬유박람회가 열린 대구엑스포는 대구 북구갑 선거구에 자리한다. 박 대통령이 스포츠 문화, 산업 비전 보고대회 참석 차 방문한 대구육상진흥센터는 대구 수성갑 선거구에 소재하고 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대구 일정을 위해 방문한 대구국제공항, 이른바 K2비행장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대구 동구을 선거구였다. 그러나 선거구 재획정에 따라 동구갑으로 편입됐다.3월 10일 대구 방문 당시 박 대통령의 발걸음이 머문 지역은 대부분 새누리당 내에서 진박 후보와 비박(비박근혜) 현역의원 간 치열한 공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다. 류성걸 의원 지역구인 동구갑에는 진박 후보를 자처하는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권은희 의원 지역구인 북구갑에서는 대구 진박 6인방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이 새누리당 공천을 위해 뛰고 있다. 선거구 재획정으로 박 대통령의 발길이 간발의 차로 비켜간 동구을은 유승민 의원이 현역의원으로 있는 곳으로, 동구청장을 지낸 이재만 전 청장이 진박 후보를 자처하며 새누리당 공천 경쟁에 뛰어든 상태다. 다만 수성갑의 경우 새누리당 김문수 예비후보와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 김부겸 예비후보가 치열한 여야 맞대결 구도로 경합을 벌이고 있다.
박 대통령의 대구행은 4월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지역 정가에서는 크게 두 가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본다. 첫째는 여권 지지층 결집 효과다. 대구는 자타가 공인하는 여권의 텃밭이자 아성. 그러나 20대 총선을 앞두고 수성갑 여론에는 변화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더민주당 김부겸 예비후보가 총선 관련 여론조사에서 한동안 앞서가며 ‘당선 가능성’을 보여준 것. 김 후보는 2012년 4월 19대 총선 당시 수성갑에 출마해 40%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줬고, 2014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이번 20대 총선 도전은 그의 세 번째 도전인 셈.
강고한 여당 강세지역에서 연거푸 야당 후보로 도전한 그에게 지역 내에서는 적잖은 동정 여론이 형성돼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총선 관련 대구 수성갑 여론조사에서 김 후보가 줄곧 우세한 결과를 기록한 것이 그 방증이다. 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그러나 총선을 한 달여 앞두고 박 대통령이 몸소 대구를 방문하면서 여론 기류가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한 지역 언론인은 “대통령이 대구를 방문한 3월 10일 이후 실시한 총선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 총선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며 “연말연초에 실시한 여론조사는 총선에 대한 지역민의 대략적인 여론을 살펴보는 ‘맛보기’ 성격이 강했다면, 총선을 한 달도 남겨두지 않고 공천 막바지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뚜렷한 반전 요인이 없는 한 총선 때까지 지속될 개연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박 대통령의 대구 행차가 갖는 첫 번째 의미가 여권 지지층 결집 효과라면, 두 번째로는 진박 후보 띄우기로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 특히 박 대통령이 머문 동구갑과 북구갑 등의 지역 여론이 어떻게 변할지 지역 정가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3월 10일 박 대통령의 대구 방문 때 청와대는 현역의원은 물론, 이른바 진박 총선 예비후보조차 일절 대통령의 행사에 초청하지 않았다. 공천과 총선을 앞두고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대구 정가에서는 박 대통령 행차 이후 여론이 크게 출렁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선거의 여왕’의 3월 10일 행차가 4월 13일 총선 때 대구 표심에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킬지 주목된다.
여론조사 1등은 탈락? 새누리의 이상한 경북 구미갑 컷오프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는 박 대통령 재임 시절 섬유산업의 메카로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적인 도시로 여겨졌다. 그런 구미가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공천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3월 4일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는 첫 현역의원 컷오프 탈락자로 경북 구미을의 김태환 의원을 발표했다. 2004년 17대 국회에 처음 입성한 김 의원은 이후 18대, 19대 국회까지 내리 3선을 기록한 중진의원으로, 원조 친박근혜(친박)계로 통했다. 이 때문에 친이명박(친이)계가 주도한 18대 총선 공천 당시 김 의원은 친박 인사로 몰려 한나라당 공천에서 배재돼 낙천했지만, 친박연대로 무소속으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이후 한나라당에 입당했고, 2012년 19대 총선 때는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3선에 성공했다.
새누리당 주변에서는 김 의원의 낙천 이유로 ‘고령’ 등 여러 이유를 꼽는다. 김 의원은 허주 김윤환 전 한나라당 대표와 형제지간으로 알려져 있다. 새누리당에서 컷오프된 김 의원은 3월 9일 새누리당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두 번째 무소속 출마인 셈. 낙천 후 무소속으로 당선했던 18대 총선의 영광을 이번 20대 총선에서도 재현할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손’ 개입 논란
한편 새누리당 공관위가 경선지역으로 발표한 구미갑의 경우 ‘보이지 않는 손’ 논란이 거세다. 총선 관련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던 후보를 컷오프하고, 2위와 3위 후보를 경선에 붙였기 때문. 2월 11일 ABC미디어리서치가 실시한 구미갑 총선 여론조사(유효 표본 수 1126명,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92%p)에서는 예비후보 구자근 27.94%, 백성태 18.39%, 백승주 15.18% 순으로 나타났다. 2월 3일과 4일 에이스리서치가 실시한 조사(표본 수 701명,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7%p)에서도 구자근 27.3%, 백성태 20.5%, 백승주 20.5% 순이었다.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이 때문에 새누리당 공관위가 공천 보름 전까지 실시한 구미갑 총선 관련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던 후보를 뚜렷한 이유 없이 컷오프한 것에 대한 반발 여론이 거세다. 새누리당 한 비박(비박근혜)계 인사는 “컷오프가 언제부터 1위 후보를 탈락시키는 것으로 바뀌었느냐”고 반문했다. 구미 정가의 한 관계자는 “새누리당 공관위가 도의원 출신으로 구미고를 졸업해 지역 내 입지가 탄탄한 구 후보를 컷오프한 것은 특정인을 밀어주려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구미 정가에는 ‘백승주 후보가 박근혜 정부에서 국방부 차관을 지낸 진박(진짜 친박근혜) 후보일 뿐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가 쪽 인척관계라는 특수성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외갓집, 즉 박 전 대통령 어머니의 성씨가 백씨다. 새누리당 구미갑 경선은 요식행위로 그칠까, 아니면 뜻밖의 결과로 구미갑이 20대 총선 공천 최대 이변 지역으로 꼽힐까. 주사위는 던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