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문명이 만나는 매혹의 도시 ‘이스탄불’①

 ‘어디로 여행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말과 정보는 넘치지만, ‘왜 여행을 떠나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여행과 관련한 거의 모든 정보가 ‘어디’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여행의 ‘이유’와 ‘가치’를 깊이 생각해 보는 게 아닐까. 그런 이해가 깊으면 깊을수록 여행했던 순간들이 나의 일상과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는 여행은 익숙한 것을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정이다. 다음 목적지를 결정하거나, 계획대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 머무를 것인지 떠날 것인지, 예측대로 되지 않는 순간마다 내려야 하는 크고 작은 결정이 모두 여행자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다보면 자기 인생을 얼마나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는지 스스로 느끼게 된다. 나의 외면과 내면을 깊이 있게 탐험하면서 일상에서는 꿈꾸지 못했을 변화를 꿈꾸며 ‘새로운 삶을 향한 눈부신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지’ 하는 삶의 의지를 다지게 된다. 여행 전에 들었던 모든 걱정은 여행이 시작되자마자 어느 샌가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단 며칠뿐인 여행의 순간들은 우리 마음과 일상을 마법처럼 바꿔버린다. 이 때문에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 여행을 기대하며 오늘 하루를 버티어내는지도 모른다. 여행을 통해 행복한 ‘변신’을 그려볼 수 있기에 우리는 그토록 여행을 떠나려 하는 것은 아닐까?

유럽과 아시아 문명 공존

골든혼을 사이에 두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자리 잡은 이스탄불. [GettyImages]

오늘 함께 떠나볼 튀르키예 최대의 도시 ‘이스탄불’도 마음의 빗장이 열리는 여행의 순간을 경험하기에 충분한 곳이다. 튀르키예는 지난해 국호를 기존 터키에서 ‘터키인의 땅’을 의미하는 ‘튀르키예(Tu‥rkiye)’로 바꿨다. 튀르크는 ‘용맹한 자’에서 유래됐는데 ‘터키’라는 국명은 영어의 칠면조와 발음이 같은데다가 겁쟁이, 패배자 등을 뜻하는 속어로도 사용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이에 정부는 이전부터 자국을 튀르키예로 불러왔고 터키어로 표기한 정식 국호 역시 튀르키예 공화국임을 근거로 국호 변경을 유엔에 요구했고 유엔은 이를 받아들여 국호 변경을 승인했다. 국호에 담긴 용맹한 이름처럼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이스탄불은 길이 30㎞의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로 나뉜다. 이런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이스탄불은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과 오스만제국에 걸쳐 1600여 년 동안 육상 실크로드의 종착지이자 동서양의 문화와 종교가 만나는 통로의 역할을 해왔다. 또한 새로운 해상 실크로드의 출발지이기도 했던 이스탄불은 지중해를 거쳐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제노바로 가는 연결지로 사통팔달의 요충지였다. 도시가 형성된 그리스 시대에는 ‘비잔티움’으로 불렸고, 서기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동로마제국의 수도로 삼으면서는 도시 이름을 ‘콘스탄티노플’로 바꿨다. 이후 1453년 오스만제국의 이슬람이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이스탄불로 다시 개명했다. 아시아와 유럽을 관통하는 도시였기에 문명 간 대립과 화해의 반복 속에 수천 년 동안 흥망성쇠를 되풀이했다. 이스탄불이 갖고 있는 독특한 정서와 아름다움 속에는 이런 시대적 배경이 있다.

이스탄불은 ‘골든혼(golden horn: 육지를 파고든 만)’을 사이에 두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뉜다. 198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는 며칠을 머물더라도 지겹지 않다. 주요 볼거리들은 구시가지에 집중돼 있으니 여행의 기점을 구도심에 두고 출발하는 게 좋다. 골든혼과 마르마라해, 테오도시우스 성벽에 둘러싸인 구시가지엔 그랜드 바자르와 톱카프 궁전, 아야소피아 대성당, 술탄 아흐메트 사원(블루 모스크) 등 역사적 건축물이 즐비하다. 이곳들만 돌아보아도 세계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이스탄불의 부귀영화를 충분히 느끼고도 남는다. 구도심 중심에 자리한 이스탄불 전통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는 1461년 개장한 현존하는 가장 크고 오래된 시장이다. 현지인들은 ‘덮여 있는 시장’이란 뜻을 가진 ‘카파르 차르쉬’(Kapali Carsi)라고도 한다. 시장은 중세 이슬람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원래는 의류 시장으로 출발했다. 이후 오스만제국의 번성과 함께 중세 시대에는 동남아시아의 향신료, 페르시아의 양탄자, 유럽 장신구와 그릇 등 동서양 문물이 유통되며 세계 최고(最古)·최대를 자처하는 국제시장으로 성장했다.

현지 일상 엿볼 수 있는 그랜드 바자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장 그랜드 바자르. [GettyImages]

그랜드 바자르는 명칭에 걸맞게 규모가 엄청나다. 크고 작은 출입구가 무려 20여 곳에 달하며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60여 개 골목을 따라 약 4500개의 상점이 늘어서 있다. 출구 번호를 잘 기억해두지 않으면 미로 같은 시장 안을 헤매다 길을 잃기 십상이다. 또한 어느 출입구를 이용하든 넓은 통로를 중심으로 작은 골목들이 퍼져 있는 구조이기에 골목에 들어설 때는 반드시 돌아 나오는 길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어느 입구로 나오느냐에 따라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시장에는 세공품, 도자기, 수공예품, 보석류, 카펫 등을 비롯해 튀르키예 전통 특산품과 기념품까지 모든 것이 풍부해 보고 즐길거리가 넘쳐난다. 같은 제품을 취급하는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으니 흥정은 필수다. 주인과 옥신각신 가격을 깎는 재미가 쏠쏠하니 반드시 도전해보자. 쇼핑에 관심이 없다면 그랜드 바자르 주변 식당과 아기자기한 카페에서 여유를 누리는 것도 좋다. 화덕에서 구운 각종 케밥과 길거리 간식인 참깨빵 ‘시미트(Simit)’, 떡, 젤리, 꿀, 견과류 등으로 만들어 쫄깃하고 달콤한 전통 디저트 ‘로쿰(Lokum)’, 체즈베(Cezve)라는 구리로 만든 주전자에 곱게 간 원두와 설탕을 함께 넣어 끓여낸 튀르키예식 커피나 현지인들이 물처럼 마시는 홍차 차이까지 맛볼 수 있는 메뉴도 다채롭다. 그랜드 바자르 주변을 한참 돌다 보면 ‘이집션 바자르(Egyptian Bazaar)’에 도착한다. 비잔틴제국 시대에 지어진 유서 깊은 시장으로 과거 이집트와 동양의 다양한 향신료를 팔았다 하여 이집션 바자르라 이름 붙었다. 지금도 ‘스파이스 바자르’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100여 개의 향신료 상가가 건재하며 건어물과 치즈 등 식료품, 생필품을 취급하는 재래시장이기도 하여 현지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고난의 역사 간직한 아야소피아 대성당

비잔틴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아야소피아 대성당. [GettyImages]

구도심 탐방은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걸어 다니는 것을 추천한다. 다만 옛길들이 좁고 울퉁불퉁하거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기도 하니 신발은 가급적 가장 편한 것을 선택해보자. 그랜드 바자르 동쪽에 위치한 ‘아야소피아 대성당’(Aya Sofya)은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힐 정도로 독특한 구조와 건축양식을 자랑한다. ‘성스러운 지혜’를 뜻하는 아야소피아 대성당은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세계 최대(最大) 규모를 자랑했다. 중앙 돔은 직경이 31.87m로 로마의 건축물인 판테온 다음가는 크기였으며 피렌체 두오모 이전까지 세계 최대의 돔이기도 했다. 이처럼 비잔틴 건축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아야소피아 대성당은 콘스탄티누스 2세가 로마제국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염원을 담아 지은 건물이다. 수천 명이 동시에 예배드리기 좋도록 거대한 돔 지붕을 만들고 아름다운 모자이크 벽화로 벽을 메웠다. 아르테미스, 아폴로 신전에서 가져온 기둥과 석재를 동원해 골격을 세워 5년 11개월 만에 완성했다. 이후 콘스탄티노블(현재 이스탄불)을 점령한 오스만제국 황제 메흐메트 2세는 아야소피아 대성당을 허무는 대신 이곳을 이슬람 사원으로 활용한다.



아야소피아 성당은 916년간 동로마제국의 교회, 481년간 오스만제국의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된다. 이후 ‘터키 건국의 아버지’ 케말 파샤(아타튀르크)에 의해 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최근 독실한 수니파 신자인 에르도안 대통령에 의해 이슬람 사원으로 다시 바뀌게 되었다. 아야소피아 대성당 고난의 시대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셈이다. 아야소피아 대성당을 마주 보고 서 있는 술탄 아흐메트 사원은 미나렛(첨탑)이 6개인 이슬람 최대 사원이다. 오스만제국의 술탄 아흐메트 1세의 지시로 1609년부터 1616년까지 건축되었는데 2만여 장에 이르는 푸른 타일로 사원 내부의 벽과 기둥을 장식해 일명 ‘블루 모스크’라고 불린다.

이어지는 ‘동서양의 문명이 만나는 매혹의 도시, 이스탄불’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술탄 아흐메트 사원’과 비잔틴제국 시절 전차 경주장이 있었던 ‘히포드럼 광장’, 오스만제국 술탄들의 왕궁이었던 ‘톱카프 궁전’과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갈라타 다리’를 건너 금융과 생활의 중심지 이스탄불의 신시가지로 떠나볼 예정이다. 유럽과 아시아 문화를 동시에 간직한 2500년 역사의 고도(古都) 이스탄불을 만나보자.

※주간동아 1426호에서 ‘동서양의 문명이 만나는 매혹의 도시, 이스탄불’ 두 번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_{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