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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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 '10억달러' 돈줄 차단 나선 빈 살만

이스라엘과 수교 협상 추진하던 사우디 큰 외교적 피해… 미국과 확전 방지 노력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3-11-02 13: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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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자금조달표적센터(Terrorist Financing Targeting Center·TFTC)는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등 중동 지역의 테러단체들에 제공되는 테러 자금을 추적하기 위해 2017년 창설된 기구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공동 의장국이고,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들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비롯해 카타르·바레인·오만·쿠웨이트 등이 참여하고 있다.

    하마스 비자금 차단 위한 중동 국가 긴급회의

    하마스 대원들이 AK-47 소총을 들고 이스라엘 타도를 외치고 있다. [팔레스타인크로니클]

    하마스 대원들이 AK-47 소총을 들고 이스라엘 타도를 외치고 있다. [팔레스타인크로니클]

    이들 7개국은 10월 24일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서 긴급 회동했다. 당초 이 회의는 11월에 열릴 예정이었지만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으로 예정보다 앞당겨졌다. 이 회의에서 TFTC 참여국들은 최대 10억 달러(약 1조3500억 원)에 달하는 하마스의 비자금을 차단하기 위해 적극 나서기로 했다. 브라이언 넬슨 미국 재무부 테러·금융 정보 담당 차관은 “갑작스러운 회의 소집은 하마스 같은 테러 조직을 위한 모금 활동을 차단하려는 것”이라며 “국제 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테러를 위해 전용해 온 하마스에 맞서 행동하지 않는다면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마스는 그간 다양한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해왔다. 특히 가자지구에서 합법적인 민간사업이나 구호활동을 지원하는 국제 자선단체들의 자금을 빼돌려 이스라엘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 등을 구입하는 데 사용했다.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 등으로 부를 축적해온 GCC 회원국들은 이스라엘의 봉쇄와 제재로 어려움을 겪어온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위해 상당한 자금을 기부해왔지만, 하마스가 이들의 선의를 악용해 군자금으로 전용한 것에 상당히 분노했다. 이들은 미국이 추진하는 하마스의 돈줄 끊기에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

    GCC의 수장이자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는 하마스가 같은 수니파이면서도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과 밀착 관계를 맺어온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보여 왔다. 하마스는 이집트의 극단적인 이슬람주의 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의 분파로서, 이란처럼 이슬람 혁명을 일으켜 왕정 국가를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팔레스타인 이슬람주의 조직이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2017년 무슬림형제단과 그 분파인 하마스에 대한 지원을 끊으라는 요구를 거부한 카타르와 단교하기도 했다. 카타르는 무슬림형제단과 하마스 고위 간부들의 망명을 허용해왔다. 지금은 카타르와 복교했지만 사우디는 하마스 지도부가 카타르에서 활동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왔다.

    사우디는 그동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운영하는 파타당과 하마스를 중재하는 노력을 해왔지만 번번이 하마스의 약속 파기에 배신을 당했다. 요르단 강 서안을 통치하고 있는 파타당과 가자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하마스는 ‘원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앙숙 관계다. 파타당은 이스라엘과 공존을 주장해온 팔레스타인 온건파다.



    어려움 직면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프로젝트에서 터파기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NEOM CITY]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프로젝트에서 터파기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NEOM CITY]

    하마스와 악연이 있는 사우디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상당히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다. 하마스가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 협상에 재를 뿌리면서 사우디는 외교적으로 가장 피해를 입은 국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전쟁을 벌이자 수교 협상을 중단했다. 이스라엘과 수교를 통해 이란을 견제하고 중동 지역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려 했는데 하마스가 제동을 건 셈이다.

    이 때문인지 사우디 왕실의 주요 인사가 하마스를 이례적으로 비판했다. 투르키 알 파이살 사우디 왕자는 10월 17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라이스대학에서 연설을 통해 하마스에 대해 “연령, 성별을 가리지 않고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며 “이는 민간인을 해치지 말라는 이슬람 명령에 위반된다”고 비난했다. 투르키 왕자는 1979년부터 2001년까지 사우디 정보기관 알 무카바라트 알 암마에서 국장을 역임한 존경받는 원로 정치인이자 전직 외교관이다.

    영국 BBC 방송은 투르키 왕자의 발언에 대해 “사우디 왕실 고위 인사로서는 이례적으로 솔직했다”며 “이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 대한 사우디 지도부의 생각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BBC는 이 연설 내용과 관련해 사우디 왕실의 사전 확인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방송은 사우디 왕실과 이집트·요르단 등 주요 중동 국가들의 지도부는 하마스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우디의 실질적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그동안 탈석유 경제 정책과 최첨단 도시인 네옴시티 건설 등 ‘비전 2030’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해왔다. 빈 살만 왕세자가 비전 2030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면 무엇보다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등을 통해 중동 지역에서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레인, 수단, 모로코 등은 이미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했다. 사우디까지 이스라엘과 수교할 경우 중동 지역에선 평화체제가 구축될 수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야심찬 계획인 네옴시티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이집트·요르단에 둘러싸인 아카바 만에 가깝다. 네옴시티의 고지대에서 2029년 열리는 동계아시안게임을 위해서도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와 이집트 사이 티란 해협을 연결하는 티란 대교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티란 대교를 통해 북아프리카의 순례자들과 관광객들의 접근을 쉽게 하려는 의도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협력이 필요하다. 티란 해협은 이스라엘 화물선과 군함이 아카바 만의 항구도시 에일라트에서 홍해로 나가는 중요한 수역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무함마드 왕세자의 비전 2030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보여 왔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의 수교가 필요하지만,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속도 조절을 할 수밖에 없다. 빈 살만 왕세자가 10월 10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마흐무드 아바스 수반과의 전화 통화에서 “팔레스타인 국민 편에 서겠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진전될까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중재해온 미국은 양국이 협상을 재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0월 24일 빈 살만 왕세자와 전화 통화를 갖고 양국의 수교 협상 재개를 타진했다. 두 정상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중동 지역으로 확대하지 않도록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기로 일단 합의했다. 특히 두 정상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종료된 이후의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 미국 백악관은 “두 정상은 위기가 가라앉는 즉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했으며, 이는 최근 몇 달 동안 사우디와 미국 간 이미 진행 중인 작업을 기반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추진해왔던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관계 정상화 중재를 계속 하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10월 20일 대선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유 중 하나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를 막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우리는 여전히 양국의 관계 정상화가 큰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를 계속할 의도가 있다”고 강조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10월 30일 자신의 친동생인 칼리드 빈 살만 국방장관을 미국에 파견해 확전 방지와 사우디와 이스라엘 수교 협상 재개 문제를 논의하도록 했다. 칼리드 장관은 2017~2019년 주미대사를 지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칼리드 장관과의 회담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국가 및 조직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의 파트너를 방어하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약속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설리번 보좌관의 발언은 사우디가 이스라엘과의 수교 조건으로 내건 미국과 안보 협정 체결 등에 긍정적 입장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수교하면 바이든 대통령은 내년 대선에서 이를 치적으로 내세울 수 있다. 미국은 이 카드를 이용해 이란이 중동 지역 패권을 차지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게다가 9월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제시한 인도와 중동(UAE·사우디·이스라엘), 유럽을 잇는 철도·해운 수송로 구축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계획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맞서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을 건설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확전을 방지해야 한다. 미국은 물론 사우디와 이스라엘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지상전을 벌이는 만큼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피해도 최소화해야 한다.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발생할 경우 이슬람권 전체가 분노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사우디도 운신의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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