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읽어주는 남자’로 알려진 이코노미스트 김광석 한양대 겸임교수. [박해윤 기자]
국제통화기금(IMF)은 10월 초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에서 세계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3.5%에서 올해 3.0%, 내년 2.9%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그래프 참조).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그보다도 낮다. 올해는 한국 정부·한국은행의 공식 전망치와 같은 1.4%, 내년은 종전보다 0.2%p 낮춘 2.2%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 2%에도 미치지 못한다. 잠재성장률은 노동·자본 등을 최대한 투입해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로, 한 나라 경제의 기초체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제 ‘고물가-고금리-저성장’이 뉴 레짐
하지만 이코노미스트인 김광석 한양대 겸임교수는 “경제가 어렵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대응하면 또 길이 있다”고 말한다. 2024년 세계경제를 ‘스태그플레이션’(경제 불황 속 물가상승)으로 진단한 그는 최근 세계경제 동향, 스태그플레이션 원인, 한국의 대응 전략 등을 담은 책 ‘스태그플레이션 2024년 경제전망’을 펴냈다.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으로서 실물경제를 연구하는 그에게 2024년 펼쳐질 경제 전망, 대응책 등에 관해 물었다.2024년 ‘경제적 겨울’ 스태그플레이션이 온다고 보는 이유는.
“경기침체가 올 때는 여러 모습이 있는데 그중 스태그플레이션은 고물가를 동반한 경기침체다. 당초 빨리 잡힐 것으로 예상되던 인플레이션이 길어지면서 현재 가계는 소비 여력이 없고 기업은 판매 부진에 시달리며 정부는 세수가 덜 걷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고물가가 우회적으로 금리를 상승시켜 가계가 이자 상환 부담을 느끼는 가운데 기업도 신규 투자, 신규 사업 진출에 나서지 못해 실물경제는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최근 IMF가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올해보다 낮게 전망했다는 것은 내년 경제가 더 나쁘다는 의미다. 그런 가운데 고물가 기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목표로 하는 인플레이션 2%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2024년 경제가 고물가를 동반한 경기침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정의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전까지 세계는 저물가-저금리 환경에서 번영의 시기를 보냈다. 이제 그 시기와는 종말을 고해야 하는가.
“시간이 지나면 2020년 팬데믹 경제위기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상처는 나을지 몰라도 상처 흔적은 남는다. 내가 2024년 경제를 상흔점(Point of scarring)이라고 표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대규모 양적완화에 나서자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그 와중에 러-우 전쟁이 발발해 공급망 병목 현상이 심화하면서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치솟아 물가가 41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또 최근에는 중동 불안이라는 변수까지 불거졌는데 중동 불안이 장기화될수록 물가상승 압력이 커져 세계 경기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이제 세계는 이전의 저물가-저금리 시대와 결별하고 ‘고물가-고금리-저성장’이라는 뉴 레짐(regime: 장기적으로 형성된 가치와 규범, 규칙의 총합으로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큰 틀)으로 향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월 23일 국정감사에서 한국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돌고 있다며 경기침체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경기침체와 경제위기는 어떻게 다른가.
“많은 사람이 두 개념을 혼동하는데 경제위기는 올해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보다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소위 역성장하는 것으로 경제에 V자 충격이 오는데, 한국에서는 한국은행 통계가 집계된 1960년대 이래 3번 발생했다. 1980년 오일쇼크 때 -1.6%, 1997년 외환위기 때 -5.1%, 2020년 팬데믹 경제위기 때 -0.7%를 기록한 것이다. 경기침체는 성장 속도가 둔화하는 것으로 L자형으로 지지부지한 경기 흐름을 보인다. 경제위기만큼 충격은 크지 않지만 경기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장기침체로 이어지고 ‘잃어버린 30년’을 보낸 일본처럼 장기 저성장 구간에 들어설 수 있다.”
선진국의 고난, 신흥개도국의 부상
내년 세계경제가 어렵다 해도 모두 같은 상황은 아니라고 말한다.“주요 경제 관련 국제기구가 올해보다 내년 경제 상황이 더 안 좋다고 입을 모으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모든 나라 상황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먼저 미국이나 유럽연합을 포함한 유럽 등 고물가에 대응하고자 고금리를 채택한 나라들은 고물가-고금리의 역습으로 경기가 L자형으로 꺾여 경기침체를 경험하며 경제성장률이 올해보다 떨어질 것이다. 중국도 올해 리오프닝 효과가 크지는 않았어도 일정 부분 작동해 그 나름 반짝 반등이 있었는데, 내년 성장률은 다시 4%대로 하락할 전망이다. 반면 선진국을 제외하고 신흥개도국 경제성장률만 추산하면 올해와 내년 모두 4.0% 수준으로 전체 평균보다 높다. 더욱이 중국을 제외하면 신흥개도국 성장률은 내년에 더 올라간다.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이 대표적이다.”
아무리 금리를 올려도 흔들림 없던 미국에도 경기침체가 오는가.
“미국 경제가 그동안 견조하게 유지된 데는 미국 정부가 2020~2021년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풀었던 재정 지출이 가계의 초과 저축으로 이어진 영향이 크다.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도 초과 저축이 쓰이는 단계라 많은 이가 고용시장에 진입하지 않고 비경제활동인구로 남아 실업률이 낮게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초과 저축도 소진될 수밖에 없어 올해 4분기, 아니면 내년 1분기에는 경기 둔화 흐름이 나타나고 2~3분기에는 경기침체로 진단될 면면들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 같은 경우는 경기침체가 진행돼도 경기둔화와 경기침체의 어중간한 선, 마일드한 경기침체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돼 금리에 영향을 미칠 그런 모습은 아닐 것이다.”
인도가 ‘세계의 공장’ 중국 자리를 대신할 것으로도 전망했는데.
“2018년 미·중 패권전쟁으로 시작된 탈세계화는 2022년 러-우 전쟁으로 본격화해 세계가 둘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기폭제가 된 것이 7월부터 시행된 중국의 반간첩법이다. 실제 몇몇 해외 기업 관계자가 체포 또는 구속되면서 중국과 파트너십을 체결한 기업의 임원들도 중국 방문을 꺼리는 상황이 됐다. 게다가 지금 중국은 인건비나 시장 여건이 좋지 못하다.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을 대신해 새롭게 부상하는 아시아 공급망으로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14개국 알타시아(Altasia)를 주목하는 이유다. 알타시아의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대략 14억 명으로, 중국 9억5000만 명보다 많다. 문제는 전력, 물류 등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인데 각국이 속속 제조업 육성 정책을 추진하며 대체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제2 중국이 어디냐’가 가장 관심을 모으는 상태로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정도가 많은 주목을 받아 해외 직접투자 유입액도 집중되고 있다.”
세계화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였던 한국은 이제 또 다른 도전 앞에 서 있다. 현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스태그플레이션의 한 축인 고물가는 중동 불안이 확대되지 않는 한, 또 다른 외부 충격이 없는 한 점차 2%라는 과녁을 향해 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잠재성장률 2%를 밑도는 경기둔화, 더 나아가 잠재성장률 자체가 떨어지는 것은 굉장히 무서운 일이다. 만약 올해 경제성장률이 1.9%라면 잠재성장률 2%에 비해 낮아 경기침체가 되지만, 만약 잠재성장률 자체가 1.5%로 떨어지면 1.9%는 같은 성장률이어도 경기침체가 아니라고 여겨진다. 이렇게 자꾸 잠재성장률 레벨이 떨어지면 벤처기업은 창업을 안 하고 벤처캐피털도 투자를 안 한다. 또 대기업도 신규 사업 진출을 꺼려 나라 전체의 역동성이 꺼진다. 잠재성장률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는 노동 투입, 자본 투입, 총요소생산성이다. 현재 한국은 인구가 줄고 있어 노동 투입을 늘릴 수 없고 저성장을 받아들이면 자본 투입도 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성장률을 끌어올릴 방법은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는 것뿐인데, 총요소생산성은 같은 생산요소를 갖고도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바로 기술혁신과 성장전략이 필요하다.”
한국이 일본처럼 되지 않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이뤄져야 하나.“우리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정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 정부가 세운 내년도 예산 지출 계획을 보면 교육과 연구개발(R&D)만 줄이고 나머지는 다 늘렸다. 나는 반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도 인구 감소를 막을 수 없다면 이 장기침체 국면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기술력뿐이다. 이제 우리도 중국이 아닌 다른 신흥국들과 파트너십을 적극적으로 체결해야 하는데 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 그들에게 없는 것이 기술력이다. 우리가 반도체, 2차전지, 자동차 등 유망 산업에서 경쟁력을 가져가려면 R&D 투자를 통해 초격차를 벌려야 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인구가 감소하니 인당 교육비를 줄이자고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늘려서 모든 청년을 유망 산업의 인재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일본과 비슷한 여건에 놓인 산업이 많은데 기존 산업에 얽매였던 일본의 선택이 현 일본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모습을 반면교사 삼아 지속적으로 신사업에 진출해 기술력을 쌓아야 한다. 2024년 예산안 통과가 12월 안에 이뤄질 예정이다. 다양한 목소리가 모여 최상의 예산안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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