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 [지호영 기자]
역차별 논란에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으로
도시정비사업 전문가인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정부가 이번 특별법 마련으로 큰 틀에서 전국 주요 노후계획도시 정비사업의 스타트를 잘 끊었다”며 “재건축에 따른 대규모 주민 이주, 도시 기반시설 정비 등 꼼꼼한 후속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 집 마련을 희망하는 수요자와 투자자는 향후 수십 년 동안 부동산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특별법 시행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간동아’는 2월 14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김 소장을 만나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에서 눈여겨볼 점과 향후 시장에 끼칠 영향 등에 대해 자세히 들었다.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에 있는 3000채 규모 아파트 단지 전경. 향후 국토교통부는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노후계획도시를 대규모 블록 단위로 정비할 계획이다. [지호영 기자]
“우선 대규모 정비사업 대상 지역이 명확해진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른바 ‘1기 신도시 특별법’ 구상을 두고 해당 지역에 대한 특혜 논란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 혹은 먼저 지어진 택지지구 주민들은 “왜 우리를 역차별하느냐”고 반발하기도 했다. 서울만 해도 개포·고덕·상계·중계·목동 등 1기 신도시보다 먼저 지어진 택지지구가 많다. 노후계획도시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특혜 논란을 최소화하며 정비사업을 추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도시정비사업은 사업성과 추진 속도가 관건인데.
“그렇다. 각각 이번 특별법의 용적률 상향, 안전진단 규제 완화와 관련 있다. 1기 신도시 용적률은 대체로 200%대다. 한 곳씩 살펴보면 분당 184%, 일산 169%, 평촌 204%, 산본 205%, 중동 226%다. 현행법으로 정비사업을 진행하면 적절한 사업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많았다. 이번 특별법에는 기존 용적률 규제를 종상향 수준으로 완화하고, 용도 지역도 각 지역 상황에 맞게 변경 가능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가령 기존 2종 일반주거지역을 3종 일반주거지역(300%)이나 준주거지역(500%)으로 종상향해 용적률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아직 확정된 계획은 없으나 특별법 발의로 용적률이 최대 500%까지 될 것으로 보인다.”
재건축 안전진단은 이미 상당 부분 완화됐는데.
“지난해 12월 ‘재건축 안전진단 합리화 방안’으로 관련 규제가 상당히 풀리긴 했다. 이른바 ‘2차 안전진단’으로 불리는 적정성 검토가 사실상 면제된 게 뼈대다. 그럼에도 여전히 1차 안전진단은 받아야 한다. 그 기준 자체도 완화되긴 했으나, 1990년대 이후 지은 단지는 탈락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향후 특별법으로 지정한 특별정비구역은 안전진단 기준이 더 완화되거나 면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안전진단 신청에 드는 최소 억 단위 비용을 아끼는 효과도 기대된다.”
“분당·일산의 사업성 낮던 단지들 수혜”
최근 부동산 심리 위축으로 분양시장이 냉각됐다. 자연스레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도 동력을 잃고 있다. 정부의 청사진 발표를 계기로 각종 정비사업에 훈풍이 불 수 있을까. 김 소장은 “당장 시장 반응이 뜨겁진 않지만, 그간 재건축 열망이 높았던 1기 신도시 분당과 일산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맏형이라 할 수 있는 분당은 향후 재건축에 날개를 단 셈”이라고 말했다.분당도 단지마다 사업성이 제각각 아닌가.
“특별법이 통과되면 분당에서도 기존에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던 단지가 특히 혜택을 받을 것이다. 부동산시장 분위기가 좋을 때는 억대 추가 분담금이 나와도 재건축 추진에 동력이 붙는다. 반면 건설경기가 꺾이고 분양시장이 안 좋을 땐 정비사업 회의론이 비등하기 마련이다. 정부가 용적률을 높여 분담금이 낮아지면, 기존에 주목받지 못하던 분당의 일부 아파트 단지도 사업성이 높아질 수 있다.”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아파트 단지 전경. 향후 국토교통부는 노후계획도시를 역세권 중심으로 정비할 방침이다. [뉴스1]
“일산은 이제까지 재건축 기대감이 높았으나, 분당과 비교해 사업성이 낮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 이번 특별법에 따라 인센티브가 적용되면 정비사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포인트는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기준이다. 같은 1기 신도시라도 역세권에서 멀어질수록 용적률 인센티브가 적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일산의 경우 기존에 용적률이 낮아 대지지분이 높은 곳 못지않게 역세권 단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대목에서 김 소장은 “국토부가 발표한 내용에서 ‘대규모 블록’과 ‘역세권’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마스터플랜은 나왔으나 특별법 적용 대상인 노후계획도시가 어떻게 정비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입법 후 국토부의 ‘기본방침’과 시장·군수가 수립하는 ‘기본계획’ 등에 따라 특별정비구역 및 선도지구 등이 지정돼 정비사업이 추진된다. 국토부는 특별정비구역 정비사업을 ‘대규모 블록 단위’ ‘역세권 중심 복합거점’ 중심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이어지는 김 소장의 설명이다.
“1기 신도시만 해도 30만 호 규모에 다른 주요 택지지구까지 합치면 100만 호가 넘는다. 이처럼 대규모 택지 규모에 걸맞은 장대하고도 치밀한 계획이 관건이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따른 기존 재건축 방식으론 정비사업에 끝이 없을 것이다. 여러 단지를 광역으로 묶어 체계적·순차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대규모 블록 단위 정비 방안은 아파트 주민들이 이용할 각종 기반시설 확충도 고려한 결과일 것이다. 개별 아파트 단지 차원의 재건축으론 도로, 학교, 공원 등 기반시설을 제대로 갖추기 어려우니, 뉴타운 사업처럼 대규모 블록 단위로 정비하자는 취지로 보인다.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을 두고 제기되는 대표적인 우려가 교통망 부족이다. 일산을 예로 들면 기존 자유로와 제2자유로가 늘 막히지만 당장 확장은 어렵다. 그렇기에 도시계획 측면에서 향후 대중교통 이용을 유도할 공산이 크다. 자연스레 용적률 인센티브도 이미 교통망이 갖춰진 역세권에 높게 부여될 가능성이 있다.”
모든 단지에 용적률 500%를 부여할 순 없지 않나.
“물론이다. 최근 전문가 사이에선 “역에서 300~500m까지를 역세권으로 인정할 것 같다”는 관측이 나온다. 만약 역세권 기준에 살짝 못 미치거나 애매하게 걸쳐진 단지에선 ‘우리도 용적률 인센티브를 인정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1기 신도시 정비와 3기 신도시 조성 연계 필요”
특별법 마련으로 스타트를 끊은 노후계획도시 정비사업이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전국 수백만 국민의 주거 문제가 걸린 대역사(大役事)인 만큼 거시적·미시적 대책 마련이 필수다. 김 소장이 지적한 노후계획도시 정비사업의 당면 과제는 주민 이주 문제다. 동시다발적으로 정비가 이뤄질 경우 이주난이 불가피하다. 2월 9일 원희룡 국토부 장관과 경기 성남·고양·안양·군포·부천시장(각각 1기 신도시 소재지)의 간담회 석상에서도 “3기 신도시에 1기 신도시 이주민을 고려한 택지도 함께 조성해달라”는 등 이주 대책에 대한 건의가 나왔다. 김 소장은 “만약 3기 신도시 조성과 1기 신도시 정비가 제각각 이뤄지면 수도권에 대규모 이주난이 생길 게 뻔하다”면서 “현재 특별법 청사진을 보면 광역 단위 정비사업이 예정돼 있어 이주에 따른 파급 효과는 더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또 다른 난관은 아직 건재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다. 지난해 9월 국토부가 발표한 ‘재건축부담금 합리화 방안’에 따라 부담금이 경감되긴 했으나 ‘징벌적 과세’로서 그 존재감은 여전하다. 이에 대해 김 소장은 “이번 특별법에 대한 정부 발표에서도 ‘특별정비구역엔 각종 특례가 집중되기에 초과이익을 적정 수준에서 환수할 것’이라는 방침이 눈에 띈다”면서 “일종의 기여금 부담, 기반시설 조성 등 기부채납을 추진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정비사업에 과도한 혜택을 줘도 안 되지만, 지나친 부담을 지우는 것도 곤란하다”고 말했다. “학교, 공원 등 인프라 조성 형태의 기부채납이 아닌, 기여금 부과 같은 방식은 지양해야 하며 차제에 재초환도 크게 손보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재건축에 따른 초과이익을 거둬 도시개발에 쓰면 안 되나.
“도로를 확충하거나 학교·공원을 단지에 짓는 식의 기부채납은 주민들도 납득할 수 있다. 지역발전에 필요한 사업이라는 공감대 형성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반면 기여금, 부담금 명목으로 정비사업에 따른 초과이익을 정부에 내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초과이익 기준이 무엇인지, 그에 따른 환수액 산정 잣대는 어떻게 정할지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예단하긴 어렵지만 1기 신도시 정비사업도 과도한 부담금 및 기부채납으로 실제 사업성이 그리 높지 않을 수 있다. 사업성이 악화되면 재건축 과정에서 아파트 단지나 동(棟) 간 갈등도 불거진다. 만약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이 출범한 후 ‘견적서’를 받아든 주민 사이에서 재건축 회의론이 비등한다면 이번 특별법도 무위에 그친다. 정비사업 난맥상과 주민 갈등을 막으려면 지금부터 정부의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정비사업 핵심은 ‘안전하고 쾌적한 집’ 마련”
김 소장은 노후계획도시 정비사업을 추진할 때 수십 년 단위의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반 재건축만 해도 안전진단부터 이주·철거, 준공까지 10년 이상 걸리기 십상이다. “특별법 제정 후에도 1기 신도시 정비가 완료되려면 앞으로 15년 정도는 소요되고, 개중에 추진이 늦은 단지는 사업 기간이 20년을 넘을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예상이다. 김 소장은 “정부가 국민 주거의 안전성과 쾌적함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노후계획도시 정비사업을 꼼꼼하게 추진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1기 신도시만 해도 1990년대 조성돼 30년이 지났기 때문에 주거지로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과거 1기 신도시 건설 자재로 바닷모래를 쓴 의혹이 드러나 파문이 일기도 했다. 한국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우려가 적잖다. 1988년 내진설계 의무화 전 조성된 노후택지지구의 안전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1980년대 조성된 서울이나 지방 택지지구는 물론, 1기 신도시도 현행 내진설계 기준이 도입되기 전 사업 승인을 받았기에 내진 안전성이 우려되긴 마찬가지다. 정비사업 동력은 안전하고 쾌적한 집에 살고 싶은 주민들의 염원이다. 재건축·재개발 추진을 투기로 몰아가선 안 된다. 한국 주택 보급률 자체는 높지만 여전히 양질의 집은 부족하다는 점에서 정비사업에는 공익적 성격도 있다. 정비사업에 과도한 특혜도, 부담도 줄 필요 없이 주민 의사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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