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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팬들은 자주 아이돌을 본명으로 부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격 없이 쓰는 글에서나, 팬 사이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그렇다. 레드벨벳 웬디는 ‘손승완’으로 자주 불리고,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연준은 ‘최연준’ ‘연준이’가 되는 식이다. 예명은 아이돌그룹 이름과 함께 법적 분쟁이 있을 때마다 곧잘 상표권상 쟁점이 되는 브랜드로서 가치를 갖는다. 경쟁이 치열한 산업에서 아이돌의 브랜드 가치를 매우 중요시하는 팬덤이 ‘세련되지 않은’ 이름일지라도 본명에 큰 애착을 갖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본명 부르며 사적인 모습 지지
팬들이 가장 자주 하는 응답은 ‘편해서’다. 일상에 밴 언어적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연준을 봤다”보다 “최연준을 봤다” “연준이를 봤다”가 입에 잘 붙고 마음도 편하다. 또한 팬덤이 현장에서 아이돌 이름을 외칠 때도 “수빈!”보다야 “수빈아!”가 쉽고, 복잡한 생각이 끼어들 틈도 없다. 특히 케이팝의 중요한 문화인 응원법에서 팬들이 아이돌 이름을 외칠 때도 세 음절을 연호한 뒤 한 박자를 쉬는 것이 편하다.사실 응원법은 기획사가 공식적으로 구성해 공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 응원법에 본명 세 글자씩이 포함된 경우가 숱하다는 것은 예명을 포함해 아이돌의 브랜딩을 관리하는 기획사 역시도 본명의 효용을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 외에 세븐틴의 유닛 ‘부석순’은 예명이 ‘승관’인 부승관의 ‘부’, ‘도겸’인 이석민의 ‘석’, ‘호시’인 권순영의 ‘순’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기획사도 예명과 브랜딩의 연관에 아주 엄격하지만은 않은 셈이다. 다만 공식 응원법을 철저히 예명으로 구성하는 아티스트도 있다. 그런 경우도 팬들은 본명이나 차라리 별명을 자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양한 맥락이 뒤섞이지만, 팬들의 본명 사랑이 반드시 편리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추정할 만하다.
결국 주된 이유는 친밀감이다. 친구, 특히 이성을 친밀하고 격 없이 부를 때 성을 붙이는 문화가 있듯 말이다. 당연하지만 팬들은 아이돌이 기획사가 통제하고 포장하는 존재임을 잘 안다. 이들은 기획사가 관리할 수 없는 아이돌의 사적이고도 진실한 얼굴이 따로 있으며, 자신들은 그것을 만나고 있다는 감각을 추구한다. 표면적으로는 무대 위 콘텐츠로서 아이돌을 응원하지만, 실은 그 직업을 수행하는 인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팬들이 콘텐츠를 기획하고 브랜딩한 기획사를 향해 종종 적대적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 있다. 팬들은 종종 포장된 이미지와 비즈니스적 관계라는 표피에 몰두한다는 식으로 폄하되지만, 팬이 아이돌을 인식하는 창은 겉보기보다 복잡한 맥락을 갖는다. 이 또한 케이팝의 부글거리는 역동성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다.